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현상(瞑眩現象)’이라는 한의학 관련 용어가 있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증상이 더 나빠지거나 환자가 어질어질할 정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원래 ‘명현’는 중국의 고대 역사서인 <서경>에 실려 있는 말이다. 명재상 부열(傅說)에게 상나라 임금 고종이 내렸던 교지에 실려 있는데, 아래와 같다.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올려 나의 덕을 도우라. 내가 만약 쇠라면 그대를 숫돌로 삼겠으며, 큰 강을 건넌다면 배와 노로 삼겠으며, 큰 가뭄이 든다면 장맛비로 삼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내 마음을 윤택하게 하라. 만약 약이 독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 만약 맨발로 가면서 땅을 보지 않으면 발을 다칠 뿐이다.”

훌륭한 군주가 뛰어난 신하에게 하는 당부로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심지어 부열은 공사장의 인부로 미천한 출신이었다. 고종의 겸손한 요청에 부열의 대답 역시 충직하면서도 당당하다.

“나무를 자를 때는 먹줄을 대면 반듯해지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인이 됩니다. 임금이 성인이 되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신하는 임금의 뜻을 받들며 공경하며 따를 것입니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임금께서 정성을 다하신다면 실행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옛날 탕 임금께서 이룬 것과 같은 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군주가 간언을 잘 들어 성인이 되면 신하는 물론 온 나라가 잘 따를 것이라는 말인데, 먼저 군주의 솔선수범을 요구하고 있다. 대화를 보면 그 당시 상나라가 잘 다스려진 이유를 알 수 있다. 훌륭한 군주에 훌륭한 신하가 힘을 합치자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명현은 맹자도 인용해 자신의 책에 실었다. <맹자> ‘등문공 하’에 실린 글로, 맹자가 등나라 군주에게 해주었던 가르침에 있다. 등문공이 세자 시절에 초나라에 사절로 가며 맹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또 맹자를 찾아오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성간이 제나라 경공에게 말했습니다. ‘저 성현(聖賢)들도 장부이고, 저도 장부이니 제가 왜 그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안연이 말했습니다. ‘순임금은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또 어떤 사람입니까? 하려고만 한다면 누구나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공명의도 말하기를 ‘문왕은 나의 스승이다, 라고 말했던 주공이 우리를 속이겠습니까?’ 오늘날 등나라는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붙이면 사방 50리 정도이지만, 훌륭한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서경>에서는 ‘만약 약이 독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대화에 나오는 성간과 안연, 그리고 공명의는 모두 ‘성현들이나 순임금, 문왕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해도 누구든지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담대한 자신감을 표했다.

맹자는 이들의 예를 들면서 등나라는 비록 소국이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등문공을 가르친다.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서경>에 있는 ‘명현’처럼 독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뤄보면 명현은 지도자의 덕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한 약이 병을 고치듯 부하들의 직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어려울 때는 독할 정도로 스스로를 연마하고 실력을 쌓아야 어떠한 상황도 이겨나갈 수 있다.

- 조윤제《천년의 내공》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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