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남한강변]한적한 강변을 따라가는 옛향기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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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남한강변]한적한 강변을 따라가는 옛향기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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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수 1501
  • 승인 2004.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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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문막에서 부론~법천~정산~목계강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는 한적한 시골 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예전 수로가 발달됐던 시절의 번창했던 사찰은 이제 사람들 발길이 끊어진 채 허허롭기만 하다. 하지만 적막한 이곳에는 번성했던 옛 나루터의 향기가 은은하게 번져나고 있다. 지금은 사람 발길 뜸한 오지지만 옛날에는 남한강 물길이 각 도에 닿는 물목으로 서울까지 왕래가 수월해 수운이 번창했던 곳이다. 그 흔적은 남한강변의 청룡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등 폐사지들이 말해주고 있다. 문화유적도 돌아보면서 즐기는 드라이브는 나들이의 기쁨을 배가시켜준다.

따사로운 봄햇살이 번지는 날 한가로운 여행길에 오른다. 한갓진 시골길을 달리면서 상큼한 바람내음과 봄향기를 마시면 그동안 묵은 체증은 한번에 사라진다. 문막읍에서 부론, 귀래라는 팻말을 따라 들어간다. 부론의 법천사지 찾아가는 길에 낯선 시골 마을을 지나치게 된다. 뚝방에는 원두막이 있고 ‘홍원창’이라는 돌팻말이 크게 세워져 있다. 밭갈이를 잠시 멈추고 적당히 늙어가는 부부가 조촐한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들의 손짓을 따라 뚝방에 오르니 시원스레 남한강 물줄기가 펼쳐진다.
이곳은 원주시 부론면 홍호리다. 남한강은 충주에서 여주로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섬강이 구비쳐 문막 들판을 적시다가, 부론면 홍호리에서 한강수와 합수한다. 이곳 홍호리는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고려시대부터는 12조창중의 하나인 홍원창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초기에는 한명회, 강희문, 서거정, 권람 등이 머물면서 수학했다.
이 창고는 조세로 걷은 곡식들의 수송을 위해 물길의 주요 연변에 설치한 것이다. 강상 수송의 것을 수운창이라 불렀다. 각지에서 올라온 조세 물품을 보관했다가 수로를 통해 배를 이용, 서울로 실어냈다. 개경 이남에 12창을 두었는데, 강원도에는 홍원창뿐이었다고 한다. 각처에서 조세미를 거마에 싣고 오가는 사람들이 일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커다란 창고와 일보던 청사에 숙사와 주막들이 서고, 마굿간과 대장간에 잡화상이나 어물전도 있고, 때로는 난전도 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방 어느 곳에서도 창고의 흔적은 없다. 단지 원두막 안에 그려진 그림에서 그때의 창고를 볼 수 있다. 가까운 법천에도 5일장이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뿐. 그래도 시원스레 펼쳐지는 남한강변의 물줄기가 아름답다. 최근 부론면까지 남한강 산책로를 만들었다. 개나리, 연산홍, 코스모스 등을 식재해 2km의 제방을 꽃길로 조성했다. 간간히 벤치가 있어 쉬어가면 좋을 곳이지만 땡볕이 내리치는 여름철에는 적당치 않을 듯하다.
부론면에 들어서기 전에 법천사지에 이른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기만 하다. 어느새 이곳 절터는 새롭게 복원, 발굴 중에 있다. 법천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창건됐다고 한다. 한때 이곳에는 향나무가 가득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야산에 있는 절터에는 지광국사 부도비와 조각난 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옛 화려한 흔적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마을 이름이 법천사의 절 이름을 따서 붙여질 정도라면 거찰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절집 입구를 알려주던 당간지주는 민가의 앞마당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몇 년새 마을이 이주하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법천사지를 나와 찾아가는 곳이 거돈사지다. 거돈사지에 이르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목나무다. 천년 수령에 7.2m의 몸둘레를 가진 고목이 석축사이에 있다. 보기만 해도 넓은 절터는 휑하지만 그 사이로 삼층석탑과 화강석 불대좌, 원공국사 부도비 등이 흩어져 있다. 절터에 대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지만 신라말기에 조성돼 고려초기에 대찰의 면모를 갖췄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저 텅빈 사찰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머위대가 솟아나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꽃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다. 따사로운 봄햇살에 취하고 봄바람에 상쾌한 기분이 충전된다.
절터를 둘러보고 법천에서 531번 지방도로를 이용해서 목계교로 향한다. 귀래라는 팻말을 기억해서 지방도로를 따라 덕은리-오량리에 이르면 청룡사지를 둘러볼 수 있다. 고려말 중원지방의 대표적 사찰인 청룡사지의 보각국사 정혜원융탑과 탑비, 사자석 등은 빼어난 조형미를 보이며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여말선초 중원지방의 대표적 사찰이었던 충주 청룡사지 복원이 추진 중에 있다. 이어 나오면 목계강이다. 이제는 분주하게 다니는 자동차 소리만 강렬하다. 강에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두어대의 배가 매여 있을 뿐. 장터의 흔적을 알려주는 것은 돌비석뿐이다. 목계나루는 예전에 남한강안에서 가장 번잡했던 곳이다. 1910년대까지 중부 지방의 각종 산물의 집산지였다. 이후 1921년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충북선이 부설되자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강변에 세워놓은 볼품없는 석비와 매운탕 집뿐. 문득 아주 오래전 이 뱃길을 따라 오르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새롭게 조성된 조악한 장승들 사이로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가 눈에 띈다.

목계 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대중교통 : 남한강길을 대중교통수단으로 모두 돌아보기에는 어렵다. 원주에서 부론(법천) 다니는 버스는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목계마을 방면은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2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문막IC~문막에서 여주방면으로 난 42번국도 따라(구도로)가다 49번 지방도로로 좌회전(팻말이 있다)~후용리를 지나면 홍호리(홍원창)~손곡리로 좌회전해서 법천리 마을길로 우회전하면 법천사터가 있다. 부론으로 나와 531지방도를 타면 정산리 거돈사지다. 이 곳에서 길이 끝나므로 다시 나와야 한다. 귀래라는 팻말따라 나와 충주쪽으로 가면 오량리. 청룡사지를 거치면 목계강이다. 목계교를 건너 중앙내륙고속도로인 감곡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별미집·숙박 : 목계교 주변에는 민물매운탕집이 여럿 있다. 목계교 맨 초입에 있는 강변횟집(043-852-0799)과 송도횟집(043-852-3566), 그리고 부론(원주)방면으로 300m 쯤에 자리잡고 있는 선창횟집(043-842-1399) 등이 참매자요리 전문집이다. 또 목계교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자연산가든(043-852-2048)은 목계강에서 직접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행포인트 : 목계교를 건너 장호원으로 나오는 길에는 온천단지가 있다. 용포, 앙성 일대는 수질 좋은 탄산온천들이 밀집돼 있는데 큰 규모의 시설을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물이 좋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설명 : 거돈사지 옆에는 천년 세월의 친구인 거목이 듬직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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