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식인]길 문 종 메디아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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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인]길 문 종 메디아나 대표
  • 김재영
  • 호수 0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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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디아나(www.mediana.co.kr) 길문종 사장은 의료장비 산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를 세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메디아나는 강원도 원주시 의료기기산업단지내 최대 규모(600여평)의 제조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전세계에 의료장비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 생산제품은 환자상태감시장치(Patient Monitor)다.
환자상태감시장치란 환자의 심장상태, 혈압, 호흡, 체온 등 생체신호를 검사해 이상이 생기면 경고음을 울려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 어느 병원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장치는 해외선진국에서 이미 50여년전에 개발, 일반병원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국산화 됐다.
메디아나는 지난 95년 연세대학교와 산학협력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가 3년여 연구기간을 거쳐 지난 98년부터 본격 출시했다.
비록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이 회사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의료선진국에 오히려 제품을 역수출하고 있다.
메디아나 제품은 미국 FDA와 유럽 CE, 일본 후생성 등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진국의 보건·의료 인증기관들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아낸 것만 봐도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작년 4월 세계 메이저 의료기회사인 타이코(Tyco)사로부터 3년간 3천만 달러의 OEM 수출계약을 체결해 국내외 의료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144억원, 이 중 수출이 7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만 매출이 100억원을 넘어섰고 하반기까지 모두 250억원, 이중 수출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설 예정이다.
1993년 길종문 사장이 맨손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14년만에 세계에 우뚝설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백만장자를 꿈꾸며
길 사장은 지난 83년 연세대학교 의용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ROTC 육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친후 8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뉴욕시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바이오엔지니어링을 전공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조달했다.
당시 뉴욕 차이나타운 길거리에서 액세서리 잡화상을 했는데 사업이 예상외로 잘 됐다. 장갑, 목걸이, 반지, 티셔츠 등 떼어다 놓은 품목마다 동이 났고 마진율도 꽤 높았다. 그러자 그는 프리마켓인 벼룩시장으로 진출했다.
뉴욕에서는 우리나라의 ‘5일장, 7일장’등과 같이 월요일, 수요일, 목·금 등 각 요일별로 장소를 바꿔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그는 한국 아르바이트생 몇명을 고용, 이곳에 파견해 장사 범위를 넓혀갔다.
84∼85년 당시 그는 무려 40만 달러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현금흐름은 사업 생명줄
이 때 그에게 새로운 사업거리가 찾아왔다.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태리 무역상인으로부터 스웨터 대량구매를 제의받았던 것. 50만달러 어치의 컨테이너 물량을 스웨터 1개당 7달러 정도에 팔겠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스웨터 판매가격이 개당 40∼50弗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 조건이었다.
현금 동원능력이 다소 모자랐지만 길 사장은 이를 신용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구매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일단 물건을 사서 도매상에 일부를 넘기고 나머지 물량을 창고에 쌓아둔채 추운 겨울이 곧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저임금으로 만들어진 스웨터가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그해 겨울은 길 사장의 바람과는 달리 ‘따뜻’하기만 했다. 그는 빚더미에 나앉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길문종 사장은 도미기간중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의 조절능력을 벗어난 투자, 쉽게 말해 ‘과욕’은 언제나 실패를 부른다는 것. 현금흐름 및 유동성을 항상 염두에 두는 사업방식을 이때부터 실천하게 된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1989년 다시 국내로 들어와 (주)메디슨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93년 강남구 논현동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회사를 차렸다. 해외에서 의료기를 수입해 국내 병원에 공급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다 그는 수입만으로는 사업 확장이 어렵다고 생각, 95년 모교인 연세대 의용전자공학과와 함께 ‘환자상태감시장치’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3년여 기간의 연구 끝에 98년 제품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품이 개발됐다고 해서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품질이 검증돼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99년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 의료기시장의 메이저급인 미국 HP(휴렛패커드)사가 의료기 생체진단기분야 한국총판권을 위탁하기 위해 공개입찰을 실시했다. 이런 글로벌 회사들의 경우 한번 파트너를 선정하면 20년이상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누구나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중외제약을 비롯한 국내 굴지의 의료장비 및 제약회사들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직원이 모두 7명에 불과한 이 회사도 ‘혹시나’ 해서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혹시나’가 일을 저질렀다. 그가 HP 총판권을 획득한 것이다. 그날밤 그는 회사에서 감격에 겨워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HP 아시아 총판책임자가 길 사장과 면접을 진행하면서 그의 자신감에 찬 얼굴, 솔직하고 투명한 사고 등에 반해 인터뷰만으로 결정한 것이었다고 한다.
해외유학과 메디슨 회사생활 동안 수확한 유창한 그의 외국어 실력도 많이 감안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의 회사 인지도 및 신뢰도는 수직 상승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는 사업 초기에 400만원의 빚을 진 적이 있었다. 당시 그의 어머니를 통해 주변사람에게서 융통해 썼는데 그가 깜빡하고 이자 지급을 잊었다고 한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갑자기 ‘사업을 당장 그만두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머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시더니 하루종일 괴로워 하시며 안절부절 못하셨습니다. 큰 돈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날 이후 한번도 이자지급을 어겨본 일이 없습니다.”
이 일이 그에게 보약이 됐다. 지금 그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믿을 만한 사람’, ‘못지킬 약속은 안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신뢰를 얻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을 얻게 되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강조했다.
그의 회사는 HP사, 타이코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파트너로 일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기간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경쟁력’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길 사장은 “앞으로 메디아나가 세계 최고의 의료장비 제조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표이사를 비롯한 모든 조직원들이 끊임없이 자생력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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