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부곤 ‘민부곤 과자점’ 대표

단골손님이던 여고생이 고등학생 딸의 손을 잡고 빵집을 찾는 사이 빵을 굽던 사내도 어느덧 샌 머리로 딸아이와 빵집을 이어가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아래, 보람아파트 상가 1층을 30년 넘게 지키고 있는 ‘민부곤 과자점’의 민부곤 대표. 그에게 제빵제과는 한 길을 걷게 하고 한 자리를 지키게 한 인생의 이정표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빈곤한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운 걸 보고 고모님이 서울로 데려왔죠. 당장 숙식이 문제인데 먹여주고 재워주는 빵집이 있다고 소개한 곳이 광교의 ‘풍년제과’였어요. 17살에 입사해 그때부터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죠.”

1967년부터 우리나라 제빵제과의 발전상을 온몸으로 체험해온 그는 적당히 안주하기보다 늘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이스트 대신 천연 발효종을 사용하여 더욱 속 편한 빵을 개발하고, 프랜차이즈 빵집에 대응하기 위해 동네빵집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작은 가게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달콤하고 고소한 호두바게트와 겉바속촉을 자랑하는 마늘바게트, 수락산의 이름을 딴 수락산몽 등 민부곤 과자점을 대표하는 빵은 늘 정직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장수 비결이요? 정직함이에요. 정직한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선보입니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1989년 보람상가에 자리잡을 때만 해도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서울에 올라와 빵을 배우고, 내 이름을 내걸 만큼 자신이 있었다. 수락산처럼 우직하게 한 곳을 지켜온 민부곤 과자점. 그의 한결같은 뚝심이 일군 30년 빵집이 궁금하다.

 

천연발효종에 유기농 밀가루, 정직함과 열정으로 굽는 빵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매장에는 신뢰가 생깁니다. 민부곤 과자점은 1989년 지금 자리에 문을 열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창업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첫 직장인 풍년제과에서 명동 미도파백화점 옆 뉴욕제과로 자리를 옮겨 13년을 근무했어요. 다시 인천 뉴욕제과에서 기술자 생활을 하다 부천에서 처음으로 내 가게를 열었는데요. 지방이라 한계가 있더라고요. 서울에서 터를 물색하던 중 지인 친구가 알아보던 곳을 추천받았어요. 상계동 이 자리로 198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왔습니다. 2003년 제과기능장을 취득한 후 내 이름을 걸면 신뢰를 더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민부곤 과자점’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우연히 내딛은 첫 직장에서 평생의 업을 찾았는데요.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비결과 제빵제과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초창기에는 한눈을 팔 여유가 없었어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나머지 시간은 오직 빵에만 집중해야했으니까요. 다행히 제가 빵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잘 먹어요. 빵과 과자가 부드럽잖아요. 50년 넘게 만들다보니 제 성격도 빵을 닮아 부드럽고 세심해졌어요. 제빵제과는 선한 매력이 있습니다. 20대에 쓴 일기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최고가는 제과점, 기술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쓰여 있어요. 그 꿈에 닿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박찬회 화과자, 리치몬드제과, 김영모과자점 등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분들과 함께 일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만드는 빵과 과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대표하는 제품도 소개해주세요.

모든 빵을 자신합니다. 정말 제 정성과 혼을 담아서 만들거든요. 특히 반죽을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첨가제 대신 직접 개발한 천연 발효종을 사용합니다. 15년 전, 건국대학교 축산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던 중 독일 하노버대학에 가서 천연 종을 연구했어요. 저만의 사과종, 야쿠르트종을 개발해 사용하는데요. 천연발효종을 넣어 24~48시간 저온숙성한 빵은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편안해요.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만 사용합니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듯 매일 반죽을 치고 발효를 시켜서 손님들이 갓 구워낸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어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마늘바게트, 수락산을 모티브로 만든 크러핀 빵인 수락산몽의 인기가 좋습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에 동네 빵집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밀리지 않고 생존력을 키우셨는데요. 비결이 있나요?

부족한 점에 연연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빵 종류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빵집은 맛도, 모양도 언제든 바꿀 수 있고, 꾸준히 연구하여 근사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지요. 획일적인 제품이 아니라 모양, 맛, 색상을 부지런히 바꿔가며 동네 빵집의 장점인 개성을 살리는 거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노원구 동네빵집이 15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50~60개 정도입니다. 저는 동네빵집의 경쟁력이 절대 낮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익도 마찬가지고요. 동네빵집 협동조합인 ‘해피브레드’를 결성해 공동 생산, 공동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도 해보았죠. 비록 실행은 안 됐지만 소상공인도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습니다.

한 자리에서 30년 넘게 매장을 운영한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정직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속이지 않고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손님과의 약속을 지켰기에 한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좋은 재료는 기본이고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빵을 자주 구워야 한다고 강조해요. 기본 2번은 굽고, 많이 나가는 것은 5~6번까지 굽습니다. 우리 상가에만 프랜차이즈 빵집이 3번 바뀌고, 50m 내에 두 곳이 존재하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점포주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있는 점도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죠.

단골손님도 많을 것 같습니다.

단골 중에 일주일에 2~3회 정도 방문하는 40대 부부가 있습니다. 저희 빵집에 반해 늘 제 건강 걱정을 해요. 늦게까지 일해서 몸이 안 좋아지면 이렇게 맛있는 빵을 자주 못 먹게 된다면서요. 그러다 어느 날에는 건강식품을 선물로 전하더라고요. 고객에게 이런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감동이었지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친절해서 다른 목적이 있나 의심도 했는데 지금은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30전 전에 빵을 먹던 고등학생 친구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찾을 때도 뭉클하죠. 언젠가는 미국으로 이사 간 분이 한국에 들어와 옛 추억을 따라다니다 저희 빵집을 보고 반가워서 찾아주셨어요. 케이크 주문을 많이 하던 단골 고객이었는데 저도 반가웠죠. 그럴 때마다 한 자리에 있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년은 시작에 불과하고 대를 이은 빵집을 꿈꾸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궁금합니다.

저를 닮아서 체력이 좋은 딸(민해인)이 함께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직원이지만 주인의식이 투철하다는 것, 야단을 쳐도 도망가지 못한다는 게 장점이죠.(웃음) 가장 강조하는 건 최상의 제품이 아니면 절대 손님에게 내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빵은 거짓이 들어가는 순간 고유의 맛과 향을 낼 수가 없어요. 정직해야합니다. 무엇보다 빵에 미쳐야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유명한 빵집은 어디든 달려가 레시피를 알아봤거든요. 젊은 감각으로 트렌드를 읽고 마케팅 의욕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민부곤 과자점은 서울 동네 빵집으로는 1호로 ‘100년 가게’에 선정되었어요. 딸과 함께 100년 가게의 길을 잘 닦아가야죠. 개인적인 욕심은 크지 않아요. 그냥 ‘노원구 동네 빵집 아저씨’로 오래 기억되는 게 소박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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