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리 한의사의 아는 만큼 건강해집니다]자연치유력을 높일 수 있는 한국의 지혜, 식치③ 성분효능과 성질효능

음식을 치료에 사용할 때는 동식물의 성분성질효능 모두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한약재명이 길경인 도라지에 함유된 platycodin A, polygalacin D, stigmasta-7-enol 등은 성분효능이다. 반면 길경은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폐의 기능을 도와 숨찬 것과 기침, 가슴 답답한 것을 풀어주고, 종기를 치료한다라고 기재된 동의보감의 정보는 성질효능이 된다.

현대의 분석기술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아직 영양소 성분만으로 식치를 할 수는 없다. 약리성분 중 하나인 사포닌이 효과가 좋다고 밝혀져 있지만, 실제 인삼의 사포닌과 도라지의 사포닌을 막상 구별해서 사용하고자 할 때 명확한 분별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성질을 규명해 놓은 식치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성분은 치료의 속도와 강도를 예측하며, 성질은 치료의 방향을 정해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많은 식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식품의 성분을 위주로 근래에 발달된 식이 정보와는 다르게 성질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전통적 식치정보는 한국이 과연 독보적이다. 음식치료의 경험지식들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향약집성방, 의방유취에 기록됐다. 특히 의방유취에는 식치문(食治門)을 별도로 두었으며, 편찬자인 전순의는 식치 전문서인 식료찬요도 편찬했다. 조선중기 의림촬요동의보감을 거쳐 정조대 제중신편양노문(養老門)에 모아졌는데, 영조가 전대 임금들과 달리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식치법의 덕분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불과 100여 년 전인 조선 말기에 편찬된 동의수세보원은 식치의 최신지견인 체질식치에 대한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식치는 병이 나기 전 예방의 목적으로, 치료가 끝난 후 회복기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식치(食治)는 약치(藥治)와 근본적으로 방향이 같다. 인삼과 홍삼을 약으로 써서 치료해야 할 사람이면 이를 식치로 먹으면 좋다. 하지만 인삼과 홍삼을 약으로 쓸 수 없는 증상과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식치로 써서는 안 된다. 강한 약효성분과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식치 음식들은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산과는 멀어지듯이 말이다.

성분은 흉내 낼 수가 있다. 그래서 공장에서 합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성질은 복제할 수가 없다. 성질은 그 생명체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기억이어서 그렇다. 칡은 콩과이면서 1년에 18m나 자라는 강력한 덩굴식물이다. 바꿔 말하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칡뿌리가 18m 위까지 물을 뿜어 올리는 노력을 쉼 없이 한다는 것이다. 이 노력을 인간은 몸에 정체된 습기를 순환시켜 소변으로 뽑아내는 힘으로 빌려 쓴다. 음주 후 칡즙, 칡차를 찾는 이유다. 현대에 와서 칡으로부터 간해독에 효과가 있는 퓨에라린이라는 성분을 찾아냈기는 했지만, 단일 성분으로 칡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몇 가지 유형의 면역세포가 관여된 단순 회로가 아니라, 서로 맞물린 하위 체계들의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격자체계이듯, 식물들도 그렇다. 무수하게 많은 성분들이 격자처럼 얽혀서 특정한 약효가 나타나게 된다.

인간이 동식물의 성질효능을 찾아내는 과정에는 시간이 응축돼있다. 동식물의 형태, 색깔, , 시간, 산지 등 여러 관점에서 자연의 생태를 관찰하고 종합해서 약효를 유추하고 그 후 임상에서 검증하며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분석과 합성기술이 좋아진다면 성질까지도 복제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생명체의 노력과 기억을 식치를 통해서 우리 몸속에서 그대로 재현하면서 면역의 균형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치 음식은 성분만이 아닌 성질까지도 온전히 지니고 있는 자연물이어야 한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력을 빌려 쓰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속의 동식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노력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그들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식치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지혜 속에는, 빌려 썼다면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생태환경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마음까지도 포함돼있다.

 

- 최주리 한의사(창덕궁한의원 원장)

-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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