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채 안된 듯하다. 제주도에 발을 내디딘 지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미리 떠나있던 동행자가 제주도에 대해 구석구석 잘 안다는 말에 선뜻 가기로 결정하게 된 것. 그를 통하면 그 동안 몰랐던 여행지를 많이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금요일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박5일 일정으로 비록 따라만 다녀야 했던 여행이었지만 그 중에서 꽤 괜찮은 곳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일부만이라도 소개하려고 한다.

이른 새벽 서둘러 찾아간 곳은 송악산, 산방산이 인접해 있는 형제섬의 일출을 보는 일이었다. 일출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사진가 들이 20여명 정도나 바다로 모여들었다. 먼바다에 자그마한 두 섬이 서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세세히 살피지 않아도 왼편의 산방산과 눈덮힌 한라산까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바다가 붉게 물들여 진다. 심하게 부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형제섬 사이로 해가 솟아오른다. 떠오르는 시간은 아주 짧았고 이내 바위 위까지 올라와 버린다.
이곳까지 들러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용머리 해안과 송악산 주변이다. 송악산은 제주도 본섬의 가장 남쪽에 불쑥 솟아오른 오름이다. 관광객들은 산아래 바닷가로 깍인 해안절벽의 장관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동행자는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려면 송악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등산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발 182m의 아주 낮은 산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절경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르지 못했지만 행여 이곳에 들를 사람이라면 정상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찾아갈 곳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사실 이곳은 송악산에서 멀리 있는 곳은 아니지만 찾기는 쉽지 않다. 생각에 따라서는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나 아니면 역사적인 부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찾아가 볼만하다. 이곳이 좋았던 한가지 이유는 바로 수선화였다.
사실 제주 여행에서 야생 수선화 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만 느끼게 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제주 전역에 야생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유난히 사랑했다는 수선화가 눈을 헤집고 나온다는 것도 새롭다. 눈을 가르고 피어나는 아리따운 수선화를 배경 삼아 알뜨르 비행장과 산방산을 걸쳐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안가에 맞닿은 알뜨르 비행장은 일본이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태평양 당시 일제가 남겨놓은 역사적 상흔들은 일오동굴을 비롯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정을 벗어나 모슬포항을 지나 영락리-신도2리로 행하는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는 가히 환상적이다. 제주 해안 곳곳에서는 바닷물 이외에도 자연용출수가 분출된다. 그래서인지 어족이 풍부해 가는 곳마다 낚시객과 해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또 새롭게 알았던 것은 바닷가 근처에 지어놓은 돌집이 해녀들의 쉼터라는 것이다. 바쁜 물질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제주여행에서 가장 백미는 차귀도와 수월봉 코스다. 제주 서쪽 끝인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 솟은 수월봉의 낙조는 제주 동쪽 성산 일출봉의 일출에 비견될 정도로 장엄하고 아름답다. 수월봉(해발 77m) 정상에는 육각정인 수월정이 있다. 이곳에 서면 바닷가 앞 바다에 떠 있는 차귀도는 물론 멀리 산방산과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바다와 아슬아슬 이어지는 해안 드라이브길. 막힌 가슴이 절로 트이게 한다.
차귀도는 제주의 여러 섬 중에서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섬이다. 섬을 떠받치고 있는 절벽, 평평한 들판, 그리고 주변에 있는 와도와 지실이도를 이루고 있는 기암 등이 차귀도를 인상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차귀도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해질 무렵, 노을이 바다를 물들일 때다. 이 차귀도는 죽도라고도 불리는데 이 섬 주위는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이뤄졌으며 장군석이라는 돌이 우뚝 솟아 있어 그 풍치를 한결 돋운다. 수월봉 곳곳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산 일출봉에서 떠오른 해가 수월봉 너머 바다로 잠겨가면 제주도의 하루가 서서히 문을 닫게 된다.
이곳은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차귀도 섬은 매일 아침 배를 타고 꾼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자구내 포구에서 배를 빌려 타면 약 10여분이면 도달한다. 무엇보다 차귀도 선착장이 있는 자구내 포구의 이색풍치다. 한치로 유명한 자구내 포구. 한치뿐 아니라 멀리 강원도 등지에서 들어온 오징어까지 말려 손님들을 유치하고 있다.
하얗게 분이 오른 통통한 오징어는 짠맛이 적어 맛이 일품이다. 지면상 이것으로 제주 여행기를 끝내기는 아쉽다. 그 중에서 환상적인 여행지를 더 꼽으라 하면 협재에서 애월까지 이어지는 자그마한 항구를 둘러보는 일이다. 특히 비양도를 한눈에 바라보고 있는 협재에서는 바다를 가르며 말을 탈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또 하나는 종달리에서 시작돼 세화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드라이브 코스다. 우도와 지미봉을 사이를 가르고 달리는 해안길은 제주 해안드라이브를 한껏 즐기기에 만족스러운 곳이다. 가는 길에는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과 철새떼가 날아드는 저수지까지 연계해서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별미집·숙박 : 제주도에는 수많은 맛집이 있다. 이번에 새롭게 알아낸 식당으로는 탑동의 산지물 식당에서 고등어, 물회 등을 맛볼 수 있고 제주시에서 가까운 도두 서쪽 방파제 앞에 있는 제주왕왕횟집(064-743-0388)에서는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도두항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 애월쪽에서는 남따리 별장에서 옥돔구이(064-799-2110)를 맛볼 수 있고 차귀도의 차귀횟집(064-773-1114)에서는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대장금의 촬영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주민속촌 주변인 표선쪽에서는 탐라촌흑돼지(064-787-2383)집이 괜찮았다.
숙박은 동광휴양팬션(064-792-8888), 군성해안리조트(064-799-3775), 귤을 직접 따먹을 수 있는 로그빌리지(064-787-4033)를 이용할 수 있다. 펜션이라서 다소 비싼점이 흠. 렌트카는 배낭여행작가 였던 손태원 사장이 운영하는 대장정(02-3481-4242)를 이용하면 된다. 세화리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나오면서 만난 김승철(011-690-4509) 기사는 친절해서 명함을 받아뒀다.

◇사진설명 ; 해질무렵의 바다 노을이 아름다운 차귀도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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