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류 침체 속 해태아이스크림 파격적인수

퀀텀점프정조준, 빙그레 웃을까

식품업계만큼 보수적인 곳도 없다. 우리가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 스낵류 등만 떠올려보자. 유년시절 즐겨먹던 과자는 수십 년을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도 큰 디자인 변화 없이 여전히 판매 중이다. 스테디셀러 브랜드 몇 개만 나오면 식품기업으로서 장수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안정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스테디셀러를 내놓기까지 무수한 도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수기업일수록 이러한 도전과는 멀었던 게 업계의 기본적인 흐름이었다.

 

1400억원 투입, 1위탈환 겨낭

그 흐름이 최근 깨지고 있다. 올해로 53주년을 식품업계 대표 장수기업인 빙그레가 파격적인 혁신을 진행 중이다. 331일이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할 때 업계는 무척 놀랐다. 인수를 위해 지불할 비용이 무려 1400억원이라서도 그랬다. 코로나19가 한창 번지던 시기에 그것도 기업들이 잔뜩 현금을 보유하는데 몰두하는 가운데, 빙그레가 도전을 선언했다는 것도 놀랍다.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면 빙과업계가 요동치게 된다. 국내 빙과류 업계 1위는 롯데제과다. 2위가 바로 빙그레 그리고 3위 롯데푸드, 4위 해태아이스크림 이다. 편의점이든, 마트든, 동네 수퍼마켓이든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열어 보면 국산 브랜드는 이들 4개 업체 제품이 주류다. 그러니 2위 빙그레가 4위 해태아이스크림을 품에 안으면, 이제 빙과류 업계 선두는 범 빙그레가 되는 게 시간문제다.

빙과류 업계는 빙과 시장을 대략 16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예전에는 이 시장이 2조원이 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주로 사먹는 소비층은 어린이들이다. 요즘 출산율이 저조하면서 소비도 감소하고 있다. 빙과 시장은 침체기를 맞고 있는 상태다.

빙과시장은 침체기고, 코로나19로 올해 경기전망은 암울하고, 인수합병 금액으로 1400억원을 투입하는 빙그레의 전략이 약간 의아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선 해태아이스크림의 껍질을 뜯어보자. 이전에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사업부에서 올해 초 자회사로 분리된 독립적인 법인이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은 1507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30억원이었다.

해태아이스크림은 빙그레가 기록한 스테디셀러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라보콘, 누가바, 바밤바, 쌍쌍바 등이 국민에게 오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부라보콘은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처음으로 종류를 선보인 대부격이다. 해태아이스크림은 이들 주력 상품으로 전체 매출의 90%를 올리고 있다.

빙그레는 메로나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해외에 수출하는 한류 빙과다. 빙그레 투게더는 종류의 아이스크림 원조다. 여기까지 보면 빙과시장 대표상품들이 빙그레라는 지붕아래 모이게 된다. 빙그레의 기존 영업망은 상당히 탄탄하다. 해태아이스크림의 상품력이 있는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빙그레의 영업망을 타면 더 큰 파워가 증진될 걸로 보인다. 또 해태아이스크림은 줄곧 내수시장만 상대했다. 반면 빙그레는 메로나 등으로 수출시장을 넓히고 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에 아이스크림을 수출해 온 빙그레가 해태 히트 제품을 활용해 수출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특히 빙그레는 마케팅 역량이 좀 강한 편이다. 2014년부터 김호연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경영원칙은 마케팅과 변화였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바나나맛 우유를 콘셉트로 한 체험형 테마카페인 옐로우카페 제주점을 오픈한 거다. 2018년부터 오디, 귤 등 새로운 과일맛을 접목시킨 세상에 없던 우유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게 요즘 2030세대에게도 잘 먹히고 있다.

올해 연초부터는 기업 이미지 변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부터 단일 브랜드에 대한 홍보 보다 빙그레라는 이름을 알리는 홍보로 전환했다. 빙그레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63000명으로 업계 내 1위다. 영업망, 수출전략, 마케팅 등 빙그레는 빠르게 변화 중이고, 활기차다.

이 모든 공격 경영을 결정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다. 그는 빙과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함으로써 더 큰 점프를 하려고 한다.

 

라면사업 정리로 IMF위기 정면돌파

빙과업계를 접수하고 있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특이한 가족사와 이력을 지닌 CEO. 그는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했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땄다. 이후 그는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서강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구열이 높은 스타일이다.

그는 남다른 집안 내력이 있다. 김호연 회장은 한화그룹 오너 가족이다. 빙그레와 한화그룹의 연관성을 설명하려면 먼저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김종희 회장의 차남이다. 김호연 회장의 친형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1981년 갑작스럽게 김종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김승연 회장이 한화그룹을, 동생인 김 회장은 빙그레를 맡게 됐다.

김호연 회장의 처가도 유명한 집안이다. 김 회장의 아내 김미 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손녀다. 김미 씨의 큰 어머니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다. 그러니까 집안 자체가 독립운동가 명문가다. 김호연 회장은 서강대 학부시절에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던 아내 김미 씨와 5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래서일까? 김호연 회장은 김구 선생의 자손과 소중한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로 독립운동가 추모 사업과 사회 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다. 지난 199312월 사재 112억원을 털어 김구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김호연 회장은 미국 브라운대에도 김구라이브러리, 미국 하버드대와 중국 베이징대에는 김구포럼을 개설했다.

빙그레는 201812월부터 보훈처와 함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중이다. 김 회장의 특이한 이력 중 하나는 그가 2010년 보궐선거에서 충남 천안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한 점이다.

남다른 가족사도 그렇지만, 그는 경영능력에 있어서도 남달랐다. 1992년만 해도 빙그레는 웃지 못하고 있었다.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부채비율은 무려 4200%였다. 매년 발생하는 이자 갚기가 버거운 상황이었다. 바로 자본잠식에 들어가 정상적인 영업도 불가능했다.

이때 김호연 회장이 야심 차게 출시한 제품이 바로 멜론 과일 맛이 나는 메로나. 1992년 출시하자마자 2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필자도 당시 메로나의 맛을 떠올려보면, 이전에는 없던 고급지고 달콤한 맛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메로나가 빙그레를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7IMF 외환위기 당시에 김호연 회장은 빠른 판단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당장 현금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빙그레가 보유한 서울 압구정 사옥과 삼청동 사옥을 과감히 매각했다. 충분한 현금으로 부채 상환에 충당했다. 이후 2003년에도 빙그레의 핵심 사업이었던 라면사업을 정리하기도 했다. 또 스낵사업 영업권을 위탁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성을 올리는 일에 누구보다 재빠른 추진을 했던 것이다.

빙그레는 이제 탄탄한 기업이다. 부채비율은 20% 정도다. 식품기업 중에 빙그레의 부채비율은 가장 낮은 축이다. 빙그레의 작년 매출은 8783억원, 당기순이익 411억원을 기록 중이다. 김 회장이 과감히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결정할 수 있는 뒷심은 바로 이러한 탄탄한 재무구조 덕분이다.

기업의 움직임에 대해 실시간 반응하는 주식시장은 이번 빙그레의 인수합병 발표 소식을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인수 직후, 빙그레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빙그레의 과감한 변신을 주문했었다. 수익성도 좋고 안정적인 경영상황에서 충분한 현금 실탄으로 뭔가 보여줬으면 하는 주문이었다. 그걸 이번에 제대로 보여준 거 같다. 비범한 가족관계와 돌격적인 경영 스타일. 김호연 회장의 이번 선택이 과연 빙그레를 도약시킬 점프대가 될지, 빙과업계는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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