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점심 때 산책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곤 한다. 자주 들르다보니 주인과 친해져 자영업의 고충도 알게 되고 가게에 있는 러시아산 고양이에 드는 비용까지도 알게 됐다. 심지어 커피컵 뚜껑도 하나에 15원씩 한다는 것도 들었다. 태평양을 포함해 세계의 주요 바다가 온통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전날에 쓰던 뚜껑을 챙겨갔다. 주인에게 얘기했더니 대뜸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했다.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문득 학창시절 영어공부하면서 읽었던 유명 잡지의 글이 생각났다. 어느 사람이 해변에서 뭔가를 열심히 바다 쪽으로 계속 던지자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도대체 뭘 그렇게 계속 던지세요?” “불가사리가 말라 죽지 않게 바다 쪽으로 던지고 있어요.” 지나가던 사람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불가사리가 수만 마리도 넘는데 그렇게 한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 남자가 대답했다. “바로 이 불가사리한테는 차이가 있죠(It will make the difference to this one.)” 몇 십 년이 넘은 이야기인데도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사소해 보이는 듯한 행위가 개별 불가사리에겐 죽음과 삶을 가르는 일이 된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초대를 받았으나 급한 회사 일이 있어 2차나 합류할 요량으로 오후 10시에 도착한 적이 있다.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동기회장이 전화했다. 2차도 마치고 다들 지하철을 타러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친한 친구 몇 명과 3차 겸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을 했으나 밤 열 시 넘어 영업하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산간 오지도 아니고 명동 근처인데 요즘은 2차도 드문 데다 인건비가 올라 차라리 일찍 문을 닫는 가게가 많다는 것이었다.

지난 연말에 파주 북부 관광지 대형 오리구이 집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장사가 잘 될 때는 2층까지 사용했다는 데, 최근엔 1층도 손님이 있는 테이블이 서너 개에 불과하다고 했다. 자가 건물인지 월세를 계속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지까지는 차마 묻지 못했지만, 가족 무급 노동에 의지하는 상황은 여느 소상공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전에 미국에서 귀금속에 고가의 세금을 부과했더니 사람들이 구매를 꺼려 귀금속을 가공하는 사람들이 대량 실직하는 일도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요즘 뭐하나 산뜻한 것이 없어 보인다. 선의의 정책 관련한 경쟁과 논의가 필요하지만, 정쟁이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경제 여건도 만만치가 않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각축전과 샅바 싸움도 계속되고 있다. 거기다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늘 존재하니 해법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5000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더 어려운 시기도 많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외교적인 해법으로 전쟁 없이 난관을 돌파한 적도 있고 몇 척 남지 않은 전함을 재정비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저력도 있다. 오랜 역사와 고유의 문화, 언어 게다가 4000만명이나 되는 인구를 가진 쿠르드족이 한 번도 독립 국가를 형성하지 못해 국가 간 이해관계의 제물이 되는 현실에 비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는 미국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인구가 4000만명이나 된다. 이보다 수도 없이 가난한 많은 나라들 중 상수도, 주거, 교육,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상황에 위로를 받자는 뜻이 아니고 처지가 어려울수록 난관을 돌파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조상들이 늘 그랬듯이 말이다.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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