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의 FTA 협정이 협상을 시작한 지 5년 3개월 만에 우여곡절을 치르고 국회 비준을 통과했다. 좁은 땅에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고립무원에 빠질 위기를 자초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일을 벼랑 끝에 가서야 겨우 타결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비준의 대가로 농업 부문 지원 약속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타 부문에 대한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급하게 예산 투입을 약속한 것이다.

사회갈등 통합기능 강화를

지난 몇 십년간 세계 최대 규모의 농업 지원 조직을 가지고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거의 경쟁력을 상실한 농업부문이 아니던가? 공부할 의지가 있어도 학비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 빠르게 진행되는 노령화 사회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노인들, 실업과 가정 해체로 고통 받는 사람들, 사회보장의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우리의 예산을 기다리는 곳은 농업부문 말고도 무수히 많다.
기대 효과가 불확실한 곳에 반발 무마조로 혈세를 투입하는 일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FTA를 비준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다수의 행복을 위하는 길인가에 대해 좀 더 일찍 결정했어야 했다. 비준해야 한다면 농업부문 보상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예산 지원을 한다면 다른 부문과의 형평성은 어떠한가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선행했어야 했다.
여의도를 점령하고 과격시위를 벌이면 누구에게나 국가 예산을 퍼줄 것인가? GDP의 10%도 안 되는 농업부문 보호라는 명분이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는 90% 이상을 이다지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 표를 의식한 소수의 국회의원들이 반대했다면 과반수를 훨씬 넘는 나머지 의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FTA가 통과됐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릴 일이 아니다. 전례가 될 까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유사한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민주화에 따라 절대적 권위가 사라지고 수많은 집단과 이익단체가 저마다 자기 것을 주장한다. 왕의 권력, 사회 지배계급으로서의 선비, 그 밑의 백성이 사회질서이던 시대에는 신분이 사회통합과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민주 사회에서는 수많은 주장과 갈등이 사회적 공익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평가, 판단됨으로써 사회를 통합하고 활력을 유지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각 집단의 주장과 요구를 공정하게 평가해 공익을 관철시켜야 할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정부와 국회, 언론과 지식인 집단이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들의 것을 챙기기에 더 바쁘다.
온갖 부패가 그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국가 사회의 리더는 선공후사, 공정한 평가의 능력으로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 공정한 평가는 피경가자들을 공정한 잣대로 차별하는 것이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 가를 전체 이익의 잣대로서 평가해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역할이다. 어느 CEO는 자신의 중역들을 평가할 때 ‘부하를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는 가로 평가한다.’고 했다.
부하들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자는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면 필부로 사는 것이 좋다. 사회의 리더그룹 들이 각 집단의 요구를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소집단 이기주의 방치 안돼

젊은 두뇌들이 공정 평가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떠나 이민을 간다. 공정한 성과 평가를 불신하는 노조가 과격 분규를 일삼는다. 외환위기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기업회생 가능성 평가, 회생 방법에 대한 불신 때문에 외국계 컨설팅회사가 한 몫을 챙겼다. 한국 주식시장은 기업 가치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공시가 이루어지지 않아 저평가 되고 있다. 뇌물로 상징되는 불공정성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다. 심각하게 지적되는 저 출산률 현상은 출산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정한 평가 지체가 한 원인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정당성과 공익성을 외면하는 패거리 현상, 소 집단 이기주의와 폐쇄성이 공정성 결여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것을 방치하는 국가 리더 그룹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승일
비즈턴 M&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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