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후지필름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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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후지필름의 변신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219
  • 승인 2019.06.1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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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원천기술 바탕으로 화장품·제약사업 나래 

안주 없는 무한혁신이 ‘성공의 정석’

요즘 각종 세계 경제지표 및 경제뉴스를 들어보면, 경영위기의 어려움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하향추세에 접어들었고, 기업의 혁신성은 떨어지고,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 교역 시스템에도 자꾸 이상신호가 확대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렇다고 기업 경영인 입장에서 호의적인 경제호황기와 같은 긍정적인 요인을 마냥 기다리거나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경영인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인건비와 원자재 등 고정비용 감축에 혈안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모두가 수비적인 경영 방식으로 투자와 혁신과 도전을 멈추는 바로 이러한 시기가 남들보다 한발짝 치고 나갈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주 <기업 인사이트>에서는 바로 위기의 순간에 기회를 찾아 혁신의 아이콘이 된 일본의 ‘후지필름’ 변신 스토리를 자세히 분석해 봤다.

 

탈필름 전략 선언

후지필름은 과거 카메라 필름산업이 융성할 때 크게 성장했던 기업이지만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하루 아침에 사양산업이 되는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고 현재 후지필름은 화장품, 에볼라 치료제, LCD TV 액정보호필름 등을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을 했다. 수십년간 필름외길을 걸어온 후지필름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정말 만물상과 같이 한두가지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2000년 이후 디지털카메라 등장과 함께 사양산업이 된 필름산업을 혁신시킨 것은 고모리 시게타카 회장이다. 그는 2000년 이전부터 후지필름의 사업군 중에 필름 분야를 축소하고 헬스케어, 화장품, 이미징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었다. 급기야 2004년 후지필름은 ‘VISION75’를 발표하는데, 주요 내용은 창립 75주년이 되는 2009년까지 회사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이른 바 ‘탈필름’ 전략이었다. 

이때 필름분야 직원만 5000명을 구조조정했다고 한다. 그뒤 2016년 기준으로 후지필름은 전체 사업 중 필름 비중이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명에 필름이 들어가는 게 무색할 정도 후지필름은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서 후지필름의 변신 중에 화장품과 의약품은 본업과 너무 다른 분야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게 결과물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 원리는 똑같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필름을 만들 때 100여 종의 화학물질을 혼합해 얇은 막으로 가공을 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화장품과 의약품 등 제조 공정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름의 주재료 중 하나가 바로 ‘콜라겐’이라고 하는데 알다시피 이것이 피부에 좋다는 걸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또 사진의 변색을 방지하는 항산화성분은 피부 노화방지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이 콜라겐과 항산화성분 두 가지를 합쳐 만든 화장품 브랜드가 후지필름의 ‘아스타리프트(ASTALIFT)’다.

쉽게 말해 화학약품을 겹겹이 쌓으면 필름이 되고, 얼굴에 바르면 화장품이 되고, 이걸 먹으면 약품이 된다는 이야기다. 후지필름은 수십년간 화학가공기술을 다루며 막강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혁신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언제나 혁신의 힘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어찌됐든 후지필름의 화장품 아스타리프트가 출시된 시점이 2007년인데, 시장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 브랜드는 한국시장 뿐만 아니라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전 세계로 진출을 하는데 은근히 문턱이 높은 화장품 소비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후지필름은 바르는 화장품 사업 말고도 먹는 미용음료도 만들게 된다. 2016년 일본 최대 음료업체인 ‘기린’과 협업해 미용음료를 출시하는데, 이 제품도 시장에 안착했다. 

필름사업과 유사한 가공기술은 화장품 말고도 의약품 시장에도 적용이 가능했다. 후지필름은 2008년 ‘도야마화학’이라는 제약기업을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연구기간을 마치고 2014년에 독감 치료제를 출시하는데, 그 당시 아프리카 지역의 골치꺼리로 떠오른 ‘에볼라 바이러스’에 후지필름의 독감 치료제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을 받게 된다.

후지필름은 이에 힘 입어 2016년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해 일본 최대 시약업체를 인수하며 의약품 사업에 더욱 힘을 주게 된다. 제약사와 시약업체를 인수한 후지필름은 이 사업군에서만 2020년 매출액 10조원을 예상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글로벌 화학업체,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상대로 필름사업

후지필름이 개척한 또 다른 사업영역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개척이 아니라 판매처를 혁신한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도 후지필름에서 구입하는 소재라는데, 바로 LCD TV의 핵심 소재 개발에 들어가는 ‘TAC 필름’이다. 후지필름이 필름 비즈니스를 한창할 때는 ‘B to C’에 기반한 마케팅만 해왔다. 막상 사양산업이 된 후 기존 필름기술을 직접 팔 곳이 사라졌다. 그래서 ‘B to B’ 시장을 생각했다.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 거래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삼성전자, LG전자를 상대로 대규모 필름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TAC 필름 생산을 확대한 후지필름은 2019년 현재 TAC 필름 시장점유율 70%를 점유하게 된다. 이는 소비자에게 팔던 필름을 기업에게 팔겠다는 ‘사고의 전환’과 해당 기술력을 확장하는 투자로 시장점유율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집중 육성’ 전략이 동시에 적용했기에 가능했다. 

한국기업들이 요즘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고 하소연 하는 것을 볼 때, 후지필름은 변신을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모범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쯤되면, 필름 사업이 확장할 수 있는 경계가 없고 그 확장성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후지필름과 함께 3대 필름 기업이라 불리던 ‘코닥’ ‘아그파’는 왜 몰락 했을까? 세계 필름시장의 1위 기업은 후지필름이 아니라 코닥이었다. 코닥의 필름 커버 색깔은 노란색, 후지필름은 초록색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코닥의 노란색 필름을 과거 더 많이 썼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1976년 코닥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필름시장 90%, 카메라 시장 85%였다고 하니, 거의 시장을 독점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갔을 때 촬영했던 카메라 필름도 코닥이었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남을 순간도 기록했던 코닥의 위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코닥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앞서 언급한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때문이었는데, 사실 디지털카메라의 최초 개발자는 코닥의 연구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닥의 임원진은 이것의 상업화를 거부했다. 이미 필름사업만으로 걱정이 전혀 없던 최고점에 있던 코닥은 복지부동이었다. 결국 2012년 코닥은 파산보호를 신청한다.

세계 1위 기업과 혁신기업은 언제나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하는 기업은 위기의 순간에 얼마나 과감한 결단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후지필름은 세계 1위는 아니었지만, 위기의 순간에 혁신의 방향키를 잡았다는 점에서 코닥과 차이점을 보인다. 

그리고 두 회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CEO의 리더십에 따라 달라졌다. 후지필름의 CEO 고모리 시게타카 회장은 전략가였다. 기존시장에서 기존기술로 생존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기존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과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까지 차근히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이제는 개방의 시대고, 콜라보레이션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후지필름은 2014년 1월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를 설립하게 된다. 후지필름은 이 허브를 통해 자신들의 필름소재, 의약품, 화장품 등의 핵심기술을 외부에 공개한다. 이를 통해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실천해 나가게 된다. 

우리 한국기업들도 이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에 동참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보면 후지필름은 새로운 스타트업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아직도 변신에 변신을 더 거듭할 일이 남아 보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만이 생존경영의 정석이 아닐까 싶다. 

 

- 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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