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 올 한해 11개월 누적 수출액은 5572억달러,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부는 12월에도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연간 수출이 6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체 무역액도 역대 최단 기간에 1조달러를 달성했고, 연말까지는 사상 최대 규모인 1조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3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달러를 돌파한 지 12년 만에 3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역대 최대의 수출실적과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경기 하강’ ‘경기 저점’에 대한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이 2%대로 다시 떨어지며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한다는 걱정도 커진다.
한은 전망에 따르면 올해 경제 성장률은 2.7%다. 2012년(2.3%)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10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내 경제전망 전문가 1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이들이 예상한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5%였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로는 2.6%를 제시했다. KDI는 “경제성장률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하향조정되는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2%대 후반 성장세마저도 고르지 않고 부문 간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거시경제정책의 기준이 되는 전체 평균치에 비해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배경이다.
특히 올해 한국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심해지고 내수는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대의 실적을 올린 수출 역시 반도체의 ‘나홀로’ 호황 탓이 크다.

소비·투자 등 내수의 성장 기여도(전기 대비)는 3분기 -1.3%포인트로, 2011년 3분기(-2.7%포인트) 이후 가장 작았다. 내수의 빈자리는 수출이 메웠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1.7%포인트였다. 이런 흐름은 점점 심화했다. 내수 기여도는 1분기 1.2%포인트에서 2분기 -0.7%포인트가 됐고 3분기 마이너스 폭이 더 커졌다.
특히 산업별로도 온도차가 크게 나타났다. 기업 규모별, 산업별 격차가 더 확산되며 성장의 내용은 오히려 악화되고 양극화 심화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생산 증가율이 올해 1∼3분기 전년 동기 대비로 두자릿수인데 비 ICT 산업 생산 증가율은 0∼2%대에 그쳤다.
특히 올해 3분기 ICT 산업 증가율이 11.3%로 2011년 3분기 이후 최고를 기록했으나 비 ICT 산업 증가율은 2009년 2분기(-1.2%) 이후 최소인 0.7%에 그쳐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웃고 중소기업은 주춤했다.
올해 2분기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7.8%로 1년 전보다 0.4%포인트 상승했으나 중소기업은 7.3%로 0.1%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한국경제 양극화의 배경으로는 반도체·수출 위주의 성장이 거론된다. 반도체·수출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경제 성장률은 그나마 ‘선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석유화학, 기계, 건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다른 주요 산업은 올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업의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업들이 고용, 투자를 줄였고 이는 가계소득·소비 부진으로 연결된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새로운 먹거리 산업 부재, 그리고 구조적 양극화 고착이라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반도체 착시가 올해 상반기 유달리 심했다”며 “반도체 활황 효과를 걷어내면 경제 성장의 모습은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교수는 “노동생산성을 키우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경제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납품 단가 후려치기가 일상적이어서는 기술발전 의미가 없다”면서 “당장 성과가 안보여도 길게 목표를 잡고 꾸준히 실천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 정책의 속도 조절 실패도 거론된다.
정부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소득 주도 성장정책을 내걸었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하다 보니 오히려 부작용이 빚어졌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이 2년 연속 큰 폭으로 인상되고 주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고용창출과 소득증가를 통한 ‘소득주도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취업자 증가폭은 급감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갔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급격한 노동정책 변화는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양극화 심화는 그동안 수십년간 이어져온 국내 경제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는데 전문가들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또 기존의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수도 없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동안 중소기업계의 숙원이던 ‘중소벤처기업부’를 새롭게 출범시키면서 중소기업 중심 경제 구조 구축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제도 도입이나 재벌의 사익편취 규제 강화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여러 가시적 성과도 나왔다. 그러나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오히려 강화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역시 좁혀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끌게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책방향 전환을 언급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2일 취임 후 처음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시장 기대와 달랐던 정책은 현장 목소리를 담아 보완하겠다”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52시간 근로 등 시장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무역의날 행사에서 “정부는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의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이 부분을 다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지표가 견고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고용·민생 지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양극화와 소상공인·자영업의 어려움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양극화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더딘 산업 구조개혁에서 비롯된 경기 부진 해소를 위해 경제체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의 구조적 침체는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정부 주도, 재벌 중심의 개발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차원에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하며 공정 경제의 제도적 기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경제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약자의 재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박상인 교수의 시각에 동의한다.
위평량 연구위원은 “한국경제의 현실과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한계로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공정경제 토대 구축을 통한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2012∼201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저하, 총투자율·고정투자율 하락 등 각종 지표가 악화하는 등 지난 4∼5년간의 상황이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 위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오동윤 동아대 교수는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성장과 분배의 꼭짓점 역할을 하도록 정책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1906년대부터 정부가 추진한 산업정책의 꼭지점이 대기업이었고 이 과정에서 성장을 누렸지만 불평등이 생겼다는 것.

오동윤 교수는 “대기업 중심의 낡은 산업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사명인 적폐 청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는 경제순환이 완성될 때 진정한 적폐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화에 집중해 이윤을 창출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근로자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이 선순환으로 발생하는 중소기업을 선택적으로 집중지원하는 한편, 생계유지형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시장보호와 상호경쟁을 유도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면, 실업 차원에서 보편적 지원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 정책의 이원화를 제안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현재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기중앙회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신성장 고부가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혁신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의 균형 회복 △기업가 정신 제고와 중소기업 사기진작 등 3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규제혁신의 전환점을 만들어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는 중소기업들이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용안정성과 유연성의 균형 회복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화의 복원을 넘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한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위기 속에 기회를 찾는 기업가 정신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도 중소기업계의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인의 사회적·경제적 기여에 대한 국가 및 사회적 재평가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