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은 최근 개청 8주년 행사의 하나로 ‘중소기업사랑, 청소년 글짓기 공모전’을 개최, 김하늬 양(진명여고 2) 등 37명의 작품을 선정해 포상했다. 본지는 때 묻지않은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청년실업난의 모순’등을 솔직하고도 재미있게 묘사해낸 이들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자, 내일까지 이 기초생활조사서를 작성해 오도록 하세요! 만약 안 해오면 매 3대 각오하고 있죠?”
“네!!!” ‘네…’
내 입에서는 도대체 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또 이 지긋지긋한 짓이라니. 도대체 이런 것은 왜 매년 조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맨 처음 써놓은 걸 보면 될 것을. 우리 집은 몇 년째 이사도 안 가고 있는데….
난 아버지 직업란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대체 이 칸을 또 무슨 단어로 채워야 한단 말인가! 아빠네 공장에서 주로 재래식 간장을 만들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은 정말 기억하기도 싫다.
그때 아빠의 직업란에 무심코 ‘간장공장 공장장’이라고 적었다가, 졸업할 때까지 애들에게 놀림을 당하느라 무지하게 시달렸다. “간장공장 공장장은 박공장장인가, 안박공장장인가!”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내려앉는 듯 철렁거린다.
명색이 중소기업 임원이라지만, 아빠는 매일 깔끔한 양복 대신 너덜너덜한 점퍼 차림으로 직장에 나가신다. 서류가방 대신 물통과 도시락, 하얀 위생 작업복을 챙겨 가신다. 잘 정돈된 책상 대신 냄새나는 청국장 기계와 하루종일 씨름하신다.
이런 아빠가 중소기업 임원이라고 하면 도대체 누가 믿겠는가. 말이 임원이지 이건 청국장 만드는 막노동꾼이다.

청국장 기계와 씨름
하루 열 두 시간을 꼬박 일하고서 받는 돈은…….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여튼 엄청 적다. 그런데도 아빠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청국장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니야. 그래도 지극정성이 필요하다 이거지……. 내가 매일 청국장 냄새 맡고 이렇게 건강한 거 아녀!”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집에서도 절대 청국장을 잡수시질 않는다. 공장에서 매일 점심으로 청국장에 밥을 비벼 드신다나. 나는 아빠의 직업이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이 나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다.
아빠가 중소기업에서 임원한다고 말을 하면 다들 ‘요즘 힘드시겠구나! 니가 잘 해드려’ 하면서 나를 좀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눈들이 다 꺼림칙하다. 우리집이 그렇게 쪼들려 사는 것도 아니지만, 난 그런 인식이 싫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때면 청국장 냄새가 날까봐 방향제를 사다 뿌린 적도 있다.
나는 이것이 다 텔레비전 방송 등 언론에서 중소기업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 종사자들은 그런 보도가 다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열악한 중소기업의 실정을 아무 여과없이 국민들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실정을 모르는 선의는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화면으로만 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중소기업이란 그저 조그마한 공장에 녹슨 기계들만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곳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도 대개 찡그리고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일부러 쇼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부심있는 표정으로 열의를 다해 일하는 모습의 화면은 보기 힘들다. 사람들이 밝게 웃는 표정은 일부러 편집해 버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얼마전 엄마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사회자는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네 힘드시죠.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어떻게 사람을…. 제가 대신 사과드리고 싶어요. 자, 여러분들도 보셨죠. 이것이 현실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방송에서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마치 다른나라 사람인 것처럼 마구 비난했다.
모든 중소기업들이 다 그런것도 아닌데, 모두가 그랬다는 듯이 중소기업인들을 멸시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리셨다. 안 그래도 주위의 평판이 안 좋은데…. 텔레비전에서는 중소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부려만 먹고 월급도 안주고, 게다가 열심히 일하다가 팔까지 잘렸는데도 아무런 보상없이 내쫓는 그런 몰인정한 곳으로 비유했다. 왜 꼭 그렇게 중소기업을 삭막한 곳으로 만드는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힘겨워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동정을 사고, 시청률을 높이려는 심보가 훤히 드러난다.
요즘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는 지금 사람이 없어서 기계를 못 돌리고 있다. 청년실업문제도 언론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죽어라고 일만 하고 돈도 적게 받는 그런 곳에서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심지어 우리 사촌 언니는 ‘대학까지 나왔는데 중소기업 사무직에 가느니 대기업 청소부를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모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 취직을 못하는 것이라고 비아냥대셨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언론이 中企편견 부추겨
몇 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텔레비전에서, 월급을 많이 주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나라를 지탱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곳이라고 방송한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편파적으로 생각할까? 중소기업은 언제나 젊은이들이 없는 풀죽은 곳으로 언론에 비쳐진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외면하는 그 자리는 낯선 이방인들로 채워진다. 아빠는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의 강제출국에 걱정이 태산같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중소기업은 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들이 있어서 중소기업이 지금까지 돌아갔던 것이라고 한다. 난 텔레비전이 지금껏 보여줬던 삭막한 모습대신 희망이 있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중소기업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대기업에 억눌리는 중소기업의 모습 대신, 대기업 못지않게 성공하는 중소기업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아빠 같은 중소기업인들을 인정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기초생활조사서의 빈칸을 자신있게 채울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맛있는 청국장을 만드는 청국장 장인이라고. 나는 간장공장 공장장 딸이라고!

박소영
삼천중학교 3학년 1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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