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사업 침체기 속 인천공항 사업권 획득 통큰 결단’, ?

한섬 패션 글로벌화수직이륙 포석

지난해 경기불황 여파와 올해 연초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재계는 잔뜩 움츠리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럴 때 그야 말로 돌격 앞으로외치며 공격경영중인 곳이 있다. 바로 정지선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이 그렇다.

우선 면세점 사업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지난 9일 발표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사업권 입찰에서 DF7 사업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DF7은 패션 및 기타 면세상품을 파는 권한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면세사업을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밖에 안됐다. 2년 만에 면세사업 시장의 글로벌 무대인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 처음 진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 사업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번 인천공항 사업권은 현대백화점 입장에서 정말 뜨거운 승부였다. 기존 신세계면세점이 운영 중인 DF7 사업권 입찰에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등이 모두 뛰어들었다. 정말 최강자들의 경쟁이었던 거다.

어차피 공개입찰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입찰가격이라는 점에서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인천공항에 안착하기 위해 이들 경쟁 면세점보다 훨씬 높은 입찰가격을 써냈다는 이야기가 많다. 최근 들어 면세사업에 대해 대기업 일부가 철수하는 등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현대백화점그룹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규모의 경제로 후발주자 핸디캡 극복

이제 현대백화점은 면세업계의 4’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도전으로 현재 운영 중인 무역센터점, 동대문점 등 시내면세점 2곳을 포함해서 인천공항까지 면세사업을 위한 모든 진영을 두루 갖추게 된 것이다. 롯데, 신라, 신세계가 장악하다시피 하던 이 시장에 현대백화점이 큰 이슈를 만들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인천공항 진출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같은 불황기에 과감한 사업결정은 오너십 말고는 원동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지선 회장은 면세점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요즘 면세점 시장 자체가 침체기다. 한화도, 두산도 면세점 사업을 차례로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동대문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 모집에도 처음부터 현대백화점만 참가를 했었다. 특허권 취득을 전제로 동대문 두산면세점의 부동산과 유형자산 일부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업계 추정 6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면세점 시장은 추운데, 현대백화점만 사업의 군불을 때는 이유는 확장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는 속내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업계 후발주자다. 2016년 절치부심한 끝에 면세 사업권을 따냈고 그 뒤 201811월 코엑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8~10층에 첫 면세점을 열었다. 시작한 지 정확히 1년반도 안됐다. 그런데 신규 면세점답지 않게 공격적이었다. 무역센터점 오픈과 함께 버버리, 페라가모, 구찌 등의 명품을 입점시켜 주목도 받았다. 지난달 문을 연 동대문 두타면세점은 코로나19의 여파로 개장 연기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지선 회장은 원안대로 문을 열어 사업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괜히 공격경영이 아니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롯데, 신라, 신세계 등 경쟁 기업들이 하나같이 인천공항의 비싼 임대료를 걸고 넘어지며 사업권을 갖고 있는 한국공항공사에 깎아줄 것을 요청했었다. 솔직히 롯데, 신라, 신세계는 인천공항 DF7 사업권 말고도 다른 공항 면세사업권이 있으니, 가격흥정이 될 수 있다.

그러자 정 회장은 오히려 가장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했다. 공격적인 베팅이다. 앞서 언급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베팅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면세사업이라는 게 지금은 말 할 수 없는 불황기이긴 하지만 일단 사업권을 획득하고 점포를 늘려 투자를 하면 할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다. 이제는 옛말이 됐다고는 하지만 면세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지선 회장의 자신감은 현대백화점 면세사업 실적에 있다. 지난해 큰 폭의 실적 개선을 보였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지난해 1분기 236억원의 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어쩌면 첫해이기 때문에 흑자내기는 쉽지 않다. 2분기를 보자. 2분기 194억원을 기록했다. 적자폭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3분기 171억원, 4분기 141억원으로 분기마다 적자 폭이 개선 중이다. 이정도 흐름이면, 올해 흑자전환도 가능해 보인다. 일부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긍정 전망이 다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정지선 회장의 면세사업 승부수는 올해 상반기 실적만 봐도 그 성공여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최대 악제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긴 하다.

 

계열사 CEO ‘젊은 피수혈 본격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지선 회장이 면세사업에 공격 경영을 하는 또 다른 전략적 포인트는 패션 사업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처음으로 M&A에 나섰던 정지선 회장은 그해 한섬을 인수했다. 한섬은 Time, MINE, 시스템, SJSJ 등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패션 제조업체다. 그리고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에서 한섬은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우뚝 일어서 있다. 2017년에는 SK네트웍스의 패션부문을 인수했다.

두 회사를 인수해서 국내 패션업계 4’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한섬의 경쟁력은 경영상으로도 현대백화점의 중심이 되고 있다. 김형종 한섬 대표이사 사장을 지난해 연말 신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형종 대표는 올해 60살로 비교적 젊은 리더십에 속한다. 현대백화점은 주요 계열사 사장단도 동시에 교체했다. 윤기철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이 현대리바트 대표이사로, 김민덕 한섬 경영지원본부장·관리담당(부사장)은 한섬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윤 사장은 58, 김 사장은 53살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젊은 CEO들의 리더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일찍부터 현대백화점그룹의 유통망을 활용해 패션과 가구 등의 제조업을 키워 왔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도 정 회장은 면세사업만 하려는 게 아니다. 바로 이 패션사업을 함께 글로벌하게 키우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인천공항은 패션사업을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다. 코로나19 때문에 요즘 공항 유동인구가 줄긴 했어도 올해 1월만 해도 인천공항의 하루 방문객은 2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섬의 브랜드들은 아직 해외 명품브랜드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는 웬만큼 인지도를 쌓았지만 세계인에게 인정 받으려면 결국 면세점에 입점해야 한다. 현재 한섬의 패션 브랜드는 시내 면세점인 HDC신라면세점에만 편집숍 형태로 입점해 있는 중이다. 앞으로 한섬이 인천공항에 쇼윈도 문을 열면 해외사업에도 탄력을 받는 건 뻔해 보인다.

이미 한섬은 지난해부터 글로벌화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전력을 다해 해외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1월이었다. 한섬의 대표 패션브랜드인 시스템과 시스템옴므가 4대 패션위크인 파리 패션위크에 선을 보였다. 그리고 파리에서 단독 쇼룸을 열고 20개 글로벌 패션회사와 계약을 맺는 행보를 보였다. 유럽이야 말로 패션과 럭셔리 브랜드의 본고장이니만큼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최대 유통회사와 수출 계약

중국시장도 공략 중이다. 중국 최대 유통회사로 꼽히는 백련그룹과 한섬이 수출계약을 맺고 현지 고급 백화점인 상하이 제일팔백반백화점 비롯한 여러곳에 매장을 내고 있다. 이번 현대백화점이 사업권을 따낸 장소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이다. 여기서 현대백화점이 가장 잘 팔 수 있는 아이템은 한섬의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에 그렇게 과감한 입찰 베팅을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난 2008년에 총괄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젊은 3세 경영자인 정지선 회장이 주도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은 과거와는 완전하게 달리 변신과 도전의 방향으로 그룹의 미래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롯데와 신세계가 천문학적인 투자금으로 여러 사업을 확장하고 앞으로도 투자계획을 밝혀온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그룹은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유통 대기업 3’에 들어가는 현대백화점의 위상을 본다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일단 패션 사업이 안정적이고 성장 가능성이 충만하다. 한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64억원 정도다. 전년과 비교하면 16.7% 증가한 규모다.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돌파한 건 인수 후 처음 있는 일이다. 2017년 인수한 SK네트웍스 패션부문도 인수했던 당시 55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2018920억원,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했다. 경영자의 자신감은 포부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해당 사업의 실적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조화를 이룰 때 과감한 도전과 혁신이 이뤄진다. 지금 현대백화점그룹은 인천공항에서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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