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내리쬐는 땡볕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굳이 주전골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연곡에서 주전골로 가기 전에 오랜만에 하조대에 둘러보기로 했다. 예전 꽁꽁 언 손을 부여잡고 구름에 가려 올라오지 못하고 진통을 겪는 일출을 찍기 위해 한참이나 서성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벌써 몇 년의 세월이 지나 버렸다. 우선 일출의 명소로 손꼽히는 정자로 달려가 봤다. 그러나 정자만 예상했는데 바로 앞에 등대로 가는 길 표시가 눈에 띄었다.

하얀 등대가 바다 끝에 서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확 트인 바다와 기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시원한 바다 바람을 쏘이며 자리를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부산하게 하조대로 오른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울창한 송림 뒤로 자그마한 정자가 다가선다.
조선초기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고려 말에 은거하며 지냈다고 하는 정자. 그래서 이 일원을 하조대라고 칭한다. 멀리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소나무 한그루가 기이한 모습으로 큰 바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출이 뜨는 모습을 보면 장관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대신 반대편 정자 난간과 소나무 사이로 붉은 해가 져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해가 질 것 같다.
이제는 하루 일은 마감해야 할 때. 다음 장소를 정하지 못한 채 나오면서 등대라는 바닷가 카페에 들러 명함 한 장을 챙겨 든다. 돌기와를 얹은 건물은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예상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부. 남자는 마당에서 골프채로 헛스윙을 날리고 있고 주방의 아주머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명함을 건네준다. 분위기 좋은 자연풍광이 무색하다. 노후를 편안하게 즐기려면 차라리 문을 열지나 말 것이지. 오랜 세월 터득한 한눈 감고 살자는 신조가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듯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돌아 나오면서 보니 설악산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해거름이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노점상 커피나 한잔 할까 하는 생각으로 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도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멀리 빼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금발의 외국인 여성이 눈에 띈다. 실루엣이 장관이다. 금세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나고 그들은 모래사장에서 공놀이를 즐긴다. 말하는 것을 들으니 러시아인들인 듯하다. 그들 덕분에 바다는 이국적으로 변해버렸다. 마치 내가 외국에 놀러 온 듯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해를 마감하고 나서 주전골 트레킹을 생각했다. 양양읍에서 한계령으로 가는 길이 4차선으로 넓혀 졌다. 구룡령으로 가는 논화리까지가 전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모기떼가 우수수 비가 내리듯 차에 부닥쳐 온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용소폭포 매표소로 향한다. 시간이 이르면 입장료를 안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간 부부 한쌍 이외에는 사람이 없다. 천천히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용소폭포를 만난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에 우르르 몰려 온 연로한 관광객들을 만나게 된다. 너나할 것 없이 주전골 풍광에 즐거움을 토해낸다. 주전골이야 사철 아름다운 곳. 여름철 안쪽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는 못다본 선녀폭포까지 오르기로 한다. 0.8km정도로 짧은 길이지만 오름이라서 숨이 찬다. 거기에 인적이 없으니 두려움도 따라 붙는다. 선녀폭포는 넓은 돌 위를 하얀 치마를 너울거리듯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낙폭을 만들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도 없다. 길은 점봉산으로 이어지지만 등산로는 폐쇄돼 있다. 연못이 없어서 무서움이 느껴지지 않아 울창한 숲 그늘에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기는 곳이다.

■자가운전 : 한계리 민예단지 휴게소앞 삼거리에서 44번 국도 이용. 한계령 고갯길을 내려오면 좌측에 용소지구 매표소가 있다. 하조대는 양양으로 가서 7번국도 따라 속초 방면으로 가면 된다.
■별미집·숙박 : 양양 남대천 주변에는 은어 회와 뚜거리탕이 제철이다. 천선식당(033-672-5566)이 괜찮다. 또 양양읍내에 있는 단양면옥(033-671-2227)에서는 시원한 냉면을 즐길 수 있다. 오색단지의 산채요리나 오색온천 식당의 시래기국이 괜찮다. 오색허브농원(033-672-0462)에서는 허브를 구경할 수 있다. 하조대 바닷가 쪽에는 등대(033-672-2526)라는 카페가 있다. 숙박은 오색 그린야드 온천장(서울 예약사무실(02-782-9971), 호텔(033-672-8500, www.greenyard.co.kr)을 비롯해 여럿 있다. 특히 탄산천의 온천욕은 빼놓을 수 없다.

◇사진설명 :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주전골 용소폭포.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