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군]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성수산 상이암
상태바
[전북 임실군]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성수산 상이암
  • 없음
  • 호수 1503
  • 승인 2004.05.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던 날이다. 유난히 봄 가뭄이 심한 올해로서는 단비가 분명하다. 특별한 여행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4박 5일의 마지막 여정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집으로 향한다. 꼭두새벽에 길을 나섰으니 사위는 아직도 어두침침하다. 전주 쪽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자칫 도로 판단을 잘못해 성수산 휴양림쪽으로 향하게 된다. 휴양림을 선택해야 할지 지나쳐야 할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내린 결정이다. 수해로 인해 차량 통행을 막고 있었지만 저수지 주변에 약간의 파인 길을 빼고서는 차량 통행은 충분하다. 막바지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벚꽃이 저수지를 향해 화사하게 피어났다.

휴양림도 개장전이라 차량을 막는 사람이 없다. 첫 방문 때 잠시 둘러보기만 했던 휴양림(063-642-9456-7). 이곳은 지난 91년 휴양림으로 지정됐다. 들어가는 초입에는 단풍나무가 가로수로 돼 있어 아름답고 곳곳에 계곡과 산막, 정자 등이 놓여 있다. 숲이 우거져 계곡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200여명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은 물론 전망대, 놀이시설, 눈썰매장까지 갖추고 있다. 물소리, 새소리를 벗삼아 오수를 즐기기에 그만인 휴식공간. 휴양림은 비철이라서 찾는 이가 없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차량통제가 없는 것을 이용해 천천히 성수산 깊숙히 들어가 본다.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 내린 노령산맥에 자리잡은 성수산(876m, 임실군 성수면). 도로는 가파르게 정상을 향해 한없이 뻗어 있다. 초록잎이 피어나는 수목이 계곡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비안개가 피어서 일까? 마치 선경에 빠져 들어가는 듯 신령스러운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아 오고 있다.
초행길이라서 다소 길게 느껴지는 길이지만 절집 찾아가는 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10여분이 채 되지 않는 지점에 이르니 산자락 밑으로 건물 한 채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 돌탑 2기가 일주문 역할을 하는 듯하다. 검은빛이 나는 돌계단. 이슬비가 내리는 하늘 밑에 돌담과 자그마한 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의 정상과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600고지 정도란다. 돌담 너머로 얼핏 사람의 모습이 비쳐진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새로 지은 듯한 건물과 허물어져가는 요사채, 비각 등이 산자락에 흩어져 있다. 가파른 산 중턱에 어찌 이런 평평한 공간이 있었을까? 분명 명당 터가 확실하다.
절 입구는 모두 바위문으로 돼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절 마당에 있는 수령 오래된 삼나무와 칠성각 앞에 하늘을 향해 곧추 자란 삼나무다.
삼나무는 분명 일본식민지 시대 때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 이 절집의 연륜도 그 때란 말인가? 절집의 연혁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벽면 한켠에 안내판이 있다.
상이암은 고려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며 1394년(태종 3)에 각여가 중수했다고 한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탄 것을 1909년 대원이 중건했다. 그 뒤 의병대장 이석용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일본군에 의해 소실됐다 중건됐고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됐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고찰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칠성각 뒤에 있는 두기의 부도(전북문화재 124호)다.
이런 연혁 이외에 이 절에는 고려 왕건과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선국사가 이 절을 창건한 후 송도에 올라가 초야에 묻혀 살던 왕건을 찾아간다. 도선은 성수산에서 백일기도하면 대망을 성취할 수 있다고 권한다.
왕건은 도선이 가르치는 데로 백일을 기도했으나, 특별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고 골짜기에 내려가 바위틈에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연 3일 기도했더니 이내 관음의 계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 왕건은 고려를 건국했고 왕건은 기쁨을 가눌 길 없어 환희담이란 글을 돌에 썼다고 한다. 지금은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저 돌이려니 할 정도로 희미한 글자만 남아 칠성각 오르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또 하나, 삼청동(三淸洞)이라는 돌비석이다. 이 돌비석은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것과 연계가 있다.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 절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도를 깨닫지 못했다. 다시 사흘 드린 기도에 어린 중이 나타나 함께 문답하고 목욕도 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어린 중이 태조에게 도를 깨닫게 해준 불상임을 알게 되면서 심신이 맑아져 삼청동 세 글자를 바위에 새기게 되었다.
그 후 꿈에서 하늘에 서광이 비치고 흰 무지개가 서울의 자미궁으로 내달아 뻗치는 공중에서 ‘성수만세’ 소리가 산울림이 됐다고 한다. 이후 태조는 등극했고 이 절을 상이암(上耳庵)이라 개명했다고 한다. 바로 성수만세 소리가 성상(임금)의 귀에 들렸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렇게 역대 두 임금이 기도 후 등극했다는 영험한 사찰임에도 절집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하다.
주지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를 메우고 있다는 신도회장은 차 한잔을 권한다.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그가 살아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얘기 도중 신도들이 찾아오면 공양간이 비좁아 걱정이란다.
또 명부전 건물도 지붕이 기울어져 불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연료비도 걱정이 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다보니 안타깝다.
설악산의 봉정암은 수시간을 마다하고도 기도하러 올라오는 신도들로 인산인해다.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비단길이다. 절집이 커지는 것을 개인적으로 바라지는 않지만 별 탈 없이 유지돼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절집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절이다. 지금도 아스라이 안개가 낀 선경으로 가는 절집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대중교통 : 고속버스 또는 기차로 전주에 가서 수시 운행하는 시외버스로 임실에 하차하거나, 서울역에서 전라선 열차를 이용해 임실에 하차하면 된다. 임실버스터미널에서 1일 4회 운행하는 군내버스로 성수산자연휴양림 입구인 왕방리 종점 하차.
■자가운전 : 호남고속도로 전주IC(17번 국도, 남원 방면)-죽림온천-관촌 사선대를 지나 남원방면으로 가다가 좌측 진안길로 접어들면 된다. 가는 길 우측에 팻말이 있다.

◇사진설명 : 상이암 약수터에도 파릇파릇한 봄기운이 찾아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