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가긴 하나보다. 계곡 물에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 사이를 깨고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빠지직 소리를 내며 겨우내 얼었던 빙판이 깨지고 때 이르게 피어난 버들강아지가 봄을 알려준다. 따사로운 양짓녘 햇살을 맞이하면서 찾아간 영월 주천면. 황둔에서 새로 난 길을 따라 엄둔천, 서만이강 강변 길을 따라 가면 주천에서 들어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 전에 요선정으로 향한다.
영월의 주천리 일대에는 사자산, 백덕산, 구봉대산 등 높은 산들과 강과 계곡이 유난히 많다. 법흥천을 비롯해 엄둔천, 운학천, 황둔천 등이 제각각 위용을 뽐내며 힘차게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은 계곡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엄둔천 초입의 미륵암 절집 뒷 산 위에 요선정이라는 정자와 큰 마애불상이 있다. 쓸쓸한 무명탑과 정자, 그리고 마애불이 조화를 이룬 평평한 정상은 늘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미륵암 옆 계곡으로 내려가면 기암괴석이 아름답게 펼쳐진 요선암(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4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위 사이로 때 이르게 피어난 버들강아지의 은빛이 윤기가 흐른다.
이내 사자산 자락에 있는 법흥사로 잠시 발길을 돌린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치악산 동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이 30리에 뻗쳐 있으며 법천강의 근원이 여기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아울러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고 무릉리 일대를 말하였다. ‘네 가지 재물이 있는 산이기에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부른다. 그 네 가지 재물은 산삼과 옻나무, 가물었을 때 훌륭한 대용식량이 된다는 흰 진흙과 꿀이다.
법흥사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곳은 보물로 지정된 징효대사 부도비(보물 제612호)와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다. 법흥사 입구 왼쪽 숲으로 약간 가려진 곳에 부도비가 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선덕여왕 12년(643)에 귀국한 뒤 오대산 상원사와 태백산 정암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사리를 봉안한 뒤 마지막으로 영월에 법흥사를 창건해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이때의 절 이름은 흥녕사였다. 그 뒤 징효대사는 신라 말에 쌍봉사를 창건해 선문을 크게 일으킨 칠감선사 도윤에게 가르침을 받아 이 절을 사자산문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혜종 1년에 중건되고 이후 큰 화재를 만나 1,000년 가까이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에 다시 중건되면서 법흥사로 이름을 바꿨다.
법흥사 입구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곧추 직진하면 관음사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백덕산의 주 계곡 쪽으로 태고적 원시림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법흥사를 뒤로하고 주천강으로 나오면 강변에 섶 다리가 재현돼 있다. 우선 주천(酒泉)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이곳 강변 옆으로는 술이 나오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 가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가면 탁주가 나왔다. 한 천민이 양반 옷을 걸치고 술샘을 찾았으나, 계속 탁주만 나왔다. 화가 나서 샘을 부수자 술은 끊기고 물만 흘러나왔다고 한다. 주천1교(구교) 옆, 빙허루가 올라앉은 망산 밑 주천강변 바위자락에 이 술샘 자리가 있다. 그래서 주천을 ‘술익는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주천강변에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쌍섶다리다.
술샘 옆 배터거리는 왜정 때 시멘트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신일리-주천리를 오가던 나루터. 조선 때 원주에 새 관찰사가 부임하면 먼저 장릉(단종의 묘소) 참배길에 올랐는데, 이곳에서 주천강을 건너야 했다.
숙종 때(1699년) 참배길에 오른 신임 관찰사를 위해 주천리, 신일리 주민들은 각각 섶다리를 하나씩 놓아 나란히 쌍섶다리를 만들어 가마를 건너게 했다. 관찰사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어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후 쌍섶다리 놓기가 마을의 연례행사로 돼 한동안 전해지다 명맥이 끊겼다. 1985년 강원도 민속놀이 경연대회에서 쌍다리놀이가 재현돼 우수상을 받으며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Y자’형 나무(참나무·물푸레나무 등)들을 구해 다릿발로 쓰고, 낙엽송으로 상판을 만든 뒤 솔가지를 얹고 흙을 덮어 50m짜리 섶다리 두 개가 있다. 이것을 재현한 사람은 영월 토박이인 최계경 사장이다.
계경목장이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유명해진 최사장은 남다른 고향에 대한 사랑이 있다. 그는 자비를 들여 쌍섶다리를 재현해 놓았고 강 너머에는 얼기설기 찻집도 만들었다. 강 주변으로는 억새 능선이 가려져 마치 옛날로 돌아온 듯 운치가 있다.
그 외에도 보전이 잘돼 있는 김종길 가옥(문화재자료 71호)이나 호랑이가 보은을 했다는 금효자와 의호총도 들러보면 된다. 그 외에도 한반도 지형인 선암마을이나 관란정(제천시 송학면 장곡리)에서 서강의 겨울 풍치를 한껏 즐겨봐도 좋다.
특히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에 남다른 사랑을 가진 사진가 고주서(033-374-7378)씨를 동행해도 좋을 듯하다. 또 시간이 허락된다면 청령포를 비롯해 김삿갓 유적지까지 경유하면 좋다. 최근에 김삿갓 박물관이 조성돼 있으며 그 외에도 민화박물관, 묵산미술관 등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대중교통 : 서울~원주간 버스나 기차 이용. 원주에서 주천리간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 타고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제천 쪽으로 가다 신림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우회전해 88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 신일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주천강 건너 주천면소재지가 나온다.
■맛집·숙박 : 주천면은 작지만 먹거리는 풍부하다. 곳곳에 소문난 음식점들이 밀집돼 있다. 30여년동안 꼴두국수를 만들었다는 신일식당(033-372-7743)은 저렴한 가격으로 토속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 신일리의 주천묵집(033-372-3800)은 도토리묵, 메밀묵을 직접 쒀서 만드는 곳. 콩깍지밥상(033-372-9434)은 두부정식과 비지찌개가 맛있다.
주천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카페 퉁가리(033-372-0277)는 주점이지만 주천강에서 잡은 모래무지, 매자 등을 튀겨 도리뱅뱅이를 내놓고 있다. 이 지역 특산주로는 더덕주를 꼽는다.
숙박은 솔밭캠프장(033-374-9659)이 풍광이 좋고 시설이 매우 잘돼 있어 단체가 찾기에 좋은 곳이다.
또 장작불을 지펴주는 우구정 가옥(033-392-5704, 자료 70호, 남면 북쌍리 782)을 이용하면 좋은데 주천면에서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단체객들만 이용이 가능하다.

■사진설명 : 얼어붙은 주천강 모습. 썰매를 지치는 동심이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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