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으로부터 시작해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명명되는 개혁과 개선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모든 조직에서 반드시 행해져야 할 지극히 필연적인 과제로서 당연시 되고 있다. 한 때 모 그룹총수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말함으로써 그 단어들의 정당성이 우리사회에 천명되지 않았나 싶다.

분명히 개혁이나 개선은 사회나 조직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의 단서가 필요하다. 바로 그 사회의 공익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충분하면서도 심도 있게 구성원의 요구조건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의 사회는 전혀 기초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류승원(광주전남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류승원(광주전남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심지어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에서 조차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해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요즘처럼 다변화된 사회에서 정확히 일치하는 공익의 공약수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런지도 모른다.

한 때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내건 가치가 애로의 개선이며, 이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 각종 규제의 완화와 제도의 개선이다. 그 결과 수많은 어려움이 해소된 바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본질과 공익을 무시한 채 오직 개선을 위한 개선만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었음 또한 인정해야 한다.

실적위주의 미시적 안목과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로 충분한 고민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제도의 개선은 국가적 차원에서 또 다른 의미의 퇴보이며, 경제적으로도 너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일례를 들어보자.

중소기업의 안정된 판로를 확보하고 무절제한 과당경쟁을 방지해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되던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되고 다수공급자제도(MAS)가 시행된 지 12년이 지났다.

전자의 제도에서 경쟁제한성의 문제나 일부조합의 부조리한 운영의 문제점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공기관과 중소제조업체사이에 조합이라는 중개인이자 중재인이 존재함으로써 납기나 품질에 관련해 최소한의 책임을 졌으며, 부분별한 단가인하경쟁의 조정을 통해 지역 업체를 안정시켜 지방경제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반면 현재의 MAS제도는 여전히 많은 운영상의 모순과 엉성함을 갖고 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년에 몇 차례씩 업무처리규정의 주요내용 변경을 제대로 된 시장조사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고 단순한 탁상행정만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업체의 절반이상을 여성기업이나 장애인기업으로 만들고(필자가 속한 조합의 경우 약 52%), 업체순위 1, 2위가 고정돼 독점적 계약을 통한 양극화를 조장하고, 배점방식 중 기술인증점수를 의무화 해 업체에게 연간 수 천 만원의 고정비를 부담시키는 등의 폐단은 분명 실패한 제도의 모습 전형이다.

지금에 이르러 단체수의계약제도를 일거에 폐지하지 않고 구조상의 문제점을 수정해 가며 탄력적으로 운영해 지금의 MAS제도와 병행 발전시켜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사회는 다수의 공익이 존재하는 다변화된 구조의 유기체로 봐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제도의 개선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사회의 다변화에 맞춰 좀 더 세분화해서 적용하고 관리해야 하며, 반드시 공익이라는 명제 하에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첫 걸음일 것이다.

 

류승원(광주전남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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