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진로이즈백 등 새 이름 내세워 주류시장 대박 행진

술술 풀리는 ‘뉴 브랜드’마케팅

하이트진로는 명실공히 국내 주류업계의 역사다. 해방 이후 국내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와 소주의 대중화를 이끈 ‘진로’가 지금의 하이트진로의 뿌리다. 그런데 하이트진로는 맥주 시장 만년 2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불명예다.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하이트 브랜드로 국내 맥주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했다. 거기까지다. 2012년 오비맥주에 1위를 내줬고 이후 맥주 사업은 2014년부터 영업적자로 돌아서 5년 연속 손실을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하이트진로의 분위기를 보면 이러한 지난 과정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해 보인다. ‘주류 명가의 부활’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잘나간다. 지난 몇 년간 부진했던 맥주 부문에서 ‘필라이트’와 ‘테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하이트’ ‘맥스’ ‘드라이 피니시d’ 등 맥주시장에서 절치부심했지만 지금의 필라이트와 테라의 흥행실적과는 다르다. 여기에 최근 내놓은 소주인 ‘진로이즈백’도 대박 예감이다.

숫자를 보면 확신이 든다. 지난 3월 선보인 테라는 100일 만에 1억병 판매를 돌파했다. 요즘 맥주 사러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보면 맥주시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4캔에 1만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 가격으로 수입맥주의 공세가 무섭다. 맥주시장은 다국적 브랜드까지 가세한 가열시장이다. 수많은 경쟁 맥주 중에 하이트진로가 필라이트와 테라로 성공 스타트를 끊었다는 건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이트 출시로 OB맥주 독주 제동

하이트진로의 반전에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있다. 수입맥주의 공세와 소주시장의 침체 속에서 실적개선과 성공가도를 달리는 건 쉽지 않다. 박 회장은 하이트진로를 거의 30년 가까이 이끌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오너십이 견고하다. 고 박경복 하이트진로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 회장은 지난 1991년 조선맥주 사장으로 취임했다. 30년 동안 박 회장은 여러 성과를 쌓았다. 

박 회장은 1990년대에 맥주 브랜딩을 시작한 마케팅 전략가다. 그가 이러한 타이틀을 달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취임했을 당시에도 조선맥주는 시장 2위였다. 시장 점유율도 20% 안팍이었다. 경쟁사인 동양맥주(현 OB맥주)가 훨씬 앞섰다. 조선맥주의 브랜드는 당시 ‘크라운맥주’였다. 맛의 차이는 크게 없었다. 박 회장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경쟁 맥주와의 비교실험도 했다. 선호도는 각각 절반씩이었다. 그런데 상표를 노출시켰더니 반응이 달랐다. 크라운맥주를 선택한 비율이 전체의 10%로 떨어졌다. 맛의 차이가 아니라 브랜드의 차이를 그때 알게 됐다.

박문덕 회장은 신제품 개발을 총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브랜드가 지금의 ‘하이트’다. 1993년 하이트가 출시되고 맥주시장은 지각변동을 겪는다. 1996년 하이트가 동양맥주를 제치고 업계 선두가 됐다. 하이트의 히트였다. 하이트의 브랜드가 인정을 받자 박 회장은 아예 회사 이름도 바꿨다. 바로 하이트맥주로 말이다.

맥주 시장에서 상쾌한 원샷을 한 그는 이번엔 소주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2000년 초반에는 여러 매물이 M&A 시장에 올라와 있던 시절이다. 그 중 ‘진로’를 눈여겨 봤다. 박 회장이 소주 시장을 본 이유는 사업의 다각화 차원도 있지만, OB맥주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OB맥주는 2003년 무렵 ‘카스맥주’를 인수하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경쟁사의 변신에 박문덕 회장은 회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진로 인수합병 입찰에 뛰어들었고 대략 10군데 경쟁사와의 물밑 싸움이 시작됐다. 롯데, CJ 같은 대기업도 있었다. 하이트가 가장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하이트만큼 주류시장에 능통한 업체가 없었다. 그걸 무기로 전략을 세우고 베팅을 하면서 끝내 진로를 품에 안게 된다. 지금의 하이트진로의 탄생이다.

 

‘청정라거’이미지로 테라 대박

OB맥주는 무서운 추격자였다. 하이트진로가 2000년대 소주와 맥주 시장에서 50% 과반의 점유율을 넘어서며 명실상부 업계 1위로 등극했지만, 그 영광의 시간은 길지는 않았다. OB맥주는 카스를 잘 키웠다. 2010년대 들어서 맥주시장의 선두는 카스였다. 카스가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소주시장에서는 하이트진로가 강자였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시장 점유율 50% 이상의 1위다. 2위와의 격차도 2배다. 참이슬은 브랜드 변주를 잘했다. 도수를 높인 ‘참이슬 레드’, 저도주 시장의 문을 연 ‘참이슬 후레쉬’도 인기를 이었다. 소주 시장의 2등은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다. 나머지는 지방의 소주 브랜드들이다. 전국구 소주로 참이슬은 절대강자다. 맥주 시장에서는 1위 탈환을, 소주시장에서는 완벽한 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지금 모습이다. 

아무튼 박 회장은 하이트진로가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맥주 사업을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 가지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일단 맥주 시장을 완전히 이해했다. 맥주시장은 값싼 수입맥주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차별화된 고품질 제품시장을 형성해야 했다. 그래서 값싼 수입맥주를 견제하기 위해 발포주인 ‘필라이트’를 선보였다. 발포주는 사실 맥아를 사용한 순수 맥주가 아니다. 그럼에도 인기가 높았다. 젊은층이 열광했는데, 값싼 가격 대비 맥주의 맛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뒤흔드는 대박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중박’은 쳤다는 평가다.

확실히 필라이트는 수입맥주 공세를 막는 ‘방패’가 됐다. 필라이트를 모방한 발포주가 경쟁업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발포주 시장을 선점한 하이트진로를 이기진 못했다. 그 사이 하이트진로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5년이 걸렸다. 바로 테라다. 박 회장과 하이트진로 경영진은 테라에 그룹의 사활을 걸었다. 이건 마치 이전에 맛 보지 못한 새로운 맥주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맥주의 차별화를 콘셉으로 출발한 테라는 맥주의 원료에서부터 답을 찾아갔다. 맥아의 품질과 상태에 따라 맥주의 품질이 구성된다. 하이트진로의 직원들은 전 세계를 돌았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맥아 생산지를 방문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선별하고 선별한 지역이 바로 호주의 ‘골든트라이앵글’이었다. 테라의 개발은 맥아 생산지 선정부터 본격화됐다. ‘청정라거’라는 독창적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테라 보다 2년 앞서 필라이트를 선보인 이유가 있었다. 필라이트는 하이트진로의 새로운 맥주 브랜드의 첨병대였고, 테라는 핵심 무기를 장착한 본진이었다. 테라의 판매 결과는 ‘대박’이었다. 테라 출시 이후 하이트진로 맥주 전체 판매량이 덩달아 동반상승했다. 6월 하이트진로 맥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5% 늘어났다. 하이트진로 임직원들은 테라의 흥행으로 요즘 성공에 취하고 있다. 

 

두꺼비 캐릭터에 애주가들 열광

참이슬도 변신 중이다. 참이슬은 뉴트로 즉, 새로운 복고 감성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진로를 마시는 건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마시는 일과 같다. 1924년 출시한 국내 최초 소주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로라는 브랜드는 1993년 25도 소주 ‘진로골드’ 출시를 끝으로 더 이상 출시하지 않았었다. 진로라는 브랜드 대신 1998년 출시된 참이슬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안착했기에 그렇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가던 진로가 특유의 두꺼비 캐릭터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2019년의 진로는 출시 직후부터 폭발했다. 1000만병 판매를 72일만에 달성했다. 이는 연간 판매량 목표였다. 진로의 새로운 브랜드는 ‘진로이즈백’이었다. 진로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요즘 주요 상권의 술집에는 이런 홍보 문구가 유행이라고 한다. ‘진로이즈백과 테라 있습니다.’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그렇다고 하이트진로가 축배를 들기에는 좀 이르다. 지난 5년 동안 하이트진로의 맥주사업은 만성적자였다. 5년간의 공백을 구제할 테라가 나타났고, 테라의 파워는 연말까지 측정해야 한다. 모처럼 제대로 한 방을 터뜨린 박 회장은 하이트진로가 10년간 먹고 살 새로운 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테라와 진로로 주류 명가의 명성을 입증한 하이트진로. 차별화된 맛과 브랜딩 전략이 올해 주류시장의 최대 화두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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