[글로벌 라운지]빌 게이츠가 던진 화두

빌 게이츠(사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오랜 기간 세계 1위의 갑부였다는 객관적 사실과는 별개로 혹자는 그를 비정한 자본주의자로 평한다. 주로 그의 과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전 세계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불러 일으켰던 숱한 독점 논란에 빌 게이츠는 매번 정면으로 맞섰다.
반면 어떤 이는 그를 아름다운 기업가의 전형으로 꼽는다. 경영자로서 그가 보여준 놀라운 수완에다 이제는 정상에서 은퇴해 세계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살아가는 그의 변신을 칭송하는 시선이다.

저마다의 평가에 정답은 없다. 비정함이든 아름다움이든, 다수가 지적하는 그의 다양한 면모의 일부분일 뿐 꼭 ‘어느 게 맞다’고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굳이 정리하자면, 빌 게이츠는 그런 다양한 평가를 받는, 어쨌든 놀라운 인간이라는 정도랄까.

여기 또 하나 정답이 없어 보이는 논쟁거리가 있다. 바로 오래 전 빌 게이츠가 세계 경영계에 던진 화두다. 빌 게이츠는 “이제 자본주의를 뛰어 넘은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냈지만 한편에선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그보다 앞서서는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는지 모호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빌 게이츠가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놓고 세계적인 경제전문가들이 지금도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자본주의를 가장 철저히 향유한 인물인 빌 게이츠가 주창한 자본주의 이후의 이상향. 아직 정답은 없어 보인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같은 첨단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전 세계인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그것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미친다는 게 그의 신념.

경제적 ‘수요’가 반드시 경제적 ‘필요’와 일치하지는 않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재화의 부족으로 자신의 필요를 시장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이제 기술보다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부자뿐 아니라 빈자를 위해서도 작동할 방법 말이다. 그는 여기에 기업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봤다. 그를 위해선 전통적인 이윤(돈) 말고도 ‘사회적 인정’이라는 또 다른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이것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게 그의 주장이다.

빌 게이츠는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로 불렀다. 그는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가 협력해 시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세상의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이익을 창출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당위성이 있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가 전 세계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는 그동안 기업과 정부가 효과적인 역할을 못해왔기 때문이다. 많은 대기업이 자선자금을 내놓고 각국 정부가 그 돈을 받아 자선사업에 쓰지만 늘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물론 빌 게이츠의 이러한 이념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데 이견은 없지만 역사상 자본주의만큼 극빈층의 복지를 극적으로 향상시킨 체제는 없었다는 것. 어찌 보면 기업에게 자선사업 같은 선한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기업의 기본 사명인 이익 극대화를 손상시키는 것과 다름 없다. 기업이 이익 극대화가 아닌 기부 활동을 한다면 이는 주주의 신뢰를 파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경쟁사에 비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일 수도 있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는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도 공부깨나 했다는 석학들 사이에서조차도 ‘가능하다’는 의견과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모두가 인정하는 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꼭 빌 게이츠의 주장대로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를 놓고 끝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은 분명 인류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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