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동길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수없이 반복돼온 말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말처럼 들릴 뿐 구체적인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기업의 창업과 성장, 폐업은 끝없이 반복된다. 잘 나가던 기업이 사라지는가 하면 100년, 200년을 뛰어 넘는 장수기업도 있다. 

중소기업이 사느냐, 죽느냐. 그건 기업 스스로가 풀어야 할 과제이고 떠맡아야 할 책임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을 가로막는게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징벌적 상속세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상속재산의 50%, 여기에 최대주주는 30%가 할증돼 적용되는 세율은 65%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 

예컨대 창업자가 일군 1000억원 규모의 가업을 직계비속이 상속받으면 내야하는 상속세는 650억원이다. 이런 세금을 납부하고 가업을 승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의 재산 대부분은 공장·건물과 기계 등 부동산인데 상속세를 내려면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공장 일부 또는 기업을 통째로 매각해야 한다.

유니더스(콘돔생산 세계 1위). 쓰리세븐(손톱깎이 세계 1위), 농우바이오(종자묘목생산 국내 1위) 등 업체는 창업자 사망으로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을 매각해야했다. 

이 외에도 락앤락(밀폐용기제조 국내 1위), 까사미아(중견 가구업체), 에이블씨엔씨(화장품업체) 등을 비롯해서 기업을 매각한 사례는 많다. 그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다. 

기업을 키울수록 경영권 승계는 어렵게 돼있어 중소기업 경영자들 대부분은 기업을 키울 생각보다 매각을 생각한다. 

창업자나 그 가족이 기업을 계속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아닌 상속세 때문에 애써 키운 가업을 눈물 흘리며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건 기업의 자살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마다 독특한 문화와 경영노하우가 있다. 그게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매각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쓰리세븐이 그런 예다. 

장수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는 가업상속공제와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도입했다. 공제대상은 매출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으로 가업경영기간에 따라 200억~500억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기업 경영기간이 10~30년을 넘어야 한다거나 상속인이 지켜야 할 직접 경영기간과 고용유지 조건, 업종 변경 불가 등 요건이 까다롭다. 특히 업종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는다. 공제금액이 적은 것은 물론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외면한다. 제도의 실효성이 적은 이유다. 

상속세의 세율을 낮추거나 폐지하는게 세계적 추세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자녀가 기업을 상속받을 때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 나라가 절반에 이른다.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고용과 기술을 창출·축적하는 제2의 창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가업 승계에 한해서는 최대 100%까지 세금을 공제해준다. 그래서 장수기업, 강소기업이 성장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월마트, 도요타, BMW, 포드, 피아트 등이 가족기업이거나 가족기업에서 출발했다. 선진국에서 가족기업은 보편적인 경영형태이고 우리의 중소기업 대부분도 가족기업형태다. 

기업을 매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징벌적 상속세를 부과하면서 장수기업을 기대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 하나 치우는 것이 중소기업 살리겠다는 백마디 말보다 알맹이가 있고 효과가 있다. 

장수기업, 강소기업 타령을 할게 아니라 그런 기업이 성장할 바탕을 다져야 한다. 척박한 토양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징벌적 상속세로 가업을 문 닫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때다. 

 

- 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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