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이리도 심한 것일까?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 것인가? 산과 바다 등 10박11일의 장기 취재동안 느낀 체감경기다. 유명 산에서는 간간이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는 등뒤가 서늘할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바닷가 또한 지독하게 한적하기만 하다. 평일이라서 그러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때 여행을 즐기는 것이 적격 아닐까 생각한다. 식당에서는 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숙박지는 가격인하를 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니겠는가? 바쁜 일상을 탈출해 잠시 한적한 곳으로 지금 여행을 떠나보자.

경주에는 유명한 여행지가 산재해 있다.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는 시가지 전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경주 남산(금오산, 468m, 경주시 탑동, 배동, 내남면)은 불국사나 토함산을 다 들러보고 나서야 찾을 수 있는 여행지다. 인근 사람들은 가벼운 산행을 즐기러 찾아오는 곳이지만 멀리 떨어진 외지인들은 손쉽게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남산은 신라의 천년 역사가 숨쉬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금오산과 고위산(494m)에서 뻗어 내린 약 40여 개의 등성이와 골짜기를 말하며 180여 개의 봉우리가 있다.
동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동쪽에는 낭산, 명활산, 서쪽에는 선도산, 벽도산, 옥녀봉, 북쪽에는 금강산, 금학산이 솟아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했다.
계곡마다 유적과 전설이 있으며, 왕릉을 비롯한 많은 고분과 산정이 즐비하다. 특히 불교유적에 관심이 많은 불교도들에게는 성지 순례코스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온 산 넓게 펴진 자락마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는 흥망성쇠의 유서 깊은 역사와 간절한 전설이 서려있고, 때로는 젊은이의 심신 수련장이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간성이 되기도 하고, 백성들의 영험 있는 신앙지이며 불교의 성지였다. 절터가 130여 곳을 헤아리고 석불과 마애불이 100여체, 석탑과 폐탑이 71기에 이른다. 또 수많은 고분과 왕릉이 어우러진 골짜기. 남산은 실로 야외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남산은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 신라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 신라가 종말을 맞았던 포석정이 있던 곳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남산은 단 하루만으로 전부를 볼 수 없다. 곳곳에 내재돼 있는 역사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보고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그 중에서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내남면의 삼릉 부근에서 시작되는 서남산 트레킹이다. 한쪽 면만 감상한 남산 여행지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족하다.
배리 삼릉이라고 불리는 이 능은 신라 8대 아달라왕과 제 53대 신덕왕, 제54대 경덕왕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능 감상보다는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다. 무수한 풍상을 거친 소나무 숲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능을 벗어나 삼릉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가는 동안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선각마애육존불을 만나게 되고 더 올라가면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난 64년 동국대생들에 의해 발견된 것인데 머리가 없다. 광배가 아직도 선명히 조각된 불상의 머리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더 올라가면서 만나는 것은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이다. 코가 많이 뭉그러져 있어서인지 불상의 모습보다는 민간인 모습을 더 많이 닮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코스에서 압권은 상선암 위에 있는 마애석가 좌래여상이다. 상선암은 어느 절에 비해 소박한 모습뿐 아니라 샤머니즘 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절 집 약수에 목을 축이고 2~3분만 오르면 커다란 바위 위에 잘 새겨진 마애불을 만나게 된다. 기도를 할 수 있는 너른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펼쳐진 기암과 맑은 하늘이 마애불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애불은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삼릉계곡(냉골이라고 한다)에서 높이 7m로 제일 큰 불상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마애불이지만 머리부분이 돌출 돼 입체감이 느껴져 입체불에 가깝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한다. 마애불에서 하염없이 기도를 하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정상으로 오른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쓰러질 것처럼 매서운 바람이 불어댄다.
아쉽지만 이것으로 트레킹을 마감한다. 정상에서 하산은 포석정 방면이나 용장사지(용장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었지만 다른 탐방로를 찾는 것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이것만으로도 꼭 와보고 싶은 여행지 하나는 찾은 것이 아니겠는가?
■자가운전 : 경부고속도로~경주IC~시내방면으로 가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언양방면 국도 이용-포석정(주차비를 받는다)을 지나면 삼릉계곡 주차장.
■별미집과 숙박 : 삼릉 주변에는 칼국수를 잘하는 집이 여럿 있다. 또 죽염을 생산하고 있는 왕대나무집(054-746-5987-8 내남면 상신2리)이 있다. 하지만 경주에서 꼭 찾아봐야 할 곳은 쌈밥집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있고 연륜이 깊은 곳은 삼포 쌈밥집(054-741-4384)이다. 식당 안에 진열된 고품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무엇보다 직접 재배한 무공해 채소를 푸짐하게 내놓고 넉넉한 반찬, 무엇보다 감포에서 잡아 올린 굵은 멸치젓갈 맛이 대단하다. 또 굵은 멸치와 동태로 끓인 시원한 국물에 채썰은 메밀묵이 송송 들어간 팔우정 해장국촌은 경상도식의 진수를 즐길 수 있다.

◇사진설명 : 큰 불상에 연신 기도하는 여인들은 과연 무엇을 빌고 있을까... 기원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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