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인물] 이랜드 최종양·김일규 부회장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이랜드그룹은 1980년 세워진 뒤에 줄곧 오너 리더십으로 경영을 해왔습니다. 남매지간인 박성수 회장과 박성경 부회장이 회사를 이끌어왔는데요. 올해 연초 이랜드그룹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39년간 이어지던 오너 리더십에서 전문경영인 중심 체제로 전환을 한 겁니다. 박성수, 박성경 두 오너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거죠.

이에 따라서 계열사별로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주로 30~40대의 전문경영인들이 포진했습니다. 시기 상으로 창립 40주년을 앞둔 이랜드그룹이 한층 젊은 기업으로 도약을 하겠다는 변화의 몸짓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오너 리더십은 상당히 수직적인 지휘체계를 갖췄다고 봅니다. 하지만 계열사별 CEO 중심이라면 이건 ‘수평적 조직’을 지향한다는 겁니다.

일단 수많은 계열사 중에 핵심 기업에는 창업주들이 무한신뢰하는 CEO들이 내정됐습니다. 최종양 이랜드리테일 부회장과 김일규 이랜드월드 부회장이 ‘투톱 체제’라고 할만큼 상징적인 자리를 이끌게 됐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랜드그룹 창업 초창기부터 박성수 회장과 동고동락한 창업 공신입니다. 

특히 이랜드월드 부사장에서 무려 두단계나 파격 승진한 김일규 부회장은 박성수 회장과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원래 이랜드그룹은 1980년 박 회장이 이화여대 앞에서 ‘잉글랜드’라는 2평 짜리 옷집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옷가게 사장이었던 박 회장이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 후배가 바로 지금의 김일규 부회장이었습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김 부회장은 1984년 정식 입사를 했고 박 회장과 동대문에서 옷을 도매로 매입해 팔다가 드디어 자체 디자인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랜드그룹이 패션사업을 하게 된 그 시작에 김 부회장이 함께 있었던 겁니다. 

그의 최대 업적은 이랜드그룹의 글로벌화입니다. 이랜드 영국·미국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확실히 해외시장을 닦은 개척자였습니다. 김 부회장은 해외법인을 세울 때마다 법인장을 맡으며 10여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랜드그룹이 인수합병한 해외 브랜드 만다리나덕, 코치넬리, 팔라디움, 케이스위스 등이 성공 안착하는 데에 1등 공신으로 뛰었습니다.

특히 김 부회장은 커뮤니케이션 업무에 대한 애착이 높다고 합니다. 부회장으로 승진을 한 현재도 커뮤니케이션 총괄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랜드그룹이 대외 소통이 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었죠. 그래서 지난해 4월 신설한 커뮤니케이션실을 김 부회장이 총괄하며 언론 홍보, SNS 홍보까지 챙기고 있다고 합니다.

최종양 이랜드리테일 부회장도 이랜드그룹의 창업 공신입니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6년 이랜드에 입사한 그는 ‘중국통’으로 활약했습니다. 1994년 상하이에 처음 생산지사를 설립할 때 초기 시장을 만든 인물이 최 부회장이었습니다. 중국이 개방한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 부회장은 중국의 각종 서적을 수백권 독파하며 2001년 이랜드중국의 초대 CEO를 맡았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으로 따지면 ‘읍’단위까지 중국을 두루두루 다니며 유통망과 지역별 생산 인프라를 점검하고 추진한 걸로 유명합니다. 주로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고단한 출장길속에 여러 차례 병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랜드그룹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정확한 중국 시장 공략 노하우를 쌓게 됐다고 합니다.

오너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랜드그룹에서 두 전문경영인의 앞으로 행보는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이랜드그룹은 80여개 계열사를 둔 글로벌 패션·유통업체지만 매출이 몇년째 정체되고 있습니다. 한때 10조원을 돌파했던 매출도 지난해 9조3600억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창립 40주년을 맞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이랜드그룹은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일규, 최종양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룹의 숙명 과제를 해결할지 궁금합니다.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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