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16일 구로공단의 한 업체를 취재했다. 합성수지를 원료로 폴리백과 쇼핑백 등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이 회사의 이사인 A씨는 “중국 때문에 원자재 값이 올해 들어서만 무려 30%나 올랐다”면서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얘기를 듣다보니 이 회사가 겪는 진짜 애로는 ‘원자재값 상승’이 아닌 딴 데 있었다.
“한국자원재생공사로부터 최근 공문을 하나 받았다. 올해부터 환경 폐기물부담금을 우리회사에 부담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여태까지는 원자재 공급업체인 대기업에서 부담했지만 앞으로 최종 제조업체 쪽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A이사가 보여준 공문에는 ‘합성수지 원료 1kg당 7.5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공문에 따르면 월 100톤가량의 합성수지를 사용하는 이 회사는 연간 약 1천만원의 부담금을 올해부터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A 이사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원자재가 상승으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이 회사가 또 하나의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는 다른 애로사항도 끄집어 냈다.
“지난 1월 환경정책과에 다녀왔다. 환경부에서 우리가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세제 포장재를 ‘쇼핑백’으로 취급하겠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포장재를 쇼핑백으로 분류하면 소비자들에게 세제를 팔 경우 쇼핑백 비용을 따로 받아야 한다. 무료로 나눠주다 적발되면 벌금이 건당 약 300만원이다. 대기업에서는 당연히 우리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공급하는 제품은 몇 개의 세제들을 묶어 세트로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디자인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누드(투명)로 하고 고객의 편의를 위해 포장 윗부분을 똑딱이 단추로 했다”
“그러나 이것이 쇼핑백으로 분류하게 된 단초가 됐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간단하게 개폐할 수 있으면 쇼핑백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포장재가 된다는 것이다”
“상표가 포장에 붙어있고 바코드까지 찍혀 있는 판에 어떻게 쇼핑백이냐고 해도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라. 우리는 무조건 적발되면 벌금만 매기면 된다’고 했다”
결국 이 회사는 똑딱이 단추를 떼고 그 대신 접착제를 사용해 고객의 불편(?)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똑같은데 똑딱이를 사용하면 쇼핑백이 되고 풀로 붙이면 왜 포장재로 둔갑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세계의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저마다 고객만족을 위해 촌분을 다투는 현 상황속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법과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시간을 다투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는 정부 각 부처의 얘기들이 중소기업 현장을 돌아보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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