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빅데이터 활용, 고객 맞춤형 서비스 ‘무한제공’

‘구독사업’ 원조, 콘텐츠기업 날갯짓

몇년 전부터 세계인의 일상 속에 유행처럼 ‘구독 붐’이 번지고 있다. 구독서비스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상품은 자동차, 동영상, 스트리밍 등 일반적인 것도 있지만 꽃과 같이 사시사철 변화하는 물품도 있다. 예를 들어 꽃 구독서비스를 하는 ‘쿠카’의 경우 서울 본사에서 꽃을 대량 구매해서 플로리스트가 상품을 제작한 후 전국 배송을 하는데, 누적 구독자수가 10만명이다. 매월 4900원에서 4만9000원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가지고 있다.

이거 말고도, 사무직 직장인들의 고민 중에 하나인 셔츠 다림질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구독서비스도 있다. 세탁 후 다림질 된 셔츠를 집 앞까지 배송해 주는 서비스인 ‘위클리셔츠’가 있다. 

별도로 소비자가 자신의 셔츠를 구매해서 맡기는 게 아니라 이 회사가 직접 양질의 셔츠를 매입해서 고객들을 위해 최상의 상태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월 4만9000원이면 매주 3장의 셔츠가 집 앞까지 온다고 한다. 

이제는 구독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생필품까지 정기적으로 챙겨주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심지어 요즘에는 바쁜 현대인의 생활과 보조를 맞춰 새벽배송을 해주는 식자재 업체도 있다. 장 볼 시간을 놓친 사람들을 위해서는 최상의 서비스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소셜커머스 시장에서 선두기업으로 불리는 쿠팡도 2015년부터 출산 및 육아용품 그리고 생필품 등 10여개 상품을 정기배송하기 시작했다. 배송 받는 날짜와 횟수도 모두 소비자가 실시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배송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라는 점이 특징이다.   

 

애플 이후 가장 혁신기업 탄생

이처럼 한국에서 구독서비스 시장이 본격 열리는 와중인데, 이러한 서비스의 시초는 바로 미국의 ‘넷플릭스(Netflix)’다. 아직 넷플릭스가 무엇인지 모르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회사는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로 지난 2007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인터넷 연결만 되면 컴퓨터, 스마트폰, 텔레비전, 게임기, DVD 플레이어, 셋톱박스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어디서나 영화, TV 프로그램, 영상 콘텐츠를 맘껏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가장 저렴한 월 구독료 7.99달러(약 8900원)만 내면 이 모든 영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얼핏 들으면 영상 콘텐츠 구독사업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190개국 1억3926만명의 이용자가 넷플릭스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전 세계 구독서비스 시장에서 가장 선도적인 모델인 넷플릭스의 성공 노하우를 살펴보면 이 시장의 무한한 성장성과 많은 기회들을 엿볼 수도 있겠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인들의 영상 콘텐츠 시청 시간을 얼마나 많이 장악하고 있느냐 하면, 일단 1일 콘텐츠 소비량이 시간으로 따지면 1억4000만시간이라고 한다. 앞서 1억3926만명이 가입자라고 했으니, 넷플리스 가입자 1명이 적어도 하루 1시간을 넷플릭스 세상에서 보낸다고 할 수 있다.(가입자 1명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영상 시청을 한다면, 사실상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전 세계 인구는 3~5억명 가량은 되지 않을까 추측된다.)

넷플릭스는 10여년만에 기업가치가 증폭돼 시가총액 165조원으로 미디어 시장의 강자라 불리는 디즈니를 뛰어넘어 월가를 놀라게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는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Netflix and chill?”이라고 일상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직역하자면 “넷플릭스 보면서 쉴래?”라는 뜻으로 우리 정서상으로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으니 같이 둘만의 시간을 보낼까? ”하는 친근감의 표시라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Netflixed” 즉 “넥플릭스 당하다”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됐을 때 쓴다고 한다. 그러니까 넥플릭스라는 단어가 창업가, 투자자들에게는 혁신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적인 구독서비스 공룡기업이 1997년 창업했을 때만해도 우편 배송 DVD 대여업체에 불과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넥플릭스 설립 당시 미국시장을 장악한 비디오 대여점은 ‘블록버스터’라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강력한 미국 체인망을 갖춘 블록버스터를 선호했지, 넷플릭스 같은 신생 대여업체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사업초기에는 어려움으로 블록버스터에 인수를 제안할 정도로 경영상 말이 아니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의 판도를 뒤집게 된 계기가 바로 2007년 넷플릭스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게 어떤 결과를 만들었나하면, 2013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시작 6년만에 비디오 시장을 장악하면서 거꾸로 블록버스터를 파산시키는 성장을 하게 된다. 미국경제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인데, 원래 미국은 비디오 대여 시장이 상당히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수많은 팬층을 확보한 견고한 시장이었다. 이걸 넷플릭스가 무너뜨리고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티브잡스의 ‘애플’ 이후로 가장 혁명적인 스타트업 성공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소비자 빅데이터 분석의 달인

특히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도 창업하기 전에 블록버스터에서 DVD를 대여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소비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리드 헤이스팅스가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반납일자를 어겨 연체가 되면 그에 따른 수수료를 소비자가 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블록버스터는 대여할 때 받는 대여료보다 소비자가 연체를 통해 내는 벌금형식의 수수료에 관심이 많았다.

1997년 넷플릭스를 창업할 때에도 전통적인 대여 서비스를 주축으로 시장경쟁을 하긴 했어도 리드 헤이스팅스는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콘텐츠를 무한대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원래 DVD 대여가 구독서비스의 원조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불편한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예를 들어 최신영화의 경우 소비자들의 인기가 높아 대여 신청이 몰리게 되는데, 업체에서는 물량을 대량 확보하고 빌려줄 수가 없다. 나중에 인기가 없어지면 그 DVD 물량이 모두 재고가 되기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구독모델을 운영하려면 소비자들의 수요 이상의 물량을 리스크 없이 확보해야 한다. 현물인 DVD는 이러한 수요예측과 대여예측에 있어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넷플릭스는 여기에 승부를 걸지 않고, 온라인 시장으로 전환해 하나의 콘텐츠를 누구나 접속해 볼 수 있는 시장을 창출했고, 이러한 구독경제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유하거나, 공유하는 것보다 더 유리한 서비스가 되도록 완성해 나간 것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요인은 추천 서비스에 있다.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가 콘텐츠를 선택하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개인맞춤형 추천 콘텐츠를 예상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선호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랄지, 장르를 매번 업데이트해서 추천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억4000만명의 사용자가 넷플릭스를 자신의 기기를 통해 시청한다고 해도 각각 사용자 성향에 맞는 추천 콘텐츠를 별도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서비스기업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추천 서비스는 과거 넷플릭스가 우편 배송으로 DVD를 대여하던 시절에도, 설문지를 DVD와 함께 동봉해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개인에 맞춰 추천 콘텐츠를 작성해 다음 대여할 때 우편으로 보내줬던 전통에서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시대가 본격 도래하기 이전부터 이러한 고객의 빅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지를 고민했던 진정한 소비자 중심의 기업이었던 것이다. 현재 넷플릭스는 개인이 사는 지역, 연령층, 선호하는 감독 등 여러 요인의 변수를 종합해 무려 7만7000여개의 영상 장르를 구분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든지 넷플릭스 서비스를 받기 시작한다면, 누구보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해서 추천하기에 구독이 아니라 중독에 빠질만큼 영상을 시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콘텐츠 제작 투자에 올인하다

그렇다면 구독서비스의 최대 리스크는 뭘까? 아무래도 월 단위 정기구독이 많다보니, 소비자가 언제든 구독을 해지할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는 소비자가 한편의 콘텐츠를 시청한 후 다음 콘텐츠로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 시스템을 가동한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추천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내용과 중첩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구독에서 중독 상태로 소비자를 가두기 위해서 넷플릭스에는 영화감독 출신, 인문학 전문가들이 포진해서 매번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하고 이는 거의 75%에 달하는 만족도로 사용자들이 시청을 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정교하게 정리하는 걸 넘어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시리즈 드라마다. 정치 드라마인 해당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1억달러를 투자하고 자신들이 수집한 소비자들의 선호 배우, 감독, 스토리라인까지 활용해 영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추천을 해줬다. 그리고 이것이 대박을 터트렸다. 이것을 기반으로 단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서 콘텐츠 제작에 나서게 된다.

넷플릭스와 같이 기술기반의 회사들은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에 보수적일 수 있다. 넷플릭스는 2018년에 콘텐츠 제작 비용으로 80억달러를 쓰고 있다. 우리돈으로 약 9조원이다. 이는 2017년 매출 110억달러의 70%가 넘는 투자다. 이건 거의 콘텐츠 올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1회성이 아니라 매년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면서 이제 미국의 최대 영화 배급사들을 뛰어넘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기업이 됐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전략과 콘텐츠 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구독서비스라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기반하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넷플릭스의 이용자는 한편의 영화, 한 시즌의 드라마를 통해 넷플릭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자신의 성향에 맞춰 선택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소비자를 위한 천문학적인 콘텐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구독서비스라는 것이 자리를 잡으면 이처럼 어마무시한 기업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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