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극복 대안] ③중소기업의 기술 국산화 지원 강구해야 

부산의 초정밀 부품가공업체인 A기업은 국내 대형 제철소로부터 26건의 국산화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2개월간 의뢰받은 국산화개발 건수는 10건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국산화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생산 장비 도입과 공장 증설이 절실하지만, 자금수혈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지난 21일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개최한 ‘제3회 중소기업 해외진출지원협의회’에서 공개된 중소기업 사례 중 하나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정부와 산업계가 핵심기술 독립을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한 상황이지만 막상 산업계를 들여다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온도 차이는 확연히 나타난다. 

국내 대기업은 일본 수출 규제의 대응으로 국산화를 위한 자체적인 자금과 프로젝트 인력을 투입하지만, 중소기업은 ‘나홀로 국산화’에 뛰어들 인프라와 자금이 열악하다. 원청업체인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공동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자체적인 기술 국산화는 쉽지가 않다. 

 

1000개 中企 선정 후 육성

이에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국내 중소기업이 보유한 우수기술 및 제품을 수요처인 대기업 등에 연계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기술 국산화 관련 조사’를 8월말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10일 대통령 주재 경제계 초청 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강화와 관련해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제안한 R&D 투자와 공정거래에 기반한 상생형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을 통한 대·중소기업간 기술개발 협업체계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중기중앙회는 능력 있는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1000곳을 선정한 후 수요처인 대기업과 연계해 관련 제품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의 기술 국산화 지원에 나선 것이다.

중기중앙회는 국내 4600개에 달하는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일본 등 해외와 비교해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는지 조사한 후 이들이 원하는 수요처(대기업)와 연결해 제품 상용화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중소기업 1000곳을 선정하고, 이 기업들이 대기업과 실제로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테스트할 계획이다.

그동안 우리 산업계가 주요 소재, 부품, 장비 등의 국산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일본에서 수입을 의존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하다보니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해 관련 제품을 국산화할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대대적인 수출 규제 조치로 대기업이 위기를 크게 느끼면서 국내 중소기업과 협업해 소재, 부품을 개발·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따라서 앞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개발 협력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중앙회가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이유도 이러한 환경의 급박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국산화 자금지원 적재적소에 투입

국산화를 추진하는 중소기업은 다음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국산화를 통해 제품 개발을 끝냈지만 자금의 여력과 여러 난제로 양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또한 현재 한창 기술과 제품을 국산화하는 기업도 있다.

중기중앙회는 국산화 관련 중소기업을 이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에 맞는 지원을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중소기업 국산화 자금지원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제품을 개발 완료한 기업의 경우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한데 이때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도 절실하다. 사실 대기업에 국내 중소기업과의 무조건적인 상생협력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연구개발을 하거나 투자를 할 때 세제 혜택 등을 줄 수 있는 대기업 유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중소기업의 기술 국산화는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구매한다고 해도 단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제 막 제품 개발에 성공한 중소기업이 일본 등에서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던 대기업이 원하는 단가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중소기업이 제품을 개발 한 후 발생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중기중앙회 측의 입장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중소기업의 기술과 제품의 완성도 및 신뢰성 향상을 위해 대기업을 비롯한 각 부문 전문연구기관 등과 포괄적인 협력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판로확대 및 기술 국산화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R&D 사업 예타면제도 추진 

한편 정부는 기술 국산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가 1조9000억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의 연구개발(R&D) 사업 3건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예타면제를 하게 되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설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가 속도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1일 핵심 기술의 자립화, 국산화를 위해 약 1조9200억원이 투입되는 3개 연구개발 사업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법 38조에 따라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에 대해서 예산 편성에 앞서 실시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이번 방침에 따라 산업부가 추진하는 △전략핵심소재 자립화 기술개발사업 △제조장비시스템 스마트 제어기 기술개발사업 등 2건과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테크브릿지(Tech-bridge) 활용 상용화 기술개발사업 등 모두 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절차를 밟기로 했다.

전략핵심소재 자립화 기술개발 사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차전지, 미래형 자동차·항공, 초연결 정보통신, 첨단센서용, 첨단화학, 친환경·에너지 등 관련 소재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이다.

내년부터 5년간 1조5723억원을 투자해, 수요-공급 기업 협력을 강화하고, 기술 개발 후 사업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등 R&D 방식을 다각화한다. 또한 855억 원을 들여 스마트 제어기(CNC)를 국산화해 국내 제조장비 산업의 안정적 생산기반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멀티 공정·장비 대응 개방형 제어시스템 기술, 기계장비 자율제어용 엣지 컴퓨팅 플랫폼 기술, 스마트 제조장비용 차세대 HMI 기술, 고성능·고신뢰성 멀티 공정용 구동기 기술 등을 집중 개발한다.

이와 함께 기술 거래 플랫폼인 ‘테크브릿지 시스템’을 활용해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이전을 활성화하고 후속 상용화를 지원하는데 2637억원을 투입한다. 대학·연구소 등 연구기관의 보유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상용화하는 등 산학협력을 강화해 조속한 기술 국산화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학연구소와 연계한 국산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소재·부품 기술 자립을 위한 국내 대학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이날 문 대통령은 오세정 서울대 총장 등 전국의 국립대 총장 24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에서 “요즘 기술의 국산화, 소재·부품 중소기업의 원천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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