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GS칼텍스·SK에너지 등 주유소에 택배서비스 접목

줌마, 대기업 만나 ‘물류 상생 롤모델’제시

주유소 사업이라는 것은 일단 입지가 선정되면, 그 주변의 차량 통행량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입지가 관건인 부동산 사업과 비슷한 면이 있다. 

국내 주유소 브랜드로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등이 있는데, 사실 브랜드를 선호해서 그 주유소를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동경로에 가까운 주유소를 자주 애용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어찌됐든 주유소 사업은 큰 변화나 혁신을 일으키기 어려운 업종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에서 주유소의 변신을 불러오게 하고, 정유업계 선두 기업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와 손을 잡고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이 있어 화제다. 주유소 경쟁이라는 것이 기름값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주유소 공간을 협업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1시간 안에 ‘신속한 발송’

다름 아닌 GS칼텍스, SK에너지와 ‘줌마’라는 스타트업이 만나 공동 론칭한 ‘홈픽’이 전국 택배서비스를 한창 확장하고 있다. 

소비자가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홈픽에 접수를 하면 반경 3km 지역에 있는 주유소의 택배 수거하는 기사 ‘피커’가 1시간 내로 수거를 한다. 그래서 주유소에 택배를 모으게 된다. 이걸 택배 전문업체를 통해 일괄 배송을 하는 것이다.

원래가 택배시스템의 핵심은 최적의 거점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대도시 근처에는 일반적인 택배회사들의 거대한 물류창고가 존재하고 있다. 주요 도심지 안에 땅값이나 임대료가 비싼 탓에 외곽지역에 물류창고가 생기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렇게 형성된 물류창고로 택배 물량이 몰렸다가 다시 주요 도심지로 이동한다는게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도 있다. 물류는 이동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냐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물류창고로 주유소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5대 5의 비율로 주유소의 유휴부지에 창고시설을 제공하면서 홈픽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을 터트려서 서비스 3개월만에 하루 최대 배송량 1만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기름을 팔던 주유소가 힘을 합쳐서 물류 회사로 재탄생을 한 것은 아마도 최근 한국경제에서 일어난 혁신 중에 눈여겨볼 만한 성공사례가 아닐까 싶다.

동네 곳곳에 위치한 주유소가 물류의 거점이 된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빠른 배송면에서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을 한 뒤에 택배가 어디까지 왔는지 배송조회를 종종 눌러보기도 한다. 그러면 서울까지 왔다가 다시 용인집하장으로 간다든지, 옥천에 있는 대형 택배집하장에서 2, 3일 머물러 있다든지 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대로 외곽에 위치한 물류창고 때문에 이동거리가 증가하고, 자꾸 다른 수많은 택배물량과 뒤섞여 집하처리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주유소가 거점인 홈픽의 택배서비스는 이동거리가 단축 되기에, 외곽에 있는 대형 물류창고에 갈일이 전혀 없고 특정 주유소에서 다른 주유소로 택배가 이동하기 때문에 직결 배송이 가능하다.

또한 기존에는 개인이 택배를 보내기 위해서 우체국에 가야 하지만, 홈픽의 최대 장점은 집이든 회사든 어디든 1시간 안에 택배를 부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 택배나 우체국도 집에서 발송처리가 가능하지만, 주변 주유소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택배기사가 회사 차량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택배를 수령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오는 시간을 예상할 수가 없다. 홈픽과 일반 택배의 배송 서비스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존 택배 시스템 보다 더욱 좋은 점이 또 있다. 바로 택배기사에 대한 소비자의 안전성이다. 소비자는 홈픽의 택배기사인 피커를 실시간으로 조회가 가능한데, 예를 들어 신상이나 현재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많다보니까,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일에 있어 불안감을 해소하는게 중요한데 홈픽이 이러한 리스크를 말끔히 해결해주려고 한다.

 

고객 불편에서 얻은 아이템 

그러면 이렇게 재미난 발상의 택배 사업을 SK에너지와 GS칼텍스라는 정유 업계 최대 라이벌이 함께 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홈픽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처음 떠올린 사람은 물류업계의 스타트업인 줌마의 김영민 대표였다. 

그는 홈쇼핑TV에서 물류 공급망관리 업무를 하던 직장인이었다. 그 당시 고객의 불만사항 중에 하나가 반품을 했을 때 왜 이렇게 늦게 가져가냐는 게 있었다. 언제 올지도, 또 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개인이 택배를 보내는 게 사실 참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불편 속에서 사업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홈픽의 서비스는 이전의 스타트업 아이디어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데, 아주 작은 기업인 스타트업이 전략적으로 대기업들에게 창의성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준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에도 SK에너지나 GS칼텍스 등이 주유소의 유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두고, 카페를 열거나 편의점을 두기도 했었다. 뭔가를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끌리는 요인이 없었던 상황에서 물류 스타트업인 줌마가 나타나 1개 대기업이 아닌 정유 업계 생태계를 물류 서비스라는 차원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홈픽의 성공요인이 빠른 배송과 편리한 발송처리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서비스의 경쟁력을 확인하려면 일단 가격이 어떤지를 봐야 할 것이다. 일단 홈픽 서비스의 생태계 자체부터 가격 경쟁력을 담보하고 가는 구조인데, 주유소의 유휴부지를 활용한 물류창고이기에 일반적인 물류창고 이용과는 다르게 비용절감이 크고, 그만큼 서비스의 이용가격도 합리적으로 매겨지고 있다. 주유소당 유휴부지에 홈픽 물류창고를 운영하는 것에 받는 임대료는 월 50~80만원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실제로도 시중의 택배가격과 비교하면 홈픽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하다. 워낙에 택배 쪽 서비스 가격이 낮기 때문에 가격면에서 획기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어도, 붐비는 도시 안에 주유소를 거점으로 이 정도 서비스 가격을 형성한 것도 대단한 일일 것이다. SK에너지나 GS칼텍스도 대기업으로서 사회적인 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홈픽을 통한 어마어마한 수익창출 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줌마와 함께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주유소 산업의 새로운 기회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주유소 시장이 상당히 경기가 좋지 않다. 한해 문을 닫는 주유소가 150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시장을 보면 폐업률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 가운데 GS칼텍스의 주유소 폐업률이 가장 높다. 2009년 3342개의 주유소가 있던 반면에 2018년 현재 2413개의 주유소만 영업하고 있고, 그 사이 929개 주유소가 감소한 것이다. SK에너지의 경우도 비슷한데, 같은 기간에 4350개에서 3459개로 891개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유소 감소는 두 기업의 실적감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GS칼텍스는 2017년 2조16억원에서 지난해 1조2342억원으로, SK에너지는 2017년 3조2118억원에서 지난해 2조1202억원으로 누적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한해만에 거의 35%가 넘는 영업이익 감소를 보이는 것은 지금 주유소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부분이다. 

주유소 숫자가 줄게 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팔 수 있는 유통망이 감소하기 때문에 당장의 영업이익 감소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경영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 원유시장이 하락이라서 주유소 산업이 일시적인 침체기가 아니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주유소 사업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와중에 줌마라는 스타트업이 나타나 새로운 물류 서비스를 선보이게 된 것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홈픽의 성공사례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생이라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분업하면서 얻게 된 성과가 아닐까 싶다.

 

- 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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