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조성욱 위원장(맨 왼쪽)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2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조성욱 위원장(맨 왼쪽)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21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를 찾았다. 공정위원장이 중기중앙회를 찾아 중소기업계를 만난 것은 지난 20174월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 방문 이후 27개월 만의 일이다.

중소기업계를 챙기는 것은 평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갑을관계 개선을 강조해 온 조성욱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성욱 위원장은 지난 9월 취임 직후 첫 경제단체 방문으로 중기중앙회를 찾으려 했으나, 국회 출석과 부산 국무회의 일정 등으로 두 차례 공식 방문이 연기된 바 있다.

이에 지난 공식 방문이 연기될 때는 직접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는 등 중소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이어왔다. 이날 조 위원장은 맨 처음으로 중기중앙회에 오고 싶었는데 아쉬웠다고 화답하며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기술유출 피해액 매년 증가세

이번 간담회에서 조성욱 위원장은 중소기업계의 각종 건의사항을 꼼꼼하게 챙겼다. 아울러 윤수현 기업거래정책국장, 고병희 유통정책관, 김성삼 기업집단국장, 송상민 시장감시국장 등 공정위 핵심 간부들을 배석시켜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직접 듣고 답변을 하도록 했다.

특히 조 위원장은 취임 이후 안산 소재 자동차부품 업체를 만났는데,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거래가 단절될까봐 (정부에) 건의조차 못하는 애로를 갖고 있었다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그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을 비롯해 김영윤 전문건설협회장, 정윤숙 여성경제인협회장 등 중소기업인 30여명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대표적 애로사항인 기술탈취와 하청 후려치기 관행을 근절할 방안을 모색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중소기업 간 기술탈취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6.5%는 대기업의 기술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불량 원인 파악’ ‘기술력 검증’ ‘납품단가 인하등의 이유로 하청기업의 핵심 기술자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을 뺏긴 중소기업은 폐업에 이른 경우까지 확인됐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A사는 대기업 거래처의 전자결재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본사에 상주하며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었다. 하지만 거래처는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A사의 경쟁기업인 B사를 선정해 A사가 저작권을 가진 소스코드를 무단 복제·탈취해 해당 업체에 제공한 바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술유출에 따른 피해금액은 2015902억원에서 20171022억원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징벌적인 법·제도가 있어도 대기업의 만연한 기술탈취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기술탈취·후려치기 근절방안 모색

조 위원장 거래단절 우려 해소할 것

中企업계 실효성있는 규제안 당부

징벌적 손배액 10배로 높여야 효과

하도급거래, 공정위 직접조사 절실

 

이날 현장건의에 나선 최전남 한국자동제어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원청기업의 기술탈취 문제에 대해 이미 손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지만 이를 10배로 높여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손해배상액 강화를 제안했다.

아울러 최 이사장은 손해액 배상 절차에 대해서도 현행 제도에서는 피해기업이 배상을 받으려면 불공정거래 신고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절차적 번거로움이 있다대기업의 기술탈취 사실이 확인되면 곧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급보증면제사유 축소 조속시행 필요

중소기업계는 하청 후려치기관행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협력기업 대상 서면조사가 아닌 대기업 직접 조사방식으로 악습을 원천적으로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중기중앙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정위는 매년 하청기업을 대상으로 하도급 실태조사를 벌여 원청기업의 불공정거래 실태를 감시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 하청기업 입장에서는 갑()인 원청사의 문제를 쉽사리 고발할 수 없어서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발표한 하도급거래 관련 정부정책 및 부당 하도급대금 지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60%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도급 대금 감액 요구에 대처를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감액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거래단절 우려88.9%에 달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이 거래가 끊길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대금을 깎아주고 있는 셈이다.

유신하 한국중전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하도급거래를 서면조사하는 방식은 철저한 갑을관계로 인해 큰 효용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공정위가 직접 조사를 벌여 계약서가 제대로 존재하는지, 계약서 내용대로 대금이 지급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납품단가의 제값받기는 단순히 중소기업계의 이익을 위해서만 주장하는 건의가 아니다. 이를 통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 일자리창출,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해소의 출발점이므로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한 하도급 대금 부당감액 행위 근절이 필요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주장이다.

이밖에 대금 지급보증 면제사유 축소 조속 시행과 하도급대금 압류 금지 방안 마련 등의 의견도 나왔다.

김영윤 전문건설협회장은 공정위의 지급보증 면제사유 축소 결단이 하도급업계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말고 신용등급에 따른 하도급대금지급보증 면제사유 삭제를 조속히 통과·시행될 수 있게 힘써 달라고 촉구했다.

공정위는 최근 공사대금 지급보증의무 면제사유에서 원사업자가 신용평가에서 공정위가 고시하는 기준 이상의 등급을 받은 경우를 삭제했다. 현행 하도급법 시행령에서는 원사업자의 신용등급이 우수한 경우(회사채 A0, 기업어음 A2+) 지급보증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지만 신용등급이 우수하더라도 단기간에 경영상태가 악화되는 경우 하도급업체가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내린 조치다.

김 회장은 또 하도급대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하도대 압류금지 규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도급대금은 수급사업자, 근로자 및 자재·장비업자 등 을들의 생존과도 직결된 금원으로 다른 채권에 비해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수급사업자가 시공한 기성대금의 안정적 확보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 조정협의역할 강화 주문

이날 간담회에서는 협상력이 부족한 영세기업을 대신해 중기중앙회가 원청기업과의 조정협의 당사자로 나설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하는 제안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추연옥 인천경기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원청기업과의 납품단가 조정 협의에서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보완하기 위해 일정조건이 충족하면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조정협의에 임할 수 있다하지만 협동조합마저 영세한 경우에는 문제가 크다고 우려했다.

이에 추연옥 이사장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고 협동조합의 요청이 있으면 중기중앙회가 협동조합을 대신해 원사업자와 하도급대금 조정 협의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해달라고 조 위원장에게 건의했다.

한편, 이날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조 위원장이 (취임하고) ·중소기업 간 자발적 상생협력을 강조하셨는데 중소기업은 대환영이지만 일부 대기업들이 안하니까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자발적 상생협력이 현실적으로 힘들고, 대기업이 그런 생각을 안하고 행동도 안하니까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김 회장은 중소기업 납품물량 감소도 우려하며 일부 대기업에서 대규모 물량을 축소하는 상황이 많이 있다는 의견들이 중기중앙회에 많이 들어오고 있고 납품단가 인하는 물론 일감 몰아주기 관행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욱 위원장은 중기중앙회 실태조사에서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 관행에 대한 현장 체감이 과거보다 6~7배 개선됐다고 나온 결과는 긍정적이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노력하겠다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제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불공정거래 관행과 대기업 갑질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는 본질적인 노력도 꼭 필요하다면서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저희(공정위)와 긴밀하게 소통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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