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헌문에는 공자가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가 위령공의 무도함을 말하자 계강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무도한 데 왜 망하지 않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숙어가 빈객(賓客)을 접대하고, 축타가 종묘(宗廟)를 관리하고, 왕손가가 군대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가 망하겠습니까?”

위령공은 재위하는 동안 많은 실정을 저지른 그야말로 무도한 임금이었다. <논어>를 비롯해서 <한비자> 등의 고전에도 위령공이 몇 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한결같이 그 어리석음과 무도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고사는 바로 미자하(彌子瑕)에 관한 이야기다. 미자하라는 미소년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고, 심지어 그가 주는 먹던 복숭아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미자하가 싫어지자 그 죄로 벌을 내렸는데, 바로 먹던 복숭아를 준 죄’, ‘여도지죄(餘桃之罪)’의 고사다.

하지만 위의 대화를 보면 그런 인물이라도 뛰어난 재상들이 있으면 나라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중숙어는 외교, 축타는 내정, 그리고 왕손가는 국방을 담당해 원만하게 처리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나라를 맡아서 잘 다스리고 있으므로 설사 군주가 부실하고 부도덕해도 나라는 잘 굴러갈 수 있었다.

<효경>에는 위의 고사를 잘 집약해서 말해주는 성어가 실려 있다.

천자에게 직언하는 신하 일곱 명이 있으면 비록 무도할지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天子有爭臣七人 雖無道 不失其天下).”

그리고 이어 각 지위에 해당하는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비에게 직언하는 친구가 있으면 아름다운 명성이 떠나지 않으며 아버지에게 직언하는 자식이 있으면 그 아버지는 의롭지 않은 일에 빠지지 않는다. 때문에 불의한 일을 당하면 자식은 아버지에게 간언하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임금에게 간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뿐 아니라 친구나 아버지 등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바른 충고를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역으로 말하면 진심으로 하는 충고를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직언과 충고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논어>에 실려 있는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언을 하면 치욕을 당하고, 친구에게 자주 충고를 하면 소원해진다가 말해주는 바다. 아무리 진심으로 하는 충고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는커녕 치욕을 당하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정자(程子)<근사록>에서 그 해답을 말해준다.

함께 있으면서 상대의 잘못을 충고하지 않는 것은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 진실한 마음으로 교제하면 말하기 전에 그 마음이 전해져서 말을 하면 사람이 믿게 된다. 그리고 선한 일을 권할 때도 정성은 남음이 있고, 말은 부족하게 해야 상대에게는 유익하고 나에게는 충고를 무시당하는 욕됨이 없다.”

지도자가 조직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직언과 충고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어야 한다.

 

- 조윤제천년의 내공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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