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세계 경제는 20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의 민간 경제연구소인 컨퍼런스보드가 최근 전망했다. 나라별로는 미국 경제가 올해 5.9% 고성장하고, 유럽과 일본 경제도 각각 3% 가량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경제회복의 실마리를 풀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내수는 여전히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부는 수출마저 줄어들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달 ‘2003년 12월 산업활동 동향’에서 “백화점과 할인점 판매가 11개월 째 감소하고, 설비투자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에 있어서도 지난 한해 동안 15∼29세 청년층 취업자 수가 19만여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 전체 실업자 수 82만5천명 중에서 청년실업자는 43만 2천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청년층 실업률은 8.6%에 달해 전체 실업률 3.6%보다 배나 높다. ‘이태백’이라는 자조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심각한 경제상황을 반영해 연초에 전국 대학의 경영ㆍ경제학자들이 우리 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사상 초유의 ‘경제시국선언’을 한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올해는 일자리 만들기에 정책의 최우선을 두겠다”며 정부의 모든 역량을 경제 회복에 집중할 것을 천명했다. 뒤이어 대기업회장들을 만나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게 아니다

뒤이어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관련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사기업이 상근근로자를 한명 신규 채용할 때마다 향후 3년간 1백만원의 세금공제를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산하 공기업들도 대규모 신입사원 채용에 나서기로 했다. 기획예산처에서는 예절강사, 문화재 설명요원, 기타 공무원을 지난해 보다 8만여명 더 채용하겠다고 했다.
산업자원부에서는 제조업과 e비즈니스ㆍ유통 등 관련 서비스업에서 11만개, 정보통신부는 IT분야에서 5만개의 일자리 창출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도 각각 일자리 창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실업대책을 살펴보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발표처럼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만을 기도한다면 단기간에 실업률 제로상태도 달성 가능하다.
하지만 세금감면과 지출확대를 통해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변통이고 장기처방이 못된다. 이런 식의 처방은 제대로 된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어렵게 지탱하고 있는 우리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환경 개선’과 동의어

최근 우리 경제가 침체하고 실업이 넘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기업들의 투자부진에서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기업이 투자를 안하는 것은 과도하게 높은 비용구조,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노동관련 법과 집행, 기업을 옭아매는 규제 등이 그 원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투자부진의 원인을 과감하게 제거해 기업들이 투자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에 정책적인 방안과 수단을 집중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기업하기 쉬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일자리를 만드는 첩경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실업자를 고용하는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늘리는 것이 최선의 실업대책이다. 따라서 ‘일자리 만들기’란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와 동의어가 돼야 한다.
작년에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가서 만든 일자리가 100만개나 된다고 한다. 일자리의 원천인 ‘중소기업’이 대거 중국으로 진출한 결과인데, 이들 중국진출업체들은 대체로 투자성과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올해도 중소기업들의 해외이전 현상은 가속화 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을 국내에 붙잡으려는 어떤 시도나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진짜 일자리’를 내쫓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실업대책인데도 말이다. 국내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국내를 떠나 해외로 나가려고만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외국기업들의 국내투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최근에 타결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나 대통령이 기업총수에게 투자를 부탁하는 일 따위는 근본적인 실업대책이 될 수 없다. 고용이나 투자를 기업에 요청하고 협상할 일이 아니다.
기업은 오직 이익이 남으면 투자하고 필요하면 인력을 채용할 뿐이다. 나라와 경제를 위해서 투자와 고용을 늘려 달라고 애국심에 호소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송광선
순천향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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