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피드’를 보면 속도를 줄이면 버스가 폭발하게 돼 있기 때문에 미친 듯이 계속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세계인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 스피드에 나오는 폭탄이 적재된 과속질주의 버스처럼 불안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과연 이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과속질주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시간문화로 진단할 수 있을까?

시간문명의 충돌로 갈등 생겨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현상은 단지 구조조정이나 노동시장과 관련된 경제적 현상일까? 디지털 시간문화에 익숙해진 20·30대의 빠른자(The Fast)와 아날로그 시간문화에서 살아온 40·50대라는 느린자(The Slow)가 겪는 필연적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도 이제 세상은 강자와 약자, 큰 것과 작은 것 대신 ‘빠른자’와 ‘느린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현상이 한국에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결국은 탄핵정국으로까지 이어진 정치권의 위기, 대량실업, 교육붕괴 현상, 세대간 갈등은 시간문명의 충돌에서 나타난 것인 만큼 이제는 디지털 시간과 아날로그 시간 그리고 빠름과 느림을 통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요즘 한국사회는 시간혁명이란 말이 어울릴정도로 시간관리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속도의 경제’와 ‘스피드경영’을 주장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주 5일 근무제’와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침형인간이 새로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침형인간이 확산되면서 이번에는 저녁형인간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조절이 필요한 때
지금 한국사회는 시간의 관점이나 시간관리 방법에서 대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빠른자냐 느린자냐, 속도의 경제냐 여가의 경제냐, 아침형인간이냐 저녁형인간이냐?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혼란은 급격하게 대두된 디지털 시간문화와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간문화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산업사회의 시간관은 주로 노동시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의 양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의 시간관은 생산성 향상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빠름과 느림, 속도의 경제와 여가의 경제, 디지털 시간과 아날로그 시간을 통합적으로 접근해 갈 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진정한 명차는 가속력, 감속력 그리고 정지능력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양적성장을 통해 얻어진 ‘빨리빨리’문화와 국가적으로 투자된 ‘디지털인프라’가 만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신속한 경제발전, 신속한 경제위기 극복, 신속한 지도층 교체 등 모든 것이 스피드와 연결돼 있다. 엄청난 경쟁력의 원천이며 동시에 리스크의 원천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만 있고 ‘생각의 깊이’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사회는 지금 속도조절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윤은기
IBS컨설팅그룹 대표·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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