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 ‘20억달러 추가 베팅’
로켓엔진 달고 ‘한국판 아마존행’

20억달러의 추가 베팅. 이번에도 쿠팡의 손을 잡은 사람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었다. 손정의 회장은 쿠팡에 대한 투자금 회수를 고민할 거란 소문은 연초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5년 소프트뱅크는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했었다. 그런데 마땅히 쿠팡은 호실적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투자의 달인이라 불리는 손정의 회장의 선택이 이번에 틀린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은 다시 추가 베팅을 선택했다. 투자 규모도 지난번과 비교해 2배로 키우면서 쿠팡의 성장성에 믿음과 힘을 더 강하게 실어준 것이다.

쿠팡이 지난달 20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의 투자금을 추가 유치했다고 발표하면서 달라진 것이 몇개 있었다.
일단 이번 결정으로 쿠팡의 최대주주는 창립자인 김범석 대표에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 변경됐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손정의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애플 등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1000억달러(약 111조원)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세계 최대 기술투자 펀드다.

2015년 10억달러 베팅은 소프트뱅크가 전환상환우선주 방식으로 투자한 것이라면, 이번 20억달러 추가 베팅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투자금에서 나오면서 그 의미가 조금 더 특별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는데, 2015년 당시 50억달러로 평가받았던 쿠팡의 기업가치가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서 무려 90억달러로 2배 가까이 상향 조정됐다는 점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렇게 최대주주가 변경되고, 기업가치가 증폭되는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쿠팡의 경영권은 창업주 김범석 대표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김범석 대표에 대한 무한신뢰
쿠팡의 글로벌 투자금 유치 사례를 보면 특징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지속되는 경영난 속에 최대주주가 바뀔 정도의 자금이 유치됐다는 것이다. 이럴 땐 보통 기존 경영자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성장을 위한 조직개편과 미래 비전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범석 대표는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차등의결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차등의결권은 특정인이 실제로 보유한 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인데, 이러한 차등의결권이 왜 필요하냐면 창업자 지분율이 희석되더라도 외부 투자자의 경영 개입을 막고 창업자의 책임 경영을 보장해줄 수 있기에 그렇다.

차등의결권은 아주 생소한 제도이다.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비전펀드의 20억달러 유치는 쿠팡 한국법인이 아니라, 미국법인인 쿠팡LCC가 수행했다. 그렇게 되면 쿠팡LCC는 국내 법인 지분 100% 가진 지배회사인 관계로 김범석 대표의 쿠팡 지분이 희석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김범석 대표의 경영권이 확고한 것은 이번에 쿠팡의 추가 투자 유치가 적자 누적된 쿠팡의 자금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물론,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라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파트너의 확실한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그러니까 손정의 회장의 신뢰가 여전히 강렬하다는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5000억~6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쿠팡에 대해 손정의 회장을 주축으로 한 세계 투자자들은 성장성이 충분하다는 쪽에 공격적인 베팅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실현할 인물로 여전히 김범석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아닐 수가 없다.

로켓배송 24시간 배송에서 두각
쿠팡이 뛰고 있는 산업은 e-커머스(소셜커머스) 산업으로 산업의 규모는 매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사업자 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계속된 적자들이 쌓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시장의 성장률은 높은 편이지만, 각각의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적자투성이라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6388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업계에서 가장 많은 손실을 보여줬고, 위메프가 417억원의 적자, 티몬은 115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매출 면에서 쿠팡이 2조6400억원대로 위메프 4700억원대, 티몬 3500억원대와 비교하면 특출나게 앞서고 있는 점은 특징이지만, 그만큼 적자폭도 가장 크다는 게 관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e-커머스 산업의 선두주자들이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산업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베이코리아, SK플래닛 등 온라인 마켓을 선점했던 기존 강자들과 SSG닷컴을 들고 뛰어든 신세계, 카카오커머스로 저변 확대를 노리는 카카오까지 경쟁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시장은 크는데, 왜 주요 사업자들은 수익을 못 올리느냐 반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러한 시장의 치열한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김범석 대표도 경영자 입장에서 계속 되는 적자행진으로 사실 위축이 될 수도 있고, 단기 경영실적 향상을 위해 투자를 멈추고, 구조조정 등의 칼을 빼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쿠팡은 창업 이래 자신들의 최대 강점인 쿠팡맨(자체 배송인력)을 통한 ‘로켓배송’을 고수하고 있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자신의 물류창고에 직매입한 상품을 대상으로 쿠팡맨들이 단 24시간 안에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오늘 주문하면 저녁이나 늦어도 다음날 아침 일찍 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쿠팡이 다른 경쟁자 대비 가장 차별화를 두는 부분이긴 한데, 문제는 이걸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일반 택배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4배 정도 비용을 더 지불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형 물류센터나 배송거점 운영소의 운영비용도 무시를 못한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쿠팡맨의 인건비는 대략 2000억원대. 물류센터 등의 인프라 유지비용은 3000억원 이상이다. 이런 유지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도 쿠팡은 대구시에서 첨단 물류센터를 추진하고, 전기 화물차 배송도 먼저 도입하는 등 물류 인프라를 넘어 최신 경영 트렌드도 생산현장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쿠팡에 대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쿠팡은 단순한 e-커머스 기업이나, 물류혁신 기업이 아니다. 김범석 대표가 평소에 가장 강조하는 경영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쿠팡이 ‘인터넷 기업’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인터넷 기업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기업이기에,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성장의 가능성이 높고, 인터넷 기업이기 때문에, 비전펀드와 같은 글로벌 투자금이 유치됐다는 것이 쿠팡의 입장이다.

오랜 인프라 투자에 따른 결실은
쿠팡은 실제로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인터넷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쿠팡의 혁신적인 기술과 문제 해결을 위한 독창적인 접근 방식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e-커머스 산업에 새로운 기준점을 세우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부터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옮겼는데, 클라우드 상에서는 대규모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 없이 실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쿠팡 물류센터의 연 면적은 축구장 150개를 넘을 정도로 방대하고, 하루에 로켓배송 상자가 약 100만개나 왔다갔다 하며, ‘로켓프레시’라고 신선식품을 자정까지 주문하면 새벽배송으로 다음날 아침 7시 이전까지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물류센터에서 그간 쌓인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가장 빠르게 패킹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제공해야 하고 로켓배송의 성공률도 99% 이상 끌어올릴 수 있게 분류를 해야 한다. 이는 인터넷 기업이 아니라면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극강의 서비스 품질이다. 실제로도 쿠팡의 인력 구성 중 40%가 다름 아닌 IT개발자들로 구성돼 있다.

김범석 대표는 쿠팡을 IT 회사로, 빅데이터 회사,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쿠팡의 핵심 임원진 거의 글로벌 IT 기업 경험이 많은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혁신 유통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투자와 인프라 건설이 필요한 것은 어찌보면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IT기업으로 성장한 아마존도 1995년 설립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2003년부터 흑자경영으로 돌아섰는데, 이는 초기에 투입되는 자원이 상당히 많다는 걸 말한다.

김범석 대표와 손정의 회장, 그리고 비전펀드 등은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당장의 이익보다 중요하다는데 그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금 현재 꾸준한 매출 성장과 고객의 증가를 이룩하고 있으며 고객 충성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쿠팡의 손익분기점이 언제 도달할지 그 시점을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쿠팡이 꾸준한 혁신으로 인프라 확충을 지속한다면 어느 순간 쿠팡의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 뻔해 보인다. 이미 쿠팡은 성장의 로켓엔진을 달았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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