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한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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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한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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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수 2235
  • 승인 2019.10.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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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글날이면 ‘배민 서체’개발·무료 배포
감성 사로잡는 ‘디자인 경영’승부사

지난 109일은 한글날이었다. 한글창제일로 따지면 573돌을 맞는 날이었다. 한글날의 기원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29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이것이 한글날의 시초다. 이후 1928한글날로 이름이 개칭됐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양력 109일로 확정됐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됐다.

한글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건 1928년 이후부터다. 그 전에는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렸다. 한글의 모양을 다양하게 변형해 사용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한글처럼 누구나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문 알파벳과 비교하자면, 한글은 3층 석탑의 모양을 갖췄다. 글자를 쌓아서 쓴다. ‘의 글꼴을 새로 디자인해도 을 쓰게 되면 받침 의 모양이 달라진다. 이라고 쓰면 또 이 새로운 형태를 띠어야 한다. 변형되는 모양의 경우수가 너무 많다.

반면 영문은 한자씩 그냥 옆으로 나열만 하면 된다. 그래서 A의 글꼴을 새로 디자인하면 그걸로 끝이다. A 옆에 B가 붙든 L이 붙든 A의 글꼴 모양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영문자 대비 한글의 새로운 글꼴을 개발하는 경우가 너무 부족하다고 한다. 그냥 기존에 나온 글꼴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개발된 한글의 글꼴을 무턱대로 사용하다가는 서체를 무단도용했다는 법적 책임이 따르기도 한다. 개발되는 글꼴이 적다보니, 지적재산권도 무척 까다롭게 다룬다.

 

올해는 배민 을지로체배급

새로운 글꼴, 즉 서체를 개발하는 몫은 디자이너들에게 있었다. 새로운 서체를 디자인해서 이를 일반 기업체나 매체사에게 판매를 하는 B2B 사업의 형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부 기업이 아예 발벗고 나서서 무료 서체를 개발해 배포하고 나서는 일이 많다.

올해 한글날에도 기업들의 무료 서체 릴레이 기부(?)가 줄을 이었다. 먼저 빙그레는 빙그레 메로나체를 무료 배포했다. 빙그레 메로나체는 아이스크림 메로나의 제품 로고 디자인을 소재로 개발됐다. 빙그레가 비용을 부담하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한국글꼴개발연구원이 자문을, 윤디자인그룹(대표 편석훈)이 디자인을 맡았다. 순수하게 빙그레 자체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글날과 통하는 여러 이해기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펼쳤다는 게 이색적이다.

국내 중견기업이나, 글로벌 대기업이 무료 서체를 개발해 보급한다는 것이야 어찌보면 자금력도 되고 큰 기업에 걸맞은 사회공헌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포털사이트의 최강자인 네이버도 한글날에 여러 번 무료 서체를 개발해 보급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글날이면 어김없이 무료 서체를 배포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이다. 한글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라고 불린다. 이 회사는 이번 한글날에 배달의 민족 을지로체를 선보였다. 을지로 간판 장인들이 함석판이나 나무판 등에 붓으로 쓴 글씨를 재해석해 탄생했으며 페인트 붓글씨 특유의 느낌을 살려 획의 시작은 힘차고, 마지막은 부드럽게 마무리된 것이 특징이다.

우아한 형제들의 무료 서체는 언제나 실용성을 강조한다. 한글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한글날마다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판 글자들을 배달의 민족만의 감성으로 재생산한다. 일반 자영업자들 가게를 방문하면 우아한 형제들의 배포한 무료 서체로 된 간판, 메뉴판, 내부 디자인 등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12년 한나체를 시작으로 우아한 형제들은 2014년 주아체, 2015년 도현체, 2016년 연성체, 2017년 기랑해랑체, 2018년 한나체 Air/Pro를 차례로 출시했다. 배달의 민족 서체 시리즈는 개성 있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현재는 자영업자들을 넘어 일반인 그리고 출판, 방송, 광고 등의 기업체들에게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김 대표 한글날 프로젝트 진두지휘

사실 배달의 민족 앱을 이용해 본 소비자는 알겠지만 이 회사는 서체로 자신들의 브랜드 정체성을 잘 알리는 재미난 스타트업이다. 네모반듯한 복고풍의 대표 폰트 한나체로 쓰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서체이자 캐치프라이즈다. 배달의 민족만큼 옥외·TV 광고에서도 텍스트 위주의 소통을 지향하는 회사도 없다. 서체로 시작해서 서체로 끝나는 기업이다.

디자인 회사가 아닌 앱 플랫폼 사업을 하는 배달의 민족이 이처럼 서체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때문이다. 한글날 프로젝트는 반드시 디자이너 출신인 김봉진 대표가 직접 지휘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여행 중 만난 손글씨 간판 사진을 찍어 모으고, 샘플을 직접 그리는 과정을 거쳐 새 서체를 만들어 왔다. 이쯤 되면, 사업을 위해 일하는지 한글날 무료 서체 배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김봉진 대표는 유니크하다. 그동안 개발해 배포한 한글 서체인 한나체, 도현체 등은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그것도 회사 직원 자녀 이름 중 무작위 제비뽑기 등으로 서체명을 결정해 버렸다. 개인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담겼다. 배달의 민족에서는 이러한 센스를 배민스럽다고 한다. 소위 요즘 젊은 친구들이 향유하는 B급 코드를 의식한 경영철학이다.

그런 김봉진 대표가 이번에는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와 문화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그게 이번에 발표한 을지로체다. 197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을지로 인근에서 손으로 글씨를 써주던 간판 할아버지글씨체가 모티프다. 지금은 사라진 옛 자취다.

새 폰트는 굵고 힘 있는 붓글씨체로 총 2350자로 구성돼 있다. 김 대표는 개발 프로젝트팀과 함께 을지로 인근에서 직접 간판 사진을 찍어 모으고, 샘플 글자 200자를 손으로 그렸다. 그리고 수 개월간 폰트 제작 업체와의 소통을 거쳐 을지로체를 탄생시켰다. 제작에 들어간 시간만 1년이다.

 

배민파워 원천은 사람과의 소통

김봉진 대표는 스스로를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1976년생인 그는 서울예전 실내디자인학과를 전공한뒤 네오위즈, NHN 등 굵직한 IT기업에서 디자인 업무를 했었다. 그러다 2011년 우아한 형제들을 창업했고, 지금의 배달의 민족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배달의 민족의 성공 DNA의 중심에는 디자인 철학이 있다.

김 대표가 경영하는 배달의 민족 본사에는 그가 존경한다는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의 글이 붙어 있다. 주된 내용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하자. 빅터 파파넥의 글은 모든 것들이 계획되고 디자인돼야 하는 / 대량생산 시대에서 / 디자인은 인간의 도구와 환경을 만드는 / 가장 강력한 도구가 돼 왔다 /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에게는 / 높은 사회적·도덕적 책임이 요구된다이렇게 말한다.

김봉진 대표는 빅터 파파넥이 말하는 인간을 위한 디자이너 의 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바탕으로 남다른 경영 철학과 마케팅, 브랜딩 활동을 통해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 왔다. 배달의 민족 앱은 4200만건의 누적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앱으로 배달을 시켜봤다는 것이다. 월간 순방문자 수 1100만명이고 거래액 기준 연간 5조원 규모의 배달 주문이 이뤄진다. 어떤 에너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작은 앱의 세상에서 배고픔을 채우게 했을까?

혹자는 요즘 시대에 맞는 디자인 경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기 때문에 배달의 민족의 파워는 결국 사람과의 재미난 소통에서 나왔다고 본다. 배달의 민족은 스타트업계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으로 유명하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배민아카데미를 열고 사장님들의 매출이 증가하도록 하는 교육을 무료 강의한다. 김봉진 대표는 100억원의 개인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고 현재 기부를 통해 진짜 실천 중이다.

배달의 민족은 푸드테크라고 불리는 IT기반의 음식배달 서비스다. 정보화 사업에서는 기술력이 우선이다.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를 맺는 것은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경쟁자와의 기술격차(서비스의 품질)가 경쟁력의 핵심이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기술 넘어 사람에게 집중을 해왔다.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었고, 앞으로도 이 회사의 비젼은 디자인에서 나올 것이다. 김봉진 대표는 한국경제사에 있어 새로운 경영방식의 표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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