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기생충까지 봉준호의 든든한 파트너

오스카 집어삼킨 미다스의 손

영화 기생충과 감독 봉준호’. 올해 최고의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지난 29(미국 현지시간)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하자 정치권은 너도나도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른 바 봉 마케팅이다. 정치권은 오는 415일 총선이 있다. 총선의 관건은 선거운동이고, 당시 최고 이슈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다.

대중에게 제대로 인정받은 콘텐츠라면 정치권은 약간의 변주를 통해 자신들의 홍보채널로 쓰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에서는 봉준호 생가 복원, 봉준호 박물관 같은 공약이 남발 중이다. 2의 봉준호를 탄생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김연아, 손흥민 등 세계적인 스포츠스타가 탄생할 때도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언제나 정치권은 대중이 긍정적으로 초관심을 갖는 이슈가 목마르다. 이슈에 편승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얹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그것이 노골적이든 세련됐든간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4.15 총선을 대비해 각 정당 예비후보마다 기생충에서 나오는 여러 장면을 선거운동 포스터로 패러디하고 있다.

갑자기 정치권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만큼 현재 기생충과 봉준호가 내뿜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대한민국 전체를 덮고 있기에 그렇다. 아마도 올해 내내 이 키워드는 유통기한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데 봉준호의 오스카 쾌거의 이면에는 바로 우리 기업의 숨은 공헌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이미 시상식 현장에서 시청자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모습을 포착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최종 수상하자,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한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미소와 독특한 머리스타일, 말하는 방식, 걸음걸이까지. 특별히 감독으로서의 연출 능력을 사랑한다기생충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원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등재

이미경 부회장은 한국영화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번 기생충 영화의 책임 프로듀서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영화 크래딧 올라갈 때 보면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CJ는 기생충의 투자 배급사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손녀다.

이미경 부회장은 은둔형 CEO. 특히 지난 6년간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경 부회장은 두문불출했다. 그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는 자리에 함께했다. 국제무대에 우리 영화가 알려지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영화 광해를 제작한 뒤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정부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은 아픈 과거도 있다. 그 일 때문에 이후 이 부회장은 미국 LA 등에 머물며 공식 활동을 자제해 왔었다. 아무튼 이 부회장은 봉 감독의 후원자이면서 열렬한 팬이다. 이 부회장이 과거에 봉 감독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10여년전 칸국제영화제에 영화 마더가 초청됐을 때다. 원래가 공식행사에 나타나는 걸 꺼리는 이미경 부회장이 칸을 직접 방문한 것은 봉 감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기생충이 지난해 칸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사실을 안 뒤로 이 부회장이 물심양면 지원을 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세계 영화판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인 AMPAS 신규 회원으로 위촉되는 등 해외 영화 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이 부회장과 봉 감독은 그동안 수차례 영화 제작 호흡을 같이 했다. 기생충을 비롯해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등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봉준호 감독만이 이 부회장의 영화산업 파트너가 아니다. 한국영화산업에 있어 CJ는 최대 재정적 후원자다.

특히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이미경 부회장이 지휘한 하나의 특급 프로젝트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특정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아닌, 전 세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8000여명의 투표로 선정되기 때문에 로비전에 가까운 홍보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CJ가 북미에서 기생충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원가량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전 세계 53개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고 15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수상명을 나열하면 골든글로브(외국어영화상), 전미 비평가위원회(외국어영화상), 뉴욕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LA 비평가협회(작품상·감독상·남우조연상) 등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총 30여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 기반을 밟고 봉준호의 기생충은 이번 아카데미 4관왕에 올라선 것이다. 이 부회장은 확실히 한국 영화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숨은 조연자다. 그리고 이번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경 부회장은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진정한 주연으로 면모를 과시한 것이다.

 

동생 이재현 회장과 문화산업 쌍끌이

이미경 부회장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관객들의 거침없는 의견 덕분에 우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감독과 창작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동생인 이재현 CJ 회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습니다.”

이미경 부회장과 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25년간 영화 투자와 제작, 극장, 콘텐츠 투자, 방송 등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할 밑그림을 그렸다. 미디어 콘텐츠 전문기업인 CJ ENM을 통해서 말이다. 지난 1995년 영화제작사 드림웍스 설립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문화산업에 뛰어든 CJ ENM1997년 영화 인샬라를 필두로 300여편의 한국영화에 투자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 25년간 CJ ENM의 영화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해온 것이다.

이렇게 CJ가 국내 다른 기업보다 문화 산업 투자에 앞장선 것은 이재현과 이미경 오너리더십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문화 산업은 언제 흑자가 될지 모르는 리스크가 큰 영역이다. 실제로도 CJ는 오랜 적자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문화 사업을 지속해 왔고, 이제 어느 정도 실적 면에서도 안정화 단계에 올랐다.

한국영화 산업의 대모로 떠오른 이미경 부회장. CJ가 오래전부터 세계시장을 염두하며 문화 산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앞서 설명한 1995CJ의 전신인 제일제당은 그해 설립된 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드림웍스SKG3억달러를 투자하며 영상 산업에 뛰어들었는데, 이 드림웍스SKG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CJ는 당시 지분투자와 함께 아시아 지역 배급권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CJ의 영화사업은 태생부터 글로벌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CJ가 문화 산업으로 발을 조금씩 옮겨가는 와중에 미국에서 인맥을 다져왔던 이미경 부회장이 크게 공헌했다. 이후 CJ는 한국에 새로운 영화 산업을 탄생시킨다. IMF 시기인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을 열어 영화 산업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왔다. 또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하며 한국 영화 산업은 크게 도약했다.

지금까지 CJ가 영화문화 산업에 투자한 금액이 8조원 가량 된다고 한다. 창작자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시대적 과업에 CJ가 나섰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과 같은 거장의 탄생 배경에는 이렇듯 문화를 사랑한 한국기업의 숨은 공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경 부회장이란 기업인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볼만한 일이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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