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추위가 시작되는 것일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칼바람 소리에 기분도 새삼스러워진다. 모처럼 나선 서해 제부도 여행. 서해안 고속도로 덕분에 제부도 찾아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늘어난 위락타운 때문에 예전의 한적함을 찾을 수 없다. 옛날에는 그 집이 눈에 띄었는데 하면서 비교를 하게 된다. 생전 처음 온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중에 나처럼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을. 그저 지금의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빈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듯하다.

제부도 다다르기 전에 남양면에 있는 남양성지부터 들른다. 남양성지는 예상보다 규모가 크다. 평일임에도 순례자들이 몇몇 눈에 띈다. 넓은 잔디밭 사이에 조형물들이 들어서 있고 기도객들은 한바퀴 빙 돌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남양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남양 인근에서 잡혀 순교한 무명 천주교도들의 순교지다. 조선 말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심할 때 남양 반도 일대는 교인들이 옹기를 구워 연명하면서 숨어 살던 곳이다. 하지만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었다.
성지를 벗어나 대부도를 먼저 들렀다. 시화방조제 둑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고 간간이 횟집 타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연산 굴을 까서 팔고 있다. 평생을 해 온 일인 듯 능수능란하지만 웬지 그들의 얼굴에선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알은 잘지만 단맛이 나는 자연산 굴 한그릇을 챙겨 제부도로 향한다.
제부도(화성군 서신면 앞바다)는 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 제부도는 서울과 가까워 당일 여행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제부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모세의 기적이다. 국내에 바다가 갈라지는 곳이 여럿 있기는 한데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려서 왕래가 웬만큼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제부도는 송교리와 제부섬 간을 건너는 갯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들은 부축하고 건너서 그들을 ‘제약부경’이라 했는데 제자와 부자를 따서 제부도라 했다.
썰물 때면 4~5m 깊이의 바닷물이 빠져나가 바다 속에 잠겨 있던 2.3km의 시멘트 포장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부도는 육지와 연결되는 동쪽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북쪽에 작은 포구가 있다. 포구 쪽에는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다. 섬은 북쪽 포구 주변의 작은 자갈밭과 서쪽 해안의 제부리 해수욕장을 빼면 온통 갯벌로 둘러싸여 있다.
제부도에 들른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서해의 낙조다. 특히 매바위를 포인트 삼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매바위는 제부도의 남서쪽 끝에 있는 기암괴석으로 오랜 기간 바닷바람에 패여 기이한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다. 바위들마다 특별한 이름은 없고 통칭해서 매바위라고 부른다. 밀물 때는 반쯤 물에 잠겨있고 썰물 때에는 밑바닥까지 그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 모래밭을 따라 걸어서 들어가 볼 수 있다. 이 매바위는 매년 매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번식지로 주위에는 항상 매가 날아다녀서 마을 주민들이 매바위라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을 찾을 때는 무엇보다 물때를 잘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물때는 계속 바뀌므로 밀물 때는 조심해야 한다. 계획없이 섬에 들어갔다 물이 들어오면 섬에서 발이 묶일 수 있으므로 시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물길은 금방 불어나므로 위험한 운전은 절대로 금물이다. 제부도의 물길이 열리는 시간은 매일 다르다.
썰물 시각을 기준으로 전후 약 3시간씩 제부도의 물길이 열린다. 바닷길이 열리는 시각은 화성시 홈페이지(www.hscity.net)를 참조하거나 서신면사무소(031-369-2771-7)에 문의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제부도를 벗어나 낙조를 찍기 위해 궁평해수욕장에 들른다. 일몰까지 시간이 좀 남은 듯해서 왕모대를 먼저 들렀다. 왕모대는 왕의 모친이 찾아왔다고 해서 붙여진 자그마한 만형태의 바닷가. 물이 들어오는 날이면 여러 가지 해산물이 쏟아져 내리던 곳인데 바다는 완전히 죽어 버린 듯 잡초가 무성하다.
바닷가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횟집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바다가 그 모양이니 생동감은 느낄 수 없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감내하게 만든다.
한시간 정도면 해가 질 듯하다. 궁평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해송이 있기는 하지만 철조망이 있어서 바다 감상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던 곳. 여름철 해수욕객들이 찾지 않는 한 특별히 볼 것 없는 이곳이지만 낙조는 화성8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썰렁한 해수욕장을 비껴서 궁평항 쪽으로 차를 돌린다. 길게 이어진 방파제 쪽으로 달려가면 중간 즈음에 주차할 공간이 나온다. 낚시꾼들이나 낙조를 감상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꼈지만 운이 좋으면 낙조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다.
바다에는 수십 척의 작은 배들이 어우러져 낙조 포인트를 만들어 주고 있다. 주변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면서 해는 지기 시작한다. 중간에 구름이 방해를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낙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이다. 추위를 가르며 바라본 낙조는 기쁨을 안겨준다.
■자가운전 :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비봉IC로 나오면 화성군이다. 이곳에서 306번 지방도로를 타면 남양~남양성지를 지나 사강에서 309번 지방도로 좌회전한다. 매화에서 1.7km가면 대부도와 제부도가는 갈림길 팻말이 나선다. 서신면에서 제부도는 11km, 대부도는 15km, 궁평리는 6km지점에 위치.
■별미집·숙박 : 선착장에는 조개나 대하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즉석 포장마차가 있다. 번개탄에 여러가지 조개류와 대하를 구워 먹는 것이 제법 운치있다.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파닥파닥 튀기며 불꽃에 익어가는 조개구이와 소주한잔은 그 어느 곳에서 맛보는 것과 다르다. 또 이 지역에는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많은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그중 바지락칼국수와 겨울철 별미인 굴밥을 즐길 수 있다.
제부도 안에 있는 통나무 횟집(031-357-0028)은 외관도 빼어나고 연륜도 깊은 곳으로 주인내외가 성심껏 음식을 차려내는 곳이다. 카페로는 남양에 있는 라이브카페 블루버드(031-356-6454)가 눈에 띈다. 숙박은 해수탕(031-356-9860-1)을 비롯해 제부도엔 취사도구가 갖춰진 콘도형 민박 등 50여개의 민박집과 전망 좋고 깨끗한 모텔 같은 숙박시설이 잘 돼 있다.

◇사진설명 : 궁평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서해의 낙조가 환상적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