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 “수출이 주요 전략’
경제 난맥상에 출구전략 제시

이젠 中企가 성장·분배의 중심
스스로 구체적 비전 제시해야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부를 대신하던 시기다. 당시 장면 정부는 기업인을 냉대했던 이승만 정부와 달랐다. 장면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해 기업인과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초기에 기업인을 구속하고, 벌과금을 부과했다. 죄목은 부정축재였다.

그래서 군사정부 초기 경제개발에 기업인의 참여가 적었다. 대신 일부 혁명세력과 대학교수가 이끌었다. 이들 개발세력은 농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을 꾀했다. 그리고 점진적인 공업화를 추진했다. 필요 자금은 통화개혁으로 확보하려 했다. 당시 10환을 1원으로 교환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이마저 일부만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공업화 자금으로 활용했다. 당연히 기업가는 거세게 항의했다. 미국 군정에 참여했던 미국기업이 손해를 보자 미국정부까지 가세해 반대했다. 결국 통화개혁이 실패했고, 개발세력은 퇴장했다.

이어 기업과 엘리트 관료가 경제개발을 주도한다. 핵심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이병철 회장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농업부터 산업혁명을 거치는 선진국 성장 경험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선진국의 빠른 임금 상승에 주목했다. 선진국에서 도태되는 산업이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하자고 건의했다. 세계무역이 커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수출을 주요 전략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외자를 유치해 충당하자고 했다. 이에 군사정부는 출범 초기 구속했던 기업인을 풀어주고, 벌과금 대신 기업 설립을 의무화하며, 기업인을 독려했다. 이병철 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거다.

이후 박정희 정부의 대기업 편애는 더욱 심해졌다. 1964년 중소기업중점육성정책이 대표 사례다. 중소기업중점육성정책은 기업규모별로 전문업종을 정해줬다. 대기업 전문업종에 중소기업이 사업을 하고 있다면 사업전환을 지원했다. 각자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정부는 1972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다. 중화학공업 제품은 많은 소재와 부품이 필요하다. 당시 대기업은 이를 다 소화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부는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을 제정해 대기업을 도왔다.

우리 경제가 심상치 않다. 2019년 경제성장률(속보치)2%. 한국전쟁 이후 이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던 적은 4번에 불과하다. 저마다 분명한 사정이 있었다. 1956년은 국제원조가 갑자기 줄었기 때문이다. 1980(민주화운동과 비상계엄), 1998(외환위기), 2009(글로벌 금융위기)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던 시기였다. 그만큼 지금은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경제를 덮어버렸다. 생각보다 파장이 깊고, 넓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경제 파이를 키우는 것은 보수고, 경제 파이를 나누는 것은 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경제가 내 편, 네 편 가를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행히도 우리는 여전히 편을 가르고 있다. 틈바구니에서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마치 군사정부가 기업인을 구속하고, 경제개발을 꾀하려는 진퇴양난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출구전략을 마련한 이가 이병철 회장이었다. 정확하게 상황을 인식했고, 냉정하게 환경을 분석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이 성장의 중심이자, 분배의 중심이다. 중소기업은 사업체의 99%라며 경제의 절대다수라고 주장하곤 한다. 절대다수를 강조할수록 정부의 지원은 늘어갔다. 이제 중소기업 스스로 성장의 전략을 마련하고, 분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중소기업중앙회에 분명 기회이다. 1960년대 한국경제의 큰 물꼬를 텄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기억하자.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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