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천재로 불리던 이세돌 9단이 25년간 바둑계를 호령했던 영광을 뒤로 하고 은퇴를 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 펼쳐진 고별전 3국에서 이세돌은 NHN이 개발한 국산 바둑 AI 한돌을 상대로 패하며 총전적 12패로 대국을 마감했습니다. 은퇴경기는 바둑계에서는 생소한 일입니다. 다른 스포츠처럼 은퇴경기가 따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로 열린 이번 은퇴 대국에는 바둑인들을 비롯해 대중의 관심도 쏠렸습니다.

무엇보다 이세돌이라는 거목의 은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지난 19957월 제71회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된 이세돌은 그간 통상 50차례의 국내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승부사였습니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바둑계를 줄곧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세돌 9단은 지난 1999년 승단대회 참가를 거부했었습니다. 대국료도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선수의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프로근성을 발휘한 소신었죠. 또 지난 2009년에는 대진이 상위 기사에 불리하다며 한국바둑리그에 불참을 선언, 유례없는 휴직기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프로기사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프로기사회 탈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선언은 한국 바둑계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세돌 9단은 프로기사 상금 일부를 일률적으로 공제하는 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국 한국기원이 올해 7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한국기원 주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정관을 신설하면서 이세돌은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의 프로기사 은퇴는 결국 하나의 세계(바둑계)와의 싸움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물론 그는 은퇴의 변으로 인공지능(AI)을 이길 수 없어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바둑판이라는 작은 세상을 넘어 새로운 시대와의 대결도 마다하지 않은 모험가였습니다. 그 유명한 2016년 알파고와의 대결은 바둑계를 넘어 세계사에도 남을 진기록입니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현재도 세계 최강 AI 프로기사입니다.

또한 이번에 은퇴대국에서 마주 앉았던 한돌과의 대결을 통해 AI를 이기는 것을 넘어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바둑계 밖으로까지 영향력을 넓히며 그의 찬란했던 바둑인생도 마감을 했습니다.

이세돌에 맞선 한돌이란 AINHN이 알파고 이후 201712월 첫 선을 보인 바둑 AI입니다. 지난 1999년부터 한게임 바둑을 서비스하며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하고 다양한 대국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발전했던 AI였습니다. 프로기사와의 전적도 화려했습니다. 올해 1월 신민준 9, 이동훈 9, 김지석 9, 박정환 9, 신진서 9단과의 릴레이 대국인 프로기사 TOP 5 vs 한돌 빅매치를 펼쳐 전승을 거뒀습니다.

어찌됐든 이세돌 9단은 AI에게 2승을 거둔 유일한 인간입니다. 그는 마지막 대국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 판 잘 즐기고 갑니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AI와 인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인간은 바둑에서나 인생에서나 과감한 모험을 결정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모든 걸 걸고 자신을 내던지는 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AI는 오직 가장 안전하게 이길 수 있는 최상의 길만 찾습니다. 그래서 AI의 바둑은 무미건조하다고 합니다. 이세돌 9단은 프로기사로서의 흥미로운 일대 사건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인간만인 선택할 수 있는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새로운 2020년에는 우리 모두 이세돌 9단과 같이 끊임없이 인생의 묘수를 찾는 진정한 인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