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30일 개관한 용산공원갤러리
2018년 11월 30일 개관한 용산공원갤러리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용산의 외국군 주둔은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 중심이 주한 미군 용산기지다. 용산기지 반환에 앞서 일반에 공개한 용산공원갤러리는 약 11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금단의 땅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다.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역사를 치유와 희망으로 보듬어 20181130,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용산공원갤러리는 용산기지와 한강대로를 사이에 둔 캠프킴 부지에 있다. 미군위문협회(USO)가 사용하던 건물을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일본군이 조선육군창고로 쓰던 단층 건물에 1978년 미군이 증축한 2층 건물을 연결해 ㄱ 자형이다. 건물에는 각각 1224S1225라는 문패가 달렸다.

미군이 건설한 기지 내 건물은 알파벳과 숫자 조합이 명칭을 대신하는데, 모든 건물은 T(temporary, 임시)S(semi-permanent, 반영구)로 구분한다. 영구(permanent)를 의미하는 P를 사용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두 건물은 지붕도 일본식과 한식으로 다르다. 당시 근무한 한국노무단(KSC)에 김씨가 많아 기지 이름에 ‘KIM()’을 붙였다.

용산공원갤러리는 서울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 용산문화원에서 제공 받은 지도와 사진, 영상으로 꾸몄다.

그 가운데 용산기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지도가 눈길을 끈다. 만초천이 앞에 흐르고 둔지산이 뒤를 받친 용산기지 일대는 조선 시대부터 물류의 중심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오군란을 빌미로 우리 땅에 들어온 일본군이 이곳에 눈독을 들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06년 시작된 공사는 7년에 걸쳐 서민의 터전 약 3.9(118만평)를 군사기지로 바꿔놓았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에 패해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용산은 일제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 당시 기지 모습은 1948년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과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기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부지를 대부분 군사시설로 채운 일본군과 달리 미군은 기지를 남북으로 나눠 노스 포스트(메인 포스트)에는 미8군사령부를 비롯한 군사시설을, 사우스 포스트에는 주택과 학교, 식료품점 등 생활 시설을 배치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조선총독 관저 터에는 병원이 들어섰다. 기지 면적은 2.6(786000) 정도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여의도와 맞먹는 규모다.

미군위문협회의 활동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전시물도 재밌다. 메릴린 먼로와 데비 레이놀즈 같은 할리우드 여배우가 미국위문협회 초청으로 내한했으며, 패티김과 김시스터즈, 조용필 등 내로라하는 국내 가수가 미국위문협회 오디션을 거쳐 미8군 무대에서 데뷔했다.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공간과 용산기지의 역사를 영상으로 만나는 영상실도 꼼꼼히 둘러볼 만하다. 미군위문협회는 지난 20188월 평택기지로 이전했다.

미군이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S122520197, 일반에 공개됐다. 1층에는 1225카페가 있고, 2층은 용산기지를 거쳐 간 다양한 인물의 실물 크기 사진을 전시한 기획전시실, 용산기지 관련 자료로 채운 아카이브, 청룡 만들기와 건축 산책×드로잉 등 다양한 무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회의실로 꾸몄다.

미군이 주둔한 66년 세월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용산기지 주변 역사 유적을 따라가는 워킹투어와 버스를 타고 용산기지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를 연계해도 좋다. 4개 코스로 구성된 용산기지 주변지역 워킹투어는 서울특별시공공서비스예약, 용산기지 버스투어는 용산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용산공원갤러리 관람 시간은 오전 10~오후 7, 휴관일은 일·월요일과 공휴일이다. 관람료는 무료, 주차는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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