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경제] 다치지 않고 일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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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경제] 다치지 않고 일하는 세상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283
  • 승인 2020.10.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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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노동'이 복지국가 조건
영세할수록 다칠 확률 높아져
오래 일하고 탈없이 은퇴길

말년에 우리 아버지는 편찮은 곳을 여러 군데 호소하곤 했다. 육체노동을 주로 하신 터라 근골격계가 좋지 않았다. 군데군데 성하지 않은 부위도 많았다. 망치에 맞아서 손가락 한 마디가 못 쓰게 됐다거나, 손톱이 빠지고 없었다. 의사들이 돌이킬 수 없는이라고 말하는 그런 상태다. 걸음걸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변변한 치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던 왕년에는 다치면 으레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게 일이었다. 심하게 다치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국민 의료보험이 생기기 전이라 병원비가 대체로 턱없이 비쌌다. 그 틈새를 접골원이나 조제를 하는 약국 약, 심지어 민간의료가 메웠다. 화상을 입었을 때 담뱃가루나 된장을 바르고 말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시절에는 으레 육체적 상처는 살아가다보면생기는 자연스럽고 숙명적인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재수가 없었어, 하고 말았달까.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 SOC와 각종 건설 현장에서 산화한 노동자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대부분의 대형 국책 공사장 현장에는 위령비가 있다. 위로를 받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가. 며칠 전 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전방사단의 철책 공사 역사를 설명하는 군 간부는 이 사단의 철책을 완공하는 데만 백여 명의 사람이 순직했다고 술회했다.

그랬다. 옛날엔 사람 목숨도 그랬으니 어디 다친다고 해서 대접받는 일이 제대로 있었을 리 없다. 요즘도 현장의 안전은 완벽하지 않다. 산재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사고가 일어난다. 인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그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도 불가피하거나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불의의 사고일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죽지 말아야 하고, 최소한 덜 다쳐야 한다. 그게 선진국이다. 가게에 가면 산재당국에서 보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식당은 육체를 쓰는 곳이므로 허리나 무릎 같은 곳을 다칠 확률이 높다. 그런 문제에 대한 경각을 높이는 문구와 대응책이 써 있는 스티커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져 있다.

사실, 여러 영세한 현장은 노동자만큼 사업자도 많이 다친다. 솔선수범해야 하고, 노동비용을 줄여야 몇 푼의 이익을 바랄 수 있으므로 사업자가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가 사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영세현장일수록 더 그렇다. 연초부터 몸의 여러 부위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새벽시장에서 생선따위를 무리하게 들고 오다가 관절과 근육에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받아서 쓰는 것보다 새벽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사야 물건도 좋고 값도 훨씬 헐하다. 누가 그걸 보고도 포기하겠는가. 몸이야 어찌 됐든 일단 새벽에 나가고 보는 게 사업자의 심리다. 한 여름, 생선은 쉬이 상한다. 그러니 비료포대에 물건을 담으면서 얼음 많이 넣어달라고 단단히 당부하곤 한다. 생선 무게가 20이면 얼음도 그 무게다. 하루 쓸 생선을 사면 쌀 한가미가 돼버린다. 그걸 어깨에 메거나 한 손에 들고 이동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차가 없던 나는 택시비 몇 푼 아낀다고 그걸 들고 멀리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기사의 눈총을 받아가며 힘겹게 버스에 물건을 싣고 다녔다. 늙어서 애비들은 그렇게 몸이 망가져간다. 소리 없이, 조금씩 풍화나 침식작용이 일어나듯 관절이 부스러지고 인대가 늘어난다. 자영업자가 산재니 상해보험도 들 자격이 없던 시대, 그들은 아프면 으레 운명인 줄 알았다. 우리 선친처럼. 나는 집에서 유세라도 한다. 에구구구 하면서.

현장의 장비와 설비가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사람 몸이 가장 좋은 연장이다. 언제든 다칠 수 있다. 쓰다가 망가진 망치나 장비는 고치거나 버리면 되지만, 사람 몸은 고치기도 힘들고 치료해도 흔히 후유증이 남는다.

노화와 겹쳐 숨어 있던 병이 드러나기도 한다. 부디 현장의 모든 노동자여, 그리고 사업자여. 제 몸을 아끼시길. 그리해 오래도록 무난하게 일을 마치고 은퇴할 수 있기를. 사람이 온전하게 태어나서 온전한 몸으로 다시 돌아가야 그것이 진짜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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