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과 폭정은 백지 두 장의 차이다. 한 장은 국민의 소리를 듣느냐 듣지 않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한 장은 과학적으로 하느냐 주먹구구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선정(善政)이 될 수 없다.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은 가설이요 주먹구구일 뿐이다. 정치가나 경제관료들은 가끔 자기들의 일정표에 따라 서두른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 관찰과 실험을 소중히 하듯 경제정책의 경우도 사전 테스트는 긴요하다. 일단 검증과정을 거친 이론도 적용대상 국가·사회가 달라지면 파이로트 테스트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 우리 정부의 밀어붙이기 개혁기조와 정책입안 과정은 백지 두 장 이상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물론 박력과 열정은 중요한 미덕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 폭정이 돼버릴 것이다.
얼마 전에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국대학총장회의에서 교수 1인당 학생수를 강조했는데, 현재 187개 대학의 평균은 34명, 2010년까지 전국평균 26명, 국립대학은 21명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과도한 대학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26명이니 21명이니 하는 숫자는 검증되지 못한 주먹구구다.
반증사례를 들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볼드리지 국가품질상 교육부문에서 최초로 2001년도에 수상한 위스컨신 대학(스타우트)은 전임교수 1인당 학생이 30명이다. 그런데 시상식장에서 대통령과 에반스장관은 “21세기 교육계의 귀감”이라고 이구동성 극찬했다.

주먹구구식 정책은 ‘폭정’
지난번 주5일 근무제의 경우도 당시에 이를 추진한 사람들은 ‘주5일 근무제가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가설을 말했는데 그 후 이를 시행한 기관과 기업들에서 과연 얼마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결국 인건비 부담만 증가됐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요즘은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건 때문에 또 시끄럽다. 그 동안 단체수의계약제도는 중소기업 보호육성을 위해 많은 부분 기여해왔으나 실행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음을 중소기업계도 인정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개선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단번에 완전 폐지를 하고자 한다면 그 명분이 충분해야 하고 폐지 후 훨씬 어필할 수 있는 대안이 세심하게 짜여져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명분, 대안, 벤치마크가 모두 불분명하다.

단체수의계약 폐지 명분 없어
전자정부(e-Gov), 전자조달(e-Procurement) 방식이 현실화됐는데 왜 개선안이 없겠는가. 미국 해군이 관리하는 www.cpars.navy.mil/metrics 사이트를 보면 분기별로 1~2만건의 계약사업 목록, 평가요소, 등급 통계가 발표되고 있다.
연방정부는 PPIRS를 개발해 정부납품 업체들에 대한 품질, 기일준수, 원가관리, 관계정보까지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각 부처의 중소기업 지원이 바람직한 비율과 질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감독하면 될 일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쟁’이란 표어는 적어도 중소기업 정책의 경우는 첫번째 표어가 될 수 없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말한대로 ‘정부는 개인 또는 기업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이러한 최소한의 정부역할 중 하나가 중소기업 보호육성이다. 종업원 10명, 20명의 중소기업에게 스스로 보호하라 경쟁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 정부의 일인가.
아브라함 링컨의 말은 사실 정부의 역할을 너무 축소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부는 링컨보다 더 물러선다.
중소기업 보호육성을 가볍게 본다면, 설익은 시장경제이론 때문에 중소기업을 버린다면,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호라, 중소기업은 누가 살릴 것인가.

이 재 관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jklee@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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