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서해대교가 생길 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그동안 여행이 쉽지 않았던 서해안 일대의 여행지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당일 코스로 충분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서해대교 주변. 차일피일 미루다가 봄철 실치회가 한창이라는 것을 계기삼아 여행길에 오른다.

봄은 어디만큼 온 것일까? 아직 육안으로는 파랗게 피어오르는 보리밭 정도가 눈에 띌 뿐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들풀들이 피어오른다. 이 맘때야말로 한꺼번에 원고를 쓸 수 없는 계절이다. 산하를 다루기에는 하루가 빠르기만 하다. 경기 평택시 포승면 희곡리와 충남 당진군 송악면 복운리를 잇는 서해대교를 건넌다. 바람이 불면 출렁거림이 심해지는 이곳이지만 겨울 바람보다는 봄바람이 약한 것을 보여주려는지 심하게 움직이진 않는다. 어쩌면 따스한 햇살이 가세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듯하다.
송악나들목을 거쳐 서쪽으로 향해 나가려다 공단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대교에서 바라본 바닷가 주변에는 물이 빠져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잡고 있었다. 갯벌이다. 물 빠진 바닷가까지 나가기에는 긴 거리다. 게다가 질퍽거리는 진흙펄이다.
잠시 구경하는 것으로 족하고 나오는 길에 한진포구 앞에 이른다. 예전 당진에 잠시 머물때에 자주 찾아오던 포구 중 하나였다. 당진에서 심훈 생가를 거쳐 이곳까지 들어오는 길은 비포장이던 오지 마을이었다. 심훈 생가에서 한진포구를 잇는 중간길은 큰 도로가 생겨서 맥을 끊어 놓았다. 염전이 있던 그 세월을 되새기면서 먼발치에서 포구만 바라본다. 그때 만났던 마을 사람들과 배를 타고 바지락을 줍던 생각을 상기하지만 주변은 많이도 변해 버렸다. 횟집 한곳뿐이던 그곳은 이제 추억 속에나 간직돼야 할 곳으로 변해버렸다.
한진 포구의 반대편 길에는 농민 계몽운동을 펼치던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 선생의 옛집이 있지만 차는 어느새 그곳을 비껴나 있다. 그가 1932년 이곳에 내려와 집필에 전념한 곳이라지만 이제 심훈 선생을 기억하는 세대는 어느 즈음에 와 있을는지.
이어 성구미포구에 이른다. 성구미포구는 아홉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꼬리라 해서 붙여진 지명. 이곳은 겨울철 별미인 간재미회로 알려진 곳이다. 추운 겨울철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면서 가판대를 지키고 있던 상가들은 모두들 문을 닫아 걸었다. 매주 2, 4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몇 척의 배가 바닷가에 매달려 있고 바다 너머로 한보철강이 보인다. 노점상이 문을 닫아걸면서 포구는 느낌이 완연히 틀리다. 사람에게서 풍겨나는 동적인 힘은 늘 우리를 활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포구를 벗어나 다시 서쪽으로 다가선다. 10.6km에 달하는 석문방조제다. 봄철 유채꽃 마라톤 대회를 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뚝방 주변으로는 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다. 물이 빠지면서 조개와 굴 채취객들이 모여든 것이다. 행여 유채꽃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가가보지만 자라다 만 듯 유채는 초라하기만 하다. 이곳에 꽃이 만발한다고 해도 제주도의 그것처럼 화려하거나 아름다울까 의심스럽기만 하다.
방조제를 지나면 이내 장고항이다. 정작 마을을 이루고 있는 장고항 전이지만 포장마차가 형성돼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가롭게 회를 즐기고 있다. 횟집에 들어앉아 실치회를 맛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포장마차 한켠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 막 잡히기 시작했다는 실치회. 3월 하순부터 7월까지 잡히는 실치지만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아주 짧다. 4월 중순까지만 회로 먹을 수 있어서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않된다. 실치는 금세 커져서 내장이 생겨나면 쓴맛이 배어들어 먹기에는 부적합하단다. 성어가 되면 뱅어포로 말려진다.
잔 새우 등과 함께 잡히는 실치는 따로 잘 다듬어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민물에 한번 씻어서 상추, 오이 등의 야채를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추장 양념으로 간을 맞춰서 비벼먹는다.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 맛인지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한 맛이라고나 할까? 포장마차에서는 한접시에 1만원, 횟집에서는 2만원 정도다.
이내 장고항으로 들어선다. 장고항의 횟집 곳곳에서도 실치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곳 말고도 근처의 포구나 태안 등지에서도 실치회가 잡히지만 가장 먼저 매스컴에 소개된 곳이 장고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으로 실치회를 맛보러 오는 것이다. 실치회 말고도 주꾸미나 간재미, 기타 등등의 회가 어디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타 지역에서 주꾸미 축제를 여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휘어진 포구를 향해 장군봉 근처로 다가선다. 바다 너머의 왜목마을에서 일출을 보는 포인트 뒷켠이다. 이 기암이 없었으면 왜목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포인트가 없는 무덤덤 그자체였을 것이다. 장군암 뒷켠에도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물이 들어오면 꽤 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이곳. 한갓진 포구가 일시적으로 분주해진 것은 순전히 실치회 덕분이다.
장고항을 뒤로 하고 왜목마을을 가야 하지만 일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그곳도 여느 바닷가 포구와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왜목포구를 지나면 대호방조제와 난지도를 갈 수 있는 도비휴양지다. 이곳에는 제법 규모가 느껴지는 횟집은 물론 해수탕까지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난지도까지 운항하는 배를 이용할 수 있다. 서해안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에서 배를 타고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난지도다. 인접해 있는 삼길포항에서는 물때를 잘 맞추면 고깃배를 만날 수 있다. 즉석에서 회를 쳐준다. 서해에 인접해 있는 사람들은 당일코스로 이곳까지 나들이 나왔다가 회를 쳐서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자가운전 : 서울, 평택방면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서해대교~송악 IC~우측으로 38번 국도 이용해 서쪽으로 가다가 원하는 곳을 들르면 된다.
동부제강 뒷켠에 한진포구~반대편 당진나가는 630번 지방도 방면으로 좌회전하자마자 왼편에 심훈 생가터 가는 길~안섬 휴양공원~성구미포구~석문방조제~장고항~왜목마을~대호방조제~도비휴양지~삼길포~서산.

◇사진설명 : 간재미회로 알려진 성구미포구. 물이 빠져서인지 쓸쓸해 보인다.

이 혜 숙
여행작가 (http://www.hyesook.net)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