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편의점주 ‘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
봉달호(편의점주 ‘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

안녕하세요. 봉준호 감독 동생 봉달호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닮지 않았나요?” 요 며칠 손님들에게 이런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어떻게든 시국에 편승해보려는 얄팍한 상술이다.

에세이 매일 갑니다 편의점을 펴낸 이후로 내 이름은 봉달호가 됐다. 요즘 출판계 트렌드대로 눈에 띄는 필명이 좋겠다는 권유에 그렇게 했는데, 그리해 가슴에 다는 명찰까지 이름을 바꾸어 봉달호로 살아온지 어언 1년 반. 얼마 전엔 볼일이 있어 관공서에 갔는데 대기석에서 진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는 봉달호가 익숙하다.

가까이 지내는 편의점 점주 가운데 차인표가 있다. 현빈도 있고, 공유도 있고, 정우성도 있고, 박보검도 있다. 이 이름은 모두 동일인이다. 지난날 나이트클럽 웨이터처럼, 그 점주는 수시로 명찰에 이름을 바꾼다. 규정보다 큰 명찰을 근무복에 떡~하니 붙이고 일하는데, 손님들이 이름을 보고는 큭큭 거리며 웃는다.

손님과 그렇게 대화의 난장을 튼다. 귀띔하자면 사모님 명찰도 부창부수다. 하희라, 신애라, 채시라, 김혜수, 심은하, 고현정.

편의점은 사람을 넓고 얕게만나는 곳이다. 하루에 수백 명, 만나는 사람의 폭은 넓지만, 손님과 눈인사 한번 건네기 어려울 정도로 관계의 깊이는 얕다. 그런 업종에서 손님과 잠시나마 키득거릴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시도인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봉준호 동생 봉달호가 되고, 친근한 그 점주는 차인표와 신애라가 나란히 계산대 앞에 서 있는 편의점을 꾸려가는 중이다.

자영업을 하다가 몇 번 망했다. 식당도 하고 미용실도 해봤다. 편의점도 한번 실패해봤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를 꾸려가는 일이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던지 사람들은 그럴수록 힘을 내야지!”하면서 짐짓 선생님처럼 말하지만, 그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이성과 달리 감정만 앞선다.

도무지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아침에 가게 문 열러 나가는 행위 자체가 수용소에 끌려가는 듯 꾸역꾸역 참담하고, 손님 없는 가게를 하루 종일 지키며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죽을 것 같은 암담 함만 싸륵싸륵 밀려온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와 충고의 말은, 물론 그분들은 따뜻한 마음에 우러나온 말이겠지만, 배부른 이웃의 한가로운 참견 정도로만 들린다. 마음은 갈수록 삐딱해진다.

어쩌다보니 오늘까지 왔다.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더라. 텅 빈 가게에서 끊임없이 상품 진열 매만지고, 롤링스톤스 ‘Hang Fire’을 최대한 볼륨 높여 틀어놓고, 덩실덩실 어깨춤 추면서 매장 바닥을 쓸고 닦고 반복하고, 가격표도 예쁘게 다시 만들어 붙였다 뗐다 해본다. 그러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서옵쇼, 편의점입니다!”하면서 선캄브리아 시대 시조새 화석을 발견한 듯 반가움을 표현했다. 손님이 그 에너지에 뜨악할 정도로.

에헤라디야! 지금도 나는 손님이 가게에 들어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추임새를 외친다. ‘계산 마치고 돌아가는 단 3초 동안 당신의 심장을 사로잡겠어!’라는 불타는 의지로 살인미소를 건넨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정우성이 되고 박보검이 돼보려 노력한다. 물론 손님은 우리 동네 편의점 아저씨 참 별나네하며 코웃음을 치겠지만.

 

- 봉달호(편의점주 매일 갑니다, 편의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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