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트로트 전성시대’

가인이어라~”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진또배기~ 진또배기~” 대한민국은 남녀노소를 안가리고 트로트 열풍이다.

작년에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트로트 예능 미스 트롯이 그 도화선이었다. 여성 참가자들의 경쟁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하면서 역대 종편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남성 참가자 버전인 미스터 트롯은 무려 30.4%를 기록하면서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상파가 오히려 부러워하는 종편 예능 시리즈가 된 것이다. 거기에 국민MC인 유재석이 유산슬로 가세하면서 새로운 트로트 전성시대가 열렸다.

트로트는 소위 40~50대 이상 어른들만의 음악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대중가요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왔지만 한동안 주류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트로트 혹은 뽕짝이라 불리는 음악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일까.

트로트(trot)의 어원은 폭스트롯(foxtrot) 찾을 수 있다. 폭스트롯은 미국 사교댄스 곡의 장르 중 하나이다. 4분의 4박자인 4비트 리듬을 베이스로 진행되는 댄스곡으로 미국 연예인인 해리 폭스(Harry fox)1914년에 고안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My way’로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All of me’ 등이 전형적인 폭스트롯이다. ‘슬로우-슬로우--으로 대표되는 느린 춤을 위한 노래이다 보니 느린리듬이 특징이다. 이 폭스트롯이 일본에 전파되면서 춤은 소위 부르스라 불리는 느린 춤으로 변형됐고, 노래는 엔카로 바뀐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에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파 되면서 폭스 트롯이 트로트로 줄여서 불리게 됐다. 일본어에는 받침 발음이 많이 없기에 트롯이 트로트로 불린 것이다.

트로트는 4분의 4박자로 2박 계열인 쿵짝 쿵짝이 기본 리듬이다. 그것이 사람들 귀에 뽕짝 뽕짝으로 들리기에 트로트=뽕짝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다만, 뽕짝은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트로트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 트로트의 시작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탕자자탄가’(1921)가 최초의 유행가임에는 이견이 없다. ‘탕자자탄가는 보통 희망가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미스터트롯에서 이찬원이 부르면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후 1930년대에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1936)’이 유행했으며, 1940~50년대에는 현인의 신라의 달밤’(1947), ‘굳세어라 금순아(1953)’,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1948) 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앞서 언급한 노래들은 상당한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기도 하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월북한 작곡, 작사가, 가수와 관련 있는 노래들이 발행금지 처분을 받으면서, 트로트도 주춤한다. 앞서 언급한 신라의 달밤도 원 작사가인 조명암이 월북하게 되자 금지곡 처분이 두려었던 작곡가 박시춘이 다른 작사가(유호)를 섭외해 제목과 가사를 바꿨기에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원래 제목은 인도의 달밤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아름다운 중소기업 나눔콘서트에서 미스트롯 송가인이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아름다운 중소기업 나눔콘서트에서 미스트롯 송가인이 공연하고 있다.

1960년대 들어서 LP, 소위 레코드판이 보급되면서 트로트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는다. 1957년 데뷔한 이미자는 1960년대부터 정상에 오른 트로트 가수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기 시작했다. 또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1), 남진의 가슴아프게’(1967) 등이 크게 유행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남진과 나훈아, 두명의 라이벌 구도가 트로트계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진은 팝과 트로트를 접목하면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됐고,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고집했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신(), () 트로트로 나눠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 김태호의 소양강 처녀(1970)’, 송대관의 해뜰날’(1975) 등이 크게 히트했다.

1960년대 이미자 이어 70년대 남진·나훈아 전성기 쌍끌이
미스·미스터 트롯 선풍적 인기, 송가인·임영웅 등 스타덤

1970년대 말부터는 조용필의 시대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 ‘창밖의 여자(1979)’, ‘미워 미워 미워’(1982), ‘일편단심 민들레야(1983)’, ‘서울서울서울’, ‘모나리자(이상 1988)’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가왕이라 불린다.

또한, 이성애가 일본에 진출해 트로트를 전파하면서 조용필, 김연자 등이 일본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 김수희의 남행열차’(1984),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1985), ‘신사동 그사람(1988)’ ,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해(1989) 등이 전국적으로 히트하면서 여성 트로트 가수의 시대가 열렸고, 송대관, 태진아, 현철, 설운도 등 남자 가수들이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리면서 트로트 전성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락, 발라드, R&B 등 가요계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트로트는 내리막길을 걷지만, 방실이의 서울탱고’(1990), 배호의 신토불이’(1992), 김수희의 애모(1993),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1994) 등 새로운 트로트 장르 들이 등장하면서 명맥을 이어간다.

가요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어진 트로트는 고속도로 휴게소, 관광버스 같은 비주류 시장에서 소비되기 시작했고, 정통 트로트보다는 빠른 템포의 세미 트로트나 메들리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2004년 장윤정의 어머나를 시작으로 2005년 박상철의 무조건’, 2006년에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젊은 트로트 가수의 시대가 시작됐다. 지금은 송가인, 홍진영, 강진, 윤수현 등이 젊은 트로트 가수의 계보를 잇고 있다.

트로트 100년사를 한 줄로 요약하면 한국인의 희노애락을 함께한 음악이지 않을까? 위에 언급된 곡들을 보면 탄생한지 80~90년 이상 된 노래들이 아직도 불리고 있고, ‘신라의 달밤(1947), ‘해뜰날’(1975), ‘부산갈매기’(1982), ‘아모르파티(2013)’ 같은 곡들은 10~20대 젊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트로트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정통트로트는 다시 유행하기 힘든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명실상부한 대세인 송가인은 정통 트로트를 고집하고 있다.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의 결승전 선곡이 1956년에 나온 단장의 미아리 고개임을 봐도 그녀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정통 트로트를 고집하지만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 세대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미스터 트롯을 봐도 1950~70년대 트로트 가요들이 다시 회자되고 인기를 얻는 것을 봐도 그렇다. 정통 트로트가 젊은 세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트로트는 오래됐지만 진부한 노래가 아니다. 앞으로도 트로트는 우리의 희노애락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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