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탑 쌓아가는 신학철 부회장]
가동률·수율 문제 동시 해결
영업익보다 많은 R&D 투자

배터리 기업으로 탈바꿈 주도
석유화학도 공격형 경영 박차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신학철 부회장이 이끄는 LG화학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LG화학이 전 세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밖에도 전통적인 화학 분야를 비롯해 전자소재, 바이오 등에서 LG화학은 승리의 금자탑이 척척 쌓아 올리고 있다.

신학철 부회장은 사실 이 모든 사업에 있어 이전에는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다. 그런데 어떻게 신 부회장이 싸움에서 이기는 필승 카드만 뽑아내는 걸까? 현재 시점에서 LG화학이란 기업을 설명할 때는 단연 배터리 사업부터 시작된다. 20191월 신학철 부회장이 LG화학 부회장(CEO)에 취임한 뒤 LG화학 배터리 사업은 퀀텀점프’(비약적 발전)를 이뤄내고 있다.

신 부회장이 취임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중국의 BYD, CATL 3파전 양상이었다. 파나소닉이 테슬라 전기차에 배터리를 독점공급하고 있었고, 중국 기업들은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을 거머쥐고 있는 형국이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LG화학은 극적인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1BYD를 추월했고, 이어 2월에는 CATL를 제쳤다. 4월부터는 파나소닉마저 추월해 LG화학이 1위에 올라섰다. 올해가 LG화학 배터리 사업 새역사의 첫 장을 여는 원년이 된다.

 

증설하면서 공장가동 병행

신학철 부회장의 배터리 사업은 공격형 경영전략의 좋은 사례다. 자동차 배터리 시장처럼 급격한 시장 성장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 재빨리 생산능력을 늘리고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면 된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LG화학 같은 글로벌 기업은 공장 증설을 통한 생산능력 제고는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 이때 CEO의 빠른 용단이 필요하다.

공장 증설이라는 가동률이 확보됐다면 이후에는 생산성에 있어 수율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수율은 흔히 반도체 사업에 자주 쓰는 용어인데 제대로 된 생산품으로 얻어지는 수익성을 뜻한다. 아무리 물건을 많이 찍어내도 제대로 된 품질이 아니라면 심각한 문제가 찾아온다. 해서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도 떠오르는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신학철 부회장은 달랐다. 그는 LG화학의 폴란드 배터리 공장에서 가동률과 수율의 문제를 풀어냈다. LG화학은 현재도 폴란드 공장에서 증설을 진행 중이다. 증설 라인에 차세대 생산설비인 광폭 고속 생산라인을 도입했다. 그런데 증설을 진행하면서도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보통 증설을 할 때 가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통념인데 이를 뒤집어 생산하면서 증설하는 공격적 시설투자를 추진 중이다.

더욱이 LG화학의 폴란드 배터리 공장은 유럽과 가깝다. 유럽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교류하기도 쉽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배터리 시장은 물량을 누가 빨리 공급하느냐의 싸움인데, LG화학은 해외 전진 생산기지로 배터리 사업의 가속도를 올리고 있다. 올해 배터리 생산 규모가 100GWh 수준이었는데, 이를 5년 안에 250GWh까지 올릴 계획이다.

속도면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고지를 점유한다면 남은 과제는 제대로 된 품질인지에 대한 수율 부분의 검증이다. 그래서 최근 LG화학은 기업설명회와 콘퍼런스콜 등을 할 때마다 폴란드 공장의 수율 부분을 강조한다. 속도만 높은 게 아니라 안정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신 부회장이 이렇게 가동률과 수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배터리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판단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이력으로 그가 이러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대부분의 경력이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를 생산하는 3M 기업에 있었다. 새로운 배터리 생산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끌고 가려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신학철 부회장은 사람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는 사업본부별로 전문가들이 본부장을 맡도록 했다. LG화학에서 전지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현 사장도 LG화학에서 소형전지사업부장과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을 거치면서 전문역량을 쌓았다. 김종현 사장이야말로 배터리 분야에 있어 업계 전문가로 통한다. 기술 부분에 대한 판단은 김종현 사장에게 운전대를 맡긴다면 신학철 부회장은 조직의 운영 시스템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신학철 부회장은 올해 LG화학 임원인사를 통해 전지사업본부에 CPO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우리말로 CPO최고 생산 및 조달책임자정도로 풀이되는데, 보통 기업에서 이런 경영진 직책을 만드는 일은 드물다. 신 부회장은 LG화학 CPO에 김명환 배터리연구소장을 임명했다. 김종현 사장에게 모든 기술적 판단과 생산 문제를 짊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김명환 CPO와 함께 책임과 권한을 나눠준 셈이다. 경영진 인사를 통해 LG화학 배터리 효율을 끌어올리는 전략인 것이다.

 

한국판 뉴딜사업 견인

공격적인 경영전략에 첫 번째 핵심 엔진이 바로 인사 운용에 있었던 것이다. 이어 신 부회장은 자동차 배터리의 중장기적인 기술 확보를 통해 물량을 넘어 독보적인 1등 기술기업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공격적인 경영전략의 두 번째 엔진이 자금 투자. 작년에 LG화학은 연구개발에만 11300억원을 투입했다. 작년 전체 영업이익이 8957억원이었다. 영업이익 보다 많은 금액이 R&D에 투입되는 건 CEO의 확실한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 가운데 30%가 자동차 배터리 연구에 쓰였다. 올해 LG화학은 전체 연구개발 투자에 13000억원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배터리 비중은 40%. 배터리 중심의 R&D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학철 부회장은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을 얼마나 키우려고 하는 걸까? 신 부회장은 취임 때부터 LG화학의 매출 절반이 배터리 사업에서 나오는 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도 2024년 안에 말이다. 현재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보다 더 크게 키워내겠다는 말이다. 이제 LG화학을 화학기업에서 배터리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한 기업의 사업 비중을 단 기간에 체인지하는 것은 기업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콜라보레이션, 즉 협력이 중요하다. 전기차는 전기차 전문기업에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대부분 내연기관 완성차 업체가 생산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이 있어야, 배터리 공급도 원만하게 이뤄지고 세계 전기차 공급시장에도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건 완성차 업체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LG화학을 비롯해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제조 3사를 연속해서 만나면서 협력을 다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LG화학이야 한국의 대표 완성차 업체 현대차와도 각별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에도 긴밀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가깝게 지낸다. 같이 미국에 배터리 합작법인 엘리엄 셀도 만들었다.

LG화학에도 그간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러브콜을 보내왔었다. 합작법인을 설립하게 되면 상호간 기술을 공개해야 한다. 몇 년 동안 룸메이트로 지내는 합방이 아니라, 정말 오랜 기간 동반자로 지내야 하는 신뢰관계가 돼야 한다. 설령 모를 기술유출이 걱정되기에 그렇다. 그 점에서 GM과의 신뢰는 두텁다. 더 큰 기대는 GM이 전기차 사업을 분사해서 키우겠다는 움직임에 있다. GM이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키우면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의 동반상승도 예견해 볼만하다.

 

LCD올레드로 DP소재 전환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에 대한 주목도 높아진 건 미래를 위해 올바른 도전이긴 하지만 기존의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과 첨단소재라는 성장 잠재력이 큰 사업은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있을까? 배터리 사업에서 공격형 경영을 보여준 신학철 부회장이 석유화학과 첨단소재에서도 자신의 경영 해법을 전개하고 있다.

LG화학의 첨단소재사업은 LG그룹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가 생산하는 제품에 중요한 부품이 여기서 나온다. LG화학이 첨단소재로 디스플레이용 부품을 만들면 LG디스플레이가 이를 활용해 디스플레이를 완성품을 만들고 이걸 LG전자가 써서 각종 전자제품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LG화학의 첨단소재사업은 그룹의 밑단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원동력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 두 계열사의 사업전략과 굉장히 밀접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이다. 최근 두 계열사는 LCD디스플레이 소재 중심에서 올레드 디스플레이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로 인해 LG화학의 첨단소재사업도 올레드소재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끝으로 최근 석유화학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신학철 부회장은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는지 알아보자.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는 그동안 LG화학 전체 영업이익의 90%까지 기록했던 효자사업이다. LG화학이 배터리와 첨단소재 쪽에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뒷배경에도 그동안 화학사업이 벌어온 자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석유화학사업이 난항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다른 일반 석유화학회사와 마찬가지로 생산제품의 판매와 자체사용의 비중을 조정하거나 원재료(나프타)의 수급을 다변화하는 등 대응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건 뾰족한 대안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전략 말고도 신학철 부회장은 투자를 동반한 공격적 전략을 추진 중이다. 화학사업에서 영업이익률을 개선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증설이다. 대규모 장치사업일수록 제품 생산에서 한계비용의 감소 효과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여수에 새로운 나프타 분해설비 관련 공장을 짓고 있는데 2021년까지 26000억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당장의 업황 부진이 계속된다면 완공시점부터는 이 증설의 효과가 크게 나타날 걸로 보인다. 업황 부진이 끝난다면 영업이익률 개선효과는 덤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 부회장은 회사의 본업인 석유화학에서도 매우 능숙한 운영의 묘를 살리고 있다. 배터리, 첨단소재, 석유화학 등 LG화학의 주요 사업 전반에서 신학철 부회장의 공격형 경영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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