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동향] 코로나19에 무너진 미국 렌터카 생태계

미국 렌터카 업체 허츠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허츠는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됐다. 현재 미국·유럽·아시아 등 150국에서 영업망 3만개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엔터프라이즈(알라모·엔터프라이즈 브랜드 보유)에 이어 업계 2위 기업이다.

미국 포춘 등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허츠가 지난달 22(현지시간)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앞으로 허츠의 운명은 법원 판단에 달렸다. 법원이 기업 청산보다 존속이 낫다고 판단해 허츠의 파산보호 신청을 받아들이면 법정관리가 시작돼 채무상환이 일시적으로 연기되면서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허츠의 유럽과 호주·뉴질랜드 등 해외지사는 파산보호신청 대상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 봉쇄 조치가 시행되면서 여행·출장 인구가 급감한 것이 허츠에는 막대한 타격이 됐다. 허츠 매출의 상당 부분은 공항에서의 차량 대여 서비스에서 나온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코로나 봉쇄가 길어지면서 전 세계 허츠의 렌터카 50만대 중 80% 이상이 주차된 상태다. 중고차 가격이 급락한 것도 돈이 급한 허츠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자동차 리스대금 상환기한이 연장되지 못하면서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된 것이다.

허츠는 지난 3월말 기준 가용 현금이 10억 달러(12405억원)인 데 반해 부채는 187억 달러(231973억원)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 걸쳐 38000명을 고용했던 허츠는 코로나 사태 이후 직원 12000명을 해고하고 4000명이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

이와 함께 함께 차량구매비 90% 삭감, 불필요한 지출 중단 등 연간 25억 달러(31000억원)를 절감하는 자구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충격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허츠의 주가는 지난 2월 말 20달러대에서 지난달 222.84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언론들은 허츠 파산으로 드러난 미국 렌트카 업체들의 어려움은 곧바로 자동차 산업 전반에 충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허츠를 비롯한 미국 렌터카 업계는 지난 3월 스티븐 므누신 재무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지원을 호소했지만 미국 정부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4~5월 미국 내 항공여객이 94% 급감하면서 공항을 기점으로 하는 렌트카 대여가 전체 매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렌트카 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몰리고 있다. 지난해 렌트카 업체들은 미국산 자동차 170~190만대를 구매한 것으로 추산된다.

렌트카 업체들의 경영난은 신차부터 중고차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시장 전반에 심각한 충격파로 작용하고 있다. 허츠는 이미 올해 신규 차량 구매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허츠 경쟁사로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에이비스버짓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3월 올해 자동차 구매 계획을 80% 감축한다고 선언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 렌트카 업체들은 스포츠 경기가 중단된 경기장 주차장을 빌려 운행하지 않는 유휴차량 수 십만 대를 주차시키고 있다. 이 차량들은 중고차 시장으로 직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약 150만대가 중고차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츠는 이미 3월초 미국에서 41000, 유럽에서 13000대를 매각했지만 이후 경제봉쇄가 시작되면서 매각을 중단한 바 있다. 이는 허츠 파산의 또 다른 원인이기도 했다. 에이비스도 미국에서 3월들어 중순까지 35000대를 매각했다. 에이비스는 6월말까지 자동차 보유 규모를 전년동기에 비해 20%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중고차 가격 폭락과 신차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중고차가 대량으로 쏟아지면 중고차 시장에 공급이 급증해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중고차가 신차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은 이보다는 복잡하다. 우선 중고차가 신차의 대체재로 기능하면서 신차 가격을 떨어뜨린다.

렌트카 업체들이 운행거리도 짧은 신모델 자동차를 중고 시장에 풀면 이보다 훨씬 값이 비싼 신차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자동차 업체들은 자동차 가격 인하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미국 언론은 코로나19로 호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중고차 가격 하락은 신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에게도 타격을 준다. 자신이 타던 차를 자동차 딜러에게 팔고 그 가격만큼을 차감해 신차를 구입하는 이른바 보상판매(trade-in)’에서 보상규모가 그만큼 작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신차 가격이 상승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미국 언론은 중고차와 신차 등 전반적인 것들이 상호 연관돼 있다코로나19가 소비자들의 구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렌터카 생태계가 무너지면 자칫 자동차 산업 전체를 흔들 수 있다. 마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 말이다.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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