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천태만상이다. ‘선수치기’라는 수단도 그 방법의 하나다. 중국고사의 본래 원명(原名)은 ‘선즉제인(先則制人) 즉 전쟁에서 기선(機先)을 제압하는 편이 이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후일에 ‘먼저 착수한 자가 이긴다’라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됐다. 특히 오늘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BC 210년에 秦의 시황제가 죽고 이듬해 209년에 천하통일 12년만에 이 나라에 망조(亡兆)가 들기 시작했다. 농가에서 머슴살이 하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농민을 이끌고 반진봉기(反秦蜂起)를 전개하자 여기에 자극받은 인근 곳곳의 지방관리도 봉기군과 같이 秦타도 군사를 일으켜 천하가 소연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秦의 천하통일 직전에 오늘의 강소성(江蘇省)에 살던 항량(項粱)이라는 사람이 살인죄를 범했다. 그래서 조카인 항우(項羽)를 데리고 오(吳)나라로 이주(移住)했다.
항량은 평소에 재기(才氣)가 있어서 이주해 온 곳에서 이름있는 명사들과 교재하고 몇사람 식객(食客)도 양육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있으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바르게 사니 두사람의 평판이 좋고 이 지방의 일류 명사가 됐다.
앞에서 말한 농민군의 봉기로 세상이 소연해지니 당지의 회계군수(會稽郡守) 은통(殷通)이 항량과 항우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어서 두사람을 초청해 큰 일을 상의했다. 즉 은통군수도 거병(擧兵)하고 싶다는 상담이다. 그러자 항량이 즉석에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천하 각지에서 秦을 타도하려는 운동이 보이고 있으니 秦을 타도하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옛부터 ‘먼저 손을 쓰는 사람이 경쟁자를 제압한다’라는 말이 있으니”하고 은통군수의 거병을 촉구했다.
은통군수는 망설이다 말하기를 항량과 항우와 환초(桓楚)의 세사람에게 군(郡)의 병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환초는 항량의 집 식객중 가장 쓸만한 인물이다. 그러자 항량이 말했다. “환초는 얼마전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있다. 그곳을 항우가 알고 있으니 항우를 보내어 데리고 오게 합시다”하고 항량은 군수의 집 밖으로 항우를 데리고 나가서 귀엣말로 말했다.
“은통군수는 원래가 우유부단해 함께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못된다. 조금전에 내가 은통군수에 말한바 있으나 차제에 우리가 ‘선수치기’를 해야겠다. 조금 있다가 우(羽)가 환초를 만나고 왔으니 보고차 군수를 만난다며 은통을 만나면 번개같이 칼을 뽑아 은통을 죽여라. 이것이 ‘선수치기’이며 그렇게 되면 회계군(會稽郡)의 군사권은 우리가 장악하게 된다.”
항우는 태연하게 은통군수에게 “다녀왔습니”하면서 칼을 뽑아 단칼에 은통의 목을 베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 나서니 항우의 용맹함에 겁을먹은 관원들과 군(郡)의 군사들이 항우의 지휘에 운집했다. 이것이 항량의 ‘선수치기’였다. (出典:<前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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