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동향] 美 드럭스토어 CVS의 변신
미국 드럭스토어 기업 ‘CVS’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오프라인 유통기업이다. 약부터 화장품까지 온갖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매장 디스플레이·할인·쿠폰 등을 활용한다. 오프라인에 기반한 전통적인 기업이란 뜻이다.
CVS는 지난 10여 년간 백신·독감주사 등 간단한 치료를 제공하는 동네의원을 운영해 왔다. 그리고 이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대형 의약품 유통사 최초로 보험사와 합병을 결정했다. 이런 CVS가 2018년 보험사 애트나(Aetna)를 인수했다. 그 결과, CVS는 세계 최대 헬스케어 상장기업으로 등극했다.
CVS와 애트나는 합병을 통해 서로 다른, 그리고 지금까지는 분리됐던 보건업계의 두 분야를 하나로 합쳤다. 현재 목표는 애트나 고객 2200만명의 보험청구정보 및 분석데이터를 통해, 당뇨나 심장병 등 특정 질병의 발병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병이 악화되기 전에 CVS의 역량을 활용, 헬스허브·약국 등에서 적절한 검사와 처방을 제공한다. 병원 재입원을 줄이고, 환자들이 처방전을 준수하도록 유도해 비용을 대폭 절감한다는 구상이다.
이후 2단계는 다른 보험사 등 CVS의 주요 고객들을 설득,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즉 CVS가 운영하는 동네의원에서 상담과 검사를 실시해 환자가 수술이나 응급실 신세를 지는 사태를 예방, 이로써 보험사가 절감할 거액 중 일부를 CVS가 받는 구조다.
CVS는 편의점식 의료 접근법의 성공을 위해, 두 개의 축에 의존하고 있다. 첫 번째는 방대한 지점망이다. CVS의 미국 내 매장 수는 9900개로, 월그린스(Walgreens)와 사실상 공동 1위다. 미국 가정의 80%가 도보나 운전거리 16km 이내에서 CVS를 찾을 수 있다. 현재 CVS는 독감주사·대상포진백신 접종 등 기본적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미닛클리닉(MinuteClinic) 1100개소를 운영 중이다.
월그린스의 유사 진료소보다 2배 이상 많은 수다. 약국시장에서 3위에 머물고 있는 월마트는 단 3개 주에서 소수의 매장 내에 의원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기둥은 대형 보험사의 영향력이다. CVS와 애트나 합병으로 약국업계의 3대 주요 영역인 소매약국, 보험, 그리고 처방전의 적합성을 검토하는 약제비관리 전문회사(PBM)가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애트나를 인수한 CVS는 돈이 되는 분야에 집중하고자 한다. 바로 만성질환 관리다. 미국 성인의 50~60%가 5대 질환(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우울증, 천식)중 하나 이상을 앓고 있다. 미국 보건부문의 연간 총 지출액 3조5000억 달러 중 80%가 이 5대 질환에 소요된다.
CVS의 새 사업모델은 애트나 보험 가입자의 모든 세부적 건강 정보(입원 이력, 검사결과, 진단기록 등)를 약사와 건강전문가에게 제공한다. 이들은 고객이 일상적으로 건강을 관리하면서 마주칠 확률이 가장 큰 당사자들이다.
또한 애트나의 AI기반 분석은 유전적 특성과 의료기록을 바탕으로, 헬스허브의 일선 담당자들에게 어떤 환자의 5대 질환 발병률이 높을지 알려 준다. 미국 성인은 연평균 1.6회 정도 의사 진료를 받는다. 병원 가는 횟수보다 약을 타러 가는 횟수가 훨씬 많은 것이다.
웰빙 지향 드러그스토어를 추구하던 CVS가 전례 없는 사업 간 결합으로 전략을 확장한 것은 엄청난 변화다. 보건산업 전체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이 기대된다. CVS는 처방약을 당일 또는 익일 무료배송, 월 10달러 스토어 크레딧 제공, CVS 브랜드 상품 할인, CVS 헬스 웹사이트에서도 추가 부담 없이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혜택을 담은 유료 회원제 프로그램인 케어패스를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해 왔다.
CVS는 이 같은 유료회원제 프로그램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CVS의 케어패스 회원제 프로그램이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제’를 연상시키고 있어 가입비 이상의 혜택으로 단골고객을 만드는 영업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CVS와 애트나 합병은 전대미문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CVS는 성공을 위해 보험과 약국업 두 분야에 정통한 리더들을 확보하고, 서로 다른 업무방식을 통합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 하제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