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을은 단풍이 아름답다는 일기예보와 함께 매스컴에서는 항공촬영을 통해 대대적으로 행락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보도를 보면서 마음은 부산해지기 시작하고 서둘러 절정을 이룬다는 때를 맞춰 단풍여행을 나선다. 단풍의 대명사로 꼽히는 설악산 지구. 그 중에서 해마다 들러보는 남설악지구의 주전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 수 없어 달려가보지만 웬일인지 예상치를 채워주질 못한다.
한계령 부근은 이미 단풍이 지고 있고 주전골은 단풍이 채 안든 상황이다. 그래도 해발의 고저의 한계가 있다해도 단풍 자체는 힘이 없어 보인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주전골에서 하루를 유하고 오전내내 탐방을 시작하고 찾아간 곳이 미천골이다. 미천골은 양양을 관통하는 남대천 상류, 태백산맥 중턱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해발 1천m급 고산이 둘러 쌓여 있는 강원도의 전형적인 심산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
미천골도 실망감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아랫부분은 단풍이 들지 않아 아직도 파랗다.
멀리 산자락을 훑어보니 단풍이 들었고 여느 때 보던 것만큼 생동감이 있다. 사람은 많지 않아서 주전골의 인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날씨는 화창하게 맑아서 단풍 구경하기에는 최상의 날씨다. 비포장이지만 휴양림 안으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힘겹지도 않다.
몇해전의 수해로 인해 계곡도 약간 망가졌지만 여전히 기암과 맑은 물, 그리고 단풍이 어우러져 가을의 운치는 하냥 살아난다. 일반적으로 선림원터를 지나 청룡폭포와 황룡폭포가 지키는 불바라기 약수에 이르는 계곡을 미천골이라 부른다. 흑, 회색의 암석을 따라 맑은 옥수가 흐르고 작으면서도 개성있는 폭포와 소(沼)가 10km나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단풍은 많이 들어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이니 금세 산 정상부위는 앙상한 수목만 드러날 것이다. 길은 한없이 이어진다.
도로변 옆으로는 토종꿀 단지도 있고 민가도 있으며 번듯한 카페도 있다. 민가는 새로 개조해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외지인들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겉모습만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외에는 휴양림의 시설물이다. 이곳에는 통나무와 돌로 지은 숲속의 집과 야영장, 자연관찰원, 등산로 등이 있다. 통나무집뿐 아니라 산책로, 등산로, 방갈로, 야영장, 취사장, 자연관찰원, 물놀이장 등의 휴양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가족 휴양지로 아주 제격이다. 또 200여명이 동시에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장이 2곳 있다.
휴양림 주변으로는 50년 이상 된 참나무, 박달나무, 피나무와 물푸레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종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잘 정돈된 숲길과 높은 산 틈으로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햇살을 즐기며 숲속 산책을 즐기는 재미는 경험해봐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숲속의 집 이용료는 미리 예약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몇해전 최신식 숙박동을 만들어 이용이 편리해졌다. 하염없이 올라가다 보면 상직폭포가 나온다. 미천골 정자가 있고 계곡 옆으로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고 작은 폭포가 여러개인데 그중에서 상직폭포는 늘 눈에 띈다. 가을 가뭄탓인지 물줄기는 약한다. 정자 옆으로는 쉬어가라는 벤치가 놓여 있고 아름다운 붉은 단풍이 가을의 멋을 느끼게 해준다.
더 올라가면 멍에정이 나오고 차단기가 있다. 이곳부터는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불바라기 약수터로 오르는 길이다. 차단기가 내려진 곳에서 4.8km 산행을 해야 한다. 임도를 따라 가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지만 시간은 꽤 많이 소요된다.
휴양림을 나오면서 선림원지를 찾는다. 앞이 확 트인 언덕위. 널따란 절터에는 여러 가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은 신라말 선종 계열의 절터로 절이 얼마나 컸는지 쌀 씻는 물이 계곡으로 뿌옇게 흘러들어 미천골이라 이름이 지어진 곳. 지금 선림원터에 남아 있는 흔적이라곤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의 주춧돌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거주했는지 의문이 가는 내용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곳은 해인사를 창건한 홍각선사가 한때 주석한 절. 900년 경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발굴, 잔존한 유적은 삼층석탑, 석등, 홍각선사탑비, 부도 등 보물 4점이 있다.
남들과 정반대 여행을 했으니 돌아나오는 길은 갈천약수를 거쳐서 구룡령 고갯길을 넘는 일이다. 갈천약수터는 1km를 걸어야 한다.
단풍이 아름답게 들었지만 산행은 포기하고 곧추 구룡령을 넘는다. 구룡령에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운 단풍 절경이 앞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룡령은 구렁이가 길을 알려줬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도로변으로 간간히 못보던 건물들도 눈에 띈다. 맑은 날이라서 켜켜히 쌓여진 산자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그만이다. 하냥 가을 들판, 단풍에 취해 도로에 멈춰서고 있는 날이다.
■대중교통 : 서울 상봉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양양까지 간다. 양양에서 갈천 가는 버스를 타고 황이리(5회정도) 미천골입구에서 내린다. 하지만 미천골 입구인 황이리까지 시내버스가 다녀도 운행횟수가 많지 않아 불편하다. 승용차로 가는 것이 편하다.
■자가운전 : 서울에서 속사IC로 나와 31번 국도따라 운두령 고개 넘으면 56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 곳에서 우회전해 구룡령을 넘어도 된다. 또는 양양이나 오색약수터에서 들어와도 된다.
오색약수 입구를 지나 약 15km가면 논화삼거리(양양에서 6km지점), 이곳에서 우회전, 56번국도를 따라 약 15km 들어가 서면출장소 지나 약 4km가면 휴양림 입구다. 주전골, 남대천, 동해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므로 유하는 곳을 기점으로 찾아다니면 된다.
■별미집과 숙박 : 도로변에 토속음식점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곳이 없다. 갈천약수터 근처의 갈천약수가든(033-673-8411)은 토종닭이나 된장찌개 등의 메뉴가 있다. 또 미천골 휴양림 내에는 불바라기 산장(033-673-4589)이 있다. 숙박은 자연휴양림(033-673-1806)을 비롯해 불바라기 산장, 그 외 도로변에 잘 지어놓은 펜션이 여럿 있다.
■이곳도 들러보세요- 인진 쑥엿마을과 송천 떡마을
논화리에서 미천골~갈천약수터 가는 길목에 인진쑥엿을 파는 집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한집 건너서 쑥엿을 판다는 간판이 이어진다. 가을철 키가 한자락이나 웃 자랄 때 가장 약효가 좋다고 해서인지 가을철에는 새싹만 볼 수 있다. 아직까지 한번도 맛을 본적은 없지만 여성 건강에 좋다고 한다. 문의:서광농업협동조합(033-672-2953-5). 이곳은 사철 엿을 만들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송천 떡마을이 있다.
송천 마을은 점봉산 자락에 묻혀 있는 오지 마을. 기계떡이 아니라 찹쌀을 시루에 얹어 장작불로 찌고 떡메로 쳐서 손으로 빚어내는 떡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직접 빚는 것은 보기 어려우나 도로변에서 파는 떡은 구입할 수 있다.
◇사진설명 : 단풍의 대명사로 꼽히는 미천골의 풍경은 놓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