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반도체·스마트폰 ‘3대혁신’…초기업 이끈 ‘삼성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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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반도체·스마트폰 ‘3대혁신’…초기업 이끈 ‘삼성 나침반’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286
  • 승인 2020.11.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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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한국경제 ‘큰별’ 이건희 회장 타계
27년간 영업이익 222배 껑충
신경영 선언 후 제2창업 선도
불량 휴대전화 15만대 ‘화형식’
부친 업적 뛰어넘은 인물 평가

지난 2014510일 저녁 1056분경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남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상황이 너무 긴박했고 심폐소생술까지 받았다. 이후 병세는 꾸준히 회복이 됐지만 6년여의 긴 투병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달 1578세의 나이로 이 회장은 별세했다. 한국경제사의 큰 별이 졌다.

지난 1987121일 삼성 회장에 오른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오늘을, 한국경제의 미래를 뒤바꾼 혁신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인이었다. 그의 부고 소식에 언론은 물론 경제계와 학계와 시민사회까지 이건희의 일생과 업적에 대한 조명과 분석이 현재까지도 계속 쏟아진다.

보통 재계의 큰 획을 그은 경영인이 별세해도 이렇게 이건희 회장처럼 오랜 기간 동안 회자되고 조망받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과 그 성과는 우리가 곱씹어 볼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병철과 이건희

삼성그룹의 창업은 1938년 대구에서 시작된다.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은 3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이었다. 당시에 이병철 창업주는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창업했다. 주로 대구 서문시장 근방에서 청과와 건어물을 수출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다시 6.25 등을 겪어야 했던 대한민국의 격동기에 삼성그룹은 그렇게 태동했다.

삼성상회는 이병철 회장의 사업수완으로 성장했다. 이병철 회장이 사업지를 서울 종로로 옮긴 1948년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한다. 삼성물산은 이 사업으로 한국경제의 중심으로 입성하게 된다. 이후 한국의 휴전 이후 물자부족을 타개해야 하는 환경은 이병철 회장에게 호재였다. 제당과 제분과 섬유 등 생필품이 절실히 필요했다. 특히 이병철 회장은 제당업 진출을 통해 사업의 활기를 띠었다. 제일제당은 그렇게 탄생했고 큰 성공을 가져다 줬다. 전란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그는 부산에서 제일제당을, 대구에서 제일모직을 세우고 성공시켰다.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된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을 오가며 연구하고 공부한 결과, 바로 전자산업이 한국의 100년 미래산업이 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73. 반도체라는 미래산업을 발굴했지만, 그것을 성장시킬 역할은 경영 후계자가 짊어져야 할 일이었다. 후계구도는 빠르고 명확하게 잡혔다. 이병철 회장에게는 3남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큰형 맹희씨(2015년 작고)와 창희씨(1997년 작고)가 있었지만, 이병철은 이건희 회장을 점찍었다.

1966년 이건희 회장은 미국에서 귀국해 동양방송에 입사하고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며 실질적인 그룹 후계자가 됐다. 19871111일 이 창업주 별세 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건희는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경영인으로서 이 회장의 자질을 회고하기도 했다.

1987년 이후 삼성그룹은 제2의 경영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삼성의 역사는 이때부터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세대 창업주가 삼성을 한국경제의 중심으로 일으켜 세웠다면, 2세대 경영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경제의 핵심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혁신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기업으로 둔갑했다.

이건희 회장이 병환으로 2014년 경영일선에 물러나기까지 27년의 시간 동안,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5000배가 뛰었다. 1987년 시총 4000억원대였던 삼성전자는 20141966000억원이 넘었다. 1987년 연 매출이 23813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1127억원이었던 삼성전자는 2014년 연결기준 연 매출 2062060억원, 영업이익 25251억원을 기록했다. 27년 사이 매출은 86배가, 영업이익은 222배가 증가했다.

27년간의 진기록이자 경영신화는 반도체가 발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직후인 1988년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시킨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다. 1993년엔 삼성이 일대 전환기를 맞는 순간이었다. 이때 잘 알려진 메시지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다.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경영을 추구하는 2창업에 나섰다.

삼성은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1등 삼성이 됐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 멈추지 않았다. 휴대전화 시장을 개척한다. 신경영 선언 이후 1994년 첫 휴대전화 출시 이후 품질 문제 등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모조리 불에 태우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진행했다. 삼성이 품질경영을 뼈 속 깊이 새기게 된 사건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그해 국내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세계적으로 성장,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를 먹여 살리는 양대 기둥으로 발전한다.

2007년은 삼성의 위기였다. 첫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뒤집어 버렸다. 지금은 일상화된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위기 때 경영인의 리더십이 빛이 나기 마련이다. 삼성전자는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한때 물러났던 이 회장이 2010년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위기경영을 시작한다. 이때 삼성은 그룹 차원의 역량을 총 결집해서 지금의 갤럭시S’를 선보이게 됐다. 2011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탈환한 삼성은 현재까지도 1위를 고수 중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의 디지털 혁신과 2000년대의 반도체 혁신과 2010년대의 스마트폰 혁신을 고비마다 삼성에 정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줬다. 그가 삼성의 미래 나침반이었다.

 

이건희와 이재용

이병철의 한국 삼성을 글로벌 삼성으로 혁신시킨 이건희 회장. 그에 대한 평가로 승어부’(勝於父)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이 회장의 영결식에 백발의 노신사가 단상에 올라 그를 추모했다. 이 회장과 서울사대부고 동문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고교 시절 이 회장과 레슬링부에서 뜨겁게 부대끼고 청년의 꿈을 함께 키운 50년 지기 친구다.

그는 추모사를 통해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인 승어부를 꺼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를 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는 부친(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이 이 회장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깊은 위로를 전했다.

삼성그룹은 100년 기업을 바라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공백을 채울 삼성의 또 다른 미래를 짊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재용의 삼성은 2014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3세 경영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다국적투자기업 엘리엇에 의해 삼성의 지배구조가 공격 당하기도 했고, 지난 정권과의 문제로 이 부회장이 1년 넘게 구속수감되면서 오너 부재와 경영권 리스크도 시달렸다.

하지만 2018년 이재용 부회장 복귀 이후 삼성은 다시 자신들의 성장 DNA를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기록한 숫자는 또 한번의 신기록이다. 3분기에 67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 분기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 동기대비 60% 가까이 올라 2년 만에 최대 실적을 올렸다. 지금은 반도체 슈퍼 호황기도 아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이렇게 독보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진기록을 달성한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을 열었다. 주된 내용 중에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작은 전자회사에서 글로벌 IT 회사로 바꾼 진정한 비전가라며 특히 1993년 신경영 선언은 글로벌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최고의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회사의 비전 정립에 큰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임직원 모두는 이 회장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겠다. 그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삼성에서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문제는 2021년부터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모든 걸 걸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제2 창업을 부르짖을 때처럼 젊다. 그가 앞으로 1, 2년 안에 선언할 미래의 삼성이 앞으로 20년 뒤 글로벌 1위가 돼야 한다.

이건 하나의 강박이 아니라, 삼성의 숙명이다. 글로벌 혁신기업에겐 2, 3위는 소용없다. 그건 기업의 몰락이다. 잔인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삼성을 이건희 회장도 그렇게 1등 기업 정신으로 키워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파괴력이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마치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창업주를 뛰어넘는 승어부라고 극찬을 받은 만큼, 이재용 부회장도 아버지를 능가하는 혁신이 있어야 한다. 삼성의 제3창업이 기다리고 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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