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미술 속에서 길을 찾다] 기업과 예술의 상생

기업이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는 재정적 후원부터 공간 제공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기업들은 직접 미술관을 세우고 운영하며 전시부터 예술 관련 교육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소비자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다른 영역 같지만 상생하는 구조를 지닌 기업과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왔을까. 미술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다수의 기업들이 이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문화적 가치를 몸소 실현하는 이유와 더불어 기업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양혜규 작가 전시 전경 : (손잡이(Handles)) / 이미지 출처: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 작가 전시 전경 : (손잡이(Handles)) / 이미지 출처: 국제갤러리 제공.

기업들의 예술가 후원 활동

문화·예술계의 후원 활동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현대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현대차는 매년 국내 중진 작가 한 명을 지원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기회를 주는 현대차 시리즈를 펼치는가 하면, 영국 미술관 테이트모던(Tate Modern)과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체결해 11년 장기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2014년부터 시작한 현대 커미션(The Hyundai Com mision)’ 프로젝트는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선발된 한 명의 작가에게 테이트 모던의 전시 공간 터빈홀을 일정 기간 동안 제공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에 목적을 둔다.

커미션의 전시 작가로 지난달 3월에는 한국계 개념예술가 아니카 이(Anicka Yi)’가 선정됐는데, 동시대 가장 이슈되는 작가를 소개하는 터빈홀의 장소성 덕분에 선정 작가에 집중되는 관심만큼이나 후원 기업의 인지도 역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이 구축할 브랜드 이미지가 한국 미술 시장에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볼만 했음에도 일각에서는 외국의 미술관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신뢰와 파트너십이 국내 예술인들의 해외 진출에 끼치는 영향을 간과한 목소리일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0,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하 모마)의 재개관식에 맞춰 개최한 한국 작가 양혜규의 개인전 <손잡이(Handles)>에 관한 기자 간담회에서 모마 관장 글렌 로리(Glenn D. Lowry, 1954-)10년간 모마를 후원해온 한국 기업과의 인연을 언급한 것은 한 작가가 글로벌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여러 요소 중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함을 시사한다.

특히 글로벌 창조와 혁신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기업 입장에서는 협력 프로젝트와 같은 국제적인 활동으로 인해 상승한 해외 인지도를 통해 이미지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업의 좋은 활동으로부터 얻는 선순환에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착한 기업이미지 구축인데.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예술만큼 좋은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을 소재로 한 기업의 프로젝트에는 예술이 다져온 높은 진입장벽을 허물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동시에 예술이라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 지식도 놓치지 않아야 하기에 까다로운 작업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시장을 분석하는 노력과 더불어 예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학술적인 부분이 꾸준히 융합돼야만 단발적인 프로젝트에서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장품 전시에 담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외에도 소장품 구매로 인한 상생 방법도 있다. 테이트 모던은 앞서 언급한 현대차와의 협약을 통한 후원으로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을 구매했다. 테이트 모던의 소장품이 된 백남준의 작품은 <캔 카(Can Car)>(1963), <빅트롤라(Victrola)>(2005) 등 총 아홉 점이다.

그가 독일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던 작품과 별세 전 2005년에 제작한 작품까지 포함해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구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작품들은 또다시 해외 미술관의 소장품으로서 전시돼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한 편, 천 개가 넘는 막대한 소장품 중 일부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기업도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1984 설립)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7년 소장품전 <하이라이트>를 열어 재단이 소장한 작품 백여 점을 공개한 바 있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 군으로 구성한 작품을 주제별로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주제의식과 정체성을 한 공간에서 조망할 수 있었던 데에 의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작가 이불(Lee Bul), 파킹 찬스(PARKIng CHANce), 선우 훈 등과 협력했다는 점, 까르띠에 컬렉션이 서울 전시를 시작으로 세계 순회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은 국내 예술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이었기에 기업과 예술이 공존하며 빚은 긍정적인 시너지는 기억해둘만 하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소장품을 공개하는 형태를 띤 전시의 기원은 오래됐지만 시대마다 의의와 존재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일반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형태의 갤러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부터인데, 이 때 귀족들은 소수 특권층만이 누렸던 값비싼 소장품들을 대중 누구나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얻으며 만족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귀족들이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욕구에서 시작된 갤러리 개방은 오늘날 소장품 공개 전시를 통해 공공심을 입증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행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니카 이의 설치작품 (바이올로가이징 더 머신(Biologizing the Machine)) / 이미지 출처: 현대자동차 제공
아니카 이의 설치작품 (바이올로가이징 더 머신(Biologizing the Machine)) / 이미지 출처: 현대자동차 제공

예술인과의 소통은 영감의 원천

아트 마케팅의 일환으로 기업과 예술 콜라보레이션을 꾸준히 하는 데에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 외에 따르는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하나는 예술가와 소통하면서 얻는 아이디어다. 예술인 고용 제도를 시행한 미국 기업 페이스북의 사례를 보면 예술은 좋은 영감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페이스북은 작가를 고용해 월급을 주며 갤러리의 전속 작가와는 다른 형태로 예술가를 대하는데, 이곳에 고용된 작가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되 작업실이 아닌 사옥 곳곳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조건이 따른다. 직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 위한 이 제도는 특히 상상력과 영감, 아이디어의 근원지가 예술가와의 소통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노동에 대한 가치를 급여로 제공하는 이러한 제도는 현대판 메디치라는 수식어를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 후원 현황은 어떠한가. 기업과 예술이 상생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한국메세나협회는 1994년 창설한 이래 230여 개의 기업이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관은 중소 중견 기업과 예술가의 매칭을 토대로 몇 차례에 걸친 심사를 진행해 선발된 기업과 예술가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 ‘대기업 결연’ ‘문화공헌 사업등을 내세우며 특히 신진작가의 발굴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미술시장 활성화를 기대해 볼 만 하다.

 

- 글 이윤정 서정아트센터 큐레이터 / 진행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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