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젊은 감각으로 조직 내외부 혁신 주도

정도·실용·기술‘삼합경영’연착륙

지난달 29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한지 1년이 지났다. 재계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구 회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LG가 재계 서열 2위 그룹인데다, 구 회장은 주요 대기업 총수 중 가장 젊다. 구 회장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을까. 재계는 그의 리더십을 평가하며,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정도경영

구광모 회장이 LG그룹 대표이사에 오른 건 지난해 6월 29일. 아버지 구본무 회장이 5월 서거하며 뒤를 이었다. 승계 준비가 완벽하진 않았다. 고 구본무 회장이 별세할 때까지 경영권은 넘어오지 않았다. 그룹 지주사 격인 LG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구본무 회장(11.3%)이었고, 2대 주주는 구본준 LG 부회장(7.72%)이었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광모 회장의 삼촌이다. 구광모 회장은 3대 주주였다(6.2%). 구광모 회장은 당시 40세, 12년째 경영수업 중이었다. 아버지 구본무 회장이 그룹을 맡은 건 50세, 20 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은 뒤였다. 그래서 재계는 구본준 회장이 당분간 가교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일부 예상했다.

하지만 LG 이사회는 구광모 회장을 선택했다. 구본준 부회장은 조용히 물러났다. 승계에 잡음은 없었다. 이는 LG 그룹의 전통이기도 하다. LG그룹은 대대로 장자상속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창업주 구인회 회장에서 2대 구자경 회장, 3대 구본무 회장에 이르기까지 장자 상속을 지켜오고 있다. 다른 자녀들은 그룹 지분을 나눠 받거나 사업체 일부를 받아 LIG그룹, LS그룹, 아워홈, LB인베스트먼트 등으로 분리를 했다. 분쟁 없이, 원만하고 조용하게 진행했다. 모범사례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구광모 회장 역시 상속세를 모두 내는 정공법을 택했다. 말이 쉽지, 상속세는 9215억원에 이른다. 역대 최대다. 

남은 과제는 유산을 얼마나 잘 계승 발전시키냐는 점이다. 대기업은 더이상 한 개인이나 한 가문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주들의 재산이고 온 국민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책임체다. 구광모 회장은 회장 선임 당시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도경영은 선대로부터 이어오던 경영 가치다. LG그룹은 창업 이래 ‘고객’과 ‘정도’를 주요 가치로 내세우며 실천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반 대기업 정서가 강한 사회적분위기에도 불구하고 LG는 조금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올 3월 자산총액 기준 30대 재벌을 대상으로 기업 이미지를 조사했는데, 사람들은 가장 호감가는 기업으로 LG를 선택했다. 더 놀라운 건 가장 신뢰받는 기업인으로 구광모 회장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취임한 지 1년도 안 된 구 회장이 뽑혔다는 건 논리적 결과는 아니다. 구 회장은 경영자로서 아직 신뢰 받을만한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1위에 뽑힌 건 LG가 쌓아온 이미지 덕분이 아닐까. 물론 그동안 신뢰받지 못 할 만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일부 사회적 물의를 빚은 3, 4세 경영인에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실용경영

구광모 회장의 행보를 요약한 또다른 키워드는 ‘실용’이다. 구 회장은 회장 취임식을 열지 않았고, 얼마전 고 구본무 회장의 추모식도 간소하게 치렀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장보다 노타이 차림에 비즈니스 캐주얼을 선호하고, 계열사에도 실용적 복장을 권장하고 있다. 구 회장 취임 이후 LG전자를 비롯해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대부분 계열사 직원들 복장이 사실상 ‘자율화’됐다. 이전까지 주 1회 시행하던 자율 복장이 전 근무일로 확대됐다.

구 회장은 또 내부 소통을 중시하며 임직원에게 다가가고 있다. 회장 직함보다 대표로 불리길 선호하고, 현장에서 임직원들과 만나는 기회를 늘렸다. 분기별로 400명 임원이 모여 경영수업을 받던 세미나는 매달 100명 미안 임원이 모여 자유 토론을 벌이는 ‘LG포럼’으로 바꿨다. 또 여의도 LG트윈타워에 ‘다락(多樂)’을 마련하고 서초 R&D캠퍼스에 ‘살롱 드 서초’를 잇따라 오픈해, 임직원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함께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인사와 조직 개편도 과감하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래 두번의 주목할만한 인사가 있었다. 첫째는 취임 직후 권영수 LG유플러스 대표를 LG 신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불러들인 건데, 이는 상속과 관련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권영수 부회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통이다.

그리고 보다 주목할만한 인사는 연말 정기 인사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인사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조직 내 안정을 중시한다면 소폭 인사일 테고, 반대로 대대적 인사라면 안정 보다는 발전과 실험을 택한다는 의미다. 결과는? 안정 속 혁신이었다. 전문경영인 부회장단 6명 가운데 5명이 자리를 지켰다. 큰 틀의 안정이다. 하지만 그 밖의 인사에선 혁신과 실리가 드러난다. 신규임원수는 134명으로 역대급 규모다. CEO와 사업본부장급 최고경영진은 11명을 교체했는데 외부 영입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신학철 전 3M 부회장을 영입해서 LG화학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린 건 상징적이다. LG화학은 LG전자와 함께 LG그룹의 미래를 책임 질 쌍두마차 중 하나로 손꼽히는 회사다. 시가총액은 지난달 27일 현재 24조4955억원으로 그룹 맏형인 LG전자(13조 427억원)보다 크다. 게다가 LG화학은 창립 이래 71년 동안 외부 인사에게 CEO를 맡긴 적이 없다. 그런 곳에 외부 인사를 앉힐 정도였으니, 구광모 회장의 결단력이나 리더십에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구광모 회장은 다양한 외부인사를 영입해 변화를 꾀하며 자기 체제를 굳히고 있다. 홍범식 베인&컴퍼니 대표를 LG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김형남 한국타이어 연구개발 본부장 겸 부사장을 LG의 자동차부문 팀장으로,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상무를 LG전자 VS(자동차 부품) 사업본부 전무로, 김이경 이베이코리아 인사 부문장을 LG 인사팀 인재육성 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사업 조직에서도 구 회장은 비핵심 사업을 과감하게 쳐내며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LG전자는 연료전지 사업을 청산하고 대신 자동차부품,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성장동력에 힘을 모으게 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일반용 조명 사업을 접고, 자동차용 조명에 집중하도록 했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을 더욱 중시하는 오너 경영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기술경영

서울 강서구 마곡에 위치한 LG사이언스파크. 이곳은 구광모 회장인 취임 이래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이자 가장 자주 방문한 곳이다. 축구장 24개 크기의 광활한 LG사이언스파크는 LG 그룹 계열사들의 연구 개발 시설과 인력을 총 집결하고 있는 연구단지다. 고 구본무 회장이 시동을 걸기 시작해 2007년 이후 이미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생활건강, LG하우시스, LG유플러스 LG CNS 등 핵심 계열사가 입주해 있으며 2020년까지 2만2000명 연구인력을 집결한다는 목표다.

LG그룹의 미래가 여기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R&D메카로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겁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9월 LG사이언스파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간 융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산업간 경계가 무너져 뒤섞이는 만큼, 다양한 산업 연구시설을 한 데 묶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도다.

구광모 회장에겐 기술 중심의 DNA가 있다. 그는 경영수업을 시작하기 전 뉴욕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대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바 있다. 기술과 실용을 추구하는 성향도 당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연구개발 환경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고, 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구 회장은 다짐하고 있다. 구 회장의 미래도 여기에 있다.  

구 회장은 지난달에야 회장 집무실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쓰던 집무실이었던 만큼 1년간 추모를 위해 비워놓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말로 회장으로서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겠다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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